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13 "이래 사는기 사는기가?"

浮萍草 2014. 6. 9. 06:00
    치의 병에 걸려 호스피스병동에 오게 되면 두 번을 슬피 운다. 
    입원하는 날과 임종실로 옮기는 날이다. 
    입원하는 날에 환자는“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구나” 해서 서글피 울고, 임종실로 옮기는 날에 가족들은 “이제 진짜 가는구나”해서 구슬피 운다. 
    12살짜리 딸아이를 떠나보내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살만큼 산 92세에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역정만 내다가 
    임종에 이르는 환자도 있다. 
    죽음이란 항상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찾아오며, 난생 처음 겪어보는 불안이 엄습해오기 때문에 상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한다. 
    그래도 덜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싶으면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잊어버린 채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이었다.
    75세 비호즈킨스 림프암 환자였다. 
    소장에서부터 시작한 림프암이 위장을 꽉 막았다. 
    레빈 튜브(코에서 위까지 가는 가느다란 호스)를 넣어 인위적으로 위액을 배출시켜야만 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튜브 끝에 음압흡입기가 연결돼서 바짝 마른입을 축일 물 정도는 마실 수 있었다. 
    목구멍은 아직도 레빈튜브에 적응하지 못해서 간질간질 불편했다. 
    숨이 차서 산소까지 쓰니까 오른쪽 작은 콧구멍에는 레빈튜브와 산소호스 두 개가 꽂혔다. 
    환자의 목숨은 큰 비닐 팩에 든 우윳빛 나는 수액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에서 오신다고 힘드셨죠.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이래 사는기 사는기가?”라고 했다.
    ▲ 바이올린 연주자는 환자의 아들이다.아버지는 멀리서 아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가만히 미소지었다.3일 뒤의 아버지 죽음은 마치 멋진 콘서트가 마지막 막을
    내린 것 같았다.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다.

    재순 할머니는 치매에다 말기 위암이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이고 할아버지는 후두암을 2년째 앓고 있다. 올해가 결혼 60주년이다. 아침 9시가 되면 할아버지는 양복차림에 면도를 말끔히 하고 재순 할머니를 찾아온다. 겉으로 봐서 할아버지는 암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어제는 대학병원에 치료하러 가시느라 못 오신 거죠? 할아버지의 암은 괜찮으신 거죠?”라고 물으니 “내가 암은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어. 근데 이겨서 뭐 하겠노?”라고 하신다.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하지 않았던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통째로 흔들린다.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70세 창수할아버지는 황달 때문에 눈이 노랗게 변한 간암환자였다. 입원하는 날, 나를 살짝 불렀다. “얼마 남은 것 같소?” 이렇게 처음부터 대 놓고 묻는 환자는 처음이었다. 모른다하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어긋나 버릴 것 같고 그렇다고 다짜고짜“평균 한 달쯤 사시다가 가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껄끄러웠다. “글쎄요 앞에 계시는 어르신이 어르신과 비슷한 부위에 생기는 쓸개 암환자이신데 오신지 두 달 되셨어요. 지금은 기운이 없으셔서 식사를 잘 못하십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저희 병동에서 백내장 수술도 하셨어요.” “백내장 수술을?” “앞에 계신 어르신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 소원이셨거든요. 저희 병동에서는 암은 고칠 수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은 평소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두 달. 그렇게나 오래……. 우리 집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주게.” 노란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창수 할아버지는 직접 다운 받은 수백 곡의 노래를 들었고 최신형 스마트폰도 샀다. 창수 할아버지는 막내딸이 아빠 드린다고 산 삼백만원짜리 시계 때문에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늘어진 팔목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그 시계를 차면서 마지막까지 평화롭게 지냈다.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이라는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 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조금 덜 힘들어 보였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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