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리더의 만찬

11 영조 등 조선의 왕들이 밥을 물에 말아 먹은 이유?

浮萍草 2014. 5. 9. 18:00
    ▲ 영조
    맛이 없을 때나 입안이 깔깔해 밥조차 먹기 싫을 때 물에다 밥을 말아 대충 한 술 뜨고 만다. 요즘 이런 기분인 사람 한둘이 아닐 것 같다. 조선의 임금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물에다 밥을 말아 수라를 들었다. 조선의 임금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영조도 그중 한 명으로 18세기에 여든세 살까지 살았으니 드물게 장수한 편이다. 영조는 평생 장수의 최대 적이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무수리 아들이라는 신분적 열등감,선왕이자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다는 죄책감 등등 신분은 왕이지만 결코 편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장수했으니 그 비결을 소박한 식습관에서 찾기도 한다. 영조는 특히 보리밥을 좋아해서 여름이면 자주 보리밥을 물에 말아 수라를 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굴비와 고추장도 즐긴 것으로 나와 기름진 산해진미가 아니라 물에다 보리밥을 말아 굴비 한 마리의 소박한 식사가 장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처럼 스트레스받을 때 참고해도 좋은 식사법이다. 밥을 물에 말아 대충 먹거나 혹은 별미로 먹지만 자칫 잘못하면 눈물에 만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광해군이 처음에는 강화도 교동에 유배됐다. 하루 아침에 바뀐 처지가 원통해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는데 당시 광해군을 감시하던 강화별장이 목격담을 남겼다. “광해가 온종일 겨우 물만 밥 한두 수저를 떴을 뿐 다른 것은 먹지 못해 기력이 쇠약해졌는데 언제나 목이 메어 울고만 있다.” 어느날 유배지로 따라온 무수리가 함부로 대하자 광해군이 그녀를 꾸짖었다. 그러자 “영감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이 부족해 염치없게 아랫사람에게 반찬까지 요구해서 잡채판서,더덕정승 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하였소?”라며 대들었다. 잡채를 만들어 호조판서가 된 이충, 더덕으로 반찬을 만들어 왕의 총애를 받았던 좌의정 한효순을 두고 한 말이다.
    ▲ 조선의 왕들을 국가 재난 때 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

    무수리는 또“영감이 임금 자리를 잃은 것은 스스로 잘못 때문이라지만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가시 넝쿨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말이오?”라고 따지자 광해군이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 말도 못하고 탄식만 했다. 인조 때 무관이었던 조경남이 쓴 속잡록(續雜錄)에 나오는 내용이다. 광해군은 유배지에서 밥에 물을 말아 뜨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리더로써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던 회한과 자책 자신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을까?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은 무려 40일을 넘도록 밥을 물에다 말아 먹었다. 왕위에 오른 지 이듬해인 1470년 가뭄이 들었다. 가뭄이 갈수록 심해지자 성종은 5월 29일 교지를 내려 대비전과 대전,중궁전까지 모두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고 낮 수라는 “반드시 밥을 물에 말아 올리라”며 솔선 수범 절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뭄이 시작된지 약 40일이 지난 7월 8일 자 성종실록에는 신하들이“비도 내려 가뭄도 어느 정도 해갈됐고 건강에도 해로우니 제대로 된 수라를 드시라”고 간청 하자,“아직도 수라상에 반찬이 남아돌고 날씨가 더워졌으니 점심때 밥을 물에 말아 먹는 것이 오히려 알맞은 일”이라며 간청을 물리쳤다. 밥을 물에 말아 두고 임금과 신하가 벌이는 승강이가 꽤 길어졌는데 리더의 밥상에는 가식이 아닌 한 이런 모양새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배고프다고 아무 데서나 밥상 펼 일이 아니다.
    Premium Chosun ☜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청보리미디어 대표 ohioyoo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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