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리더의 만찬

6 스님을 파계시켰다는 이 요리 과연 스님이 담장을 넘을만큼 기막힌 맛일까?

浮萍草 2014. 2. 6. 06:00
    ㆍ덩샤오핑(鄧小平)과 불도장(佛跳牆)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 1979년 중국과 미국의 국교수립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모두 서른 차례의 정상회담을 베이징에서 열었다. 
    이 무렵 주요 정상들의 오찬과 만찬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요리가 불도장이다.
    ㆍ중국 정상들 외국 국빈에 불도장 내놓은 사연은? 먼저 1984년, 중국을 방문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리셴녠 국가주석이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불도장으로 만찬을 했다. 같은 해 중국 공산당의 오랜 친구였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도 베이징에서 자오즈양(趙紫陽) 총서기와 역시 불도장으로 오찬을 즐겼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1986년, 덩샤오핑(鄧小平)과 불도장으로 만찬을 가졌는데 여왕이 불도장의 전설을 재미있게 들었다고 전해진다.
    중국 정상이 외빈 접대에 자주 내놓은 불도장

    중국은 왜 정상 만찬에 불도장을 준비했을까? 불도장의 유래는 많이 알려져 있다. 담장 너머에서 기름지고 향긋한 음식냄새가 흘러나와 코끝을 자극하자 마침 지나던 스님이 냄새를 맡고는 식욕을 참지 못해 수 년 간의 수행마저 팽개친 채 담장을 뛰어 넘어 맛보았다는 음식이 불도장이다. 부처 불(佛) 뛸 도(跳) 담장 장(墻)자를 써서“스님이 담장을 넘었다”는 희한한 요리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 스님마저 파계시켰다는 요리다. 불도장은 중국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흔히 황제의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불도장을 제대로 만들려면 모두 서른여섯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샥스핀과 자라 전복과 해삼 사슴꼬리 등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산해진미와 동충하초 버섯 죽순 구기자 등 각종 약재를 중국 전통 명주인 소흥주 항아리에 담아 연잎으로 밀봉해서 다섯 시간 넘게 고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불도장을 먹을 때는 뚜껑을 열어 요리의 향기를 음미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 과정에서 벌써 스님이 담장을 뛰어 넘어 파계를 했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수저로 국물을 떠서 탕을 맛보고 마지막으로 각종 재료를 꺼내 먹으며 하나씩 맛을 즐기는 것이 불도장을 제대로 먹는 법이라고 합니다. 불도장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분명한 것은 실제 음식 때문에 담장을 넘어 파계한 스님은 없었다. 불도장이라는 이름은 맛에 반한 손님이 지은 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항아리 뚜껑 여니 음식향기 사방에 진동하고 길 가던 스님, 참선도 포기하고 담장을 뛰어 넘네”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창작에서 나온 이름이다.
    푸젠성 금융가가 상급관청 관리에게 만들어 접대한 것이 효시.

    ㆍ황제의 음식? 황제는 구경도 못해… 푸젠성 금융가가 감독청 관리 접대하려 만든 것이 효시
    황제의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황제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요리다. 불도장이 널리 알려진 것은 레이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에 등장한 이후로 이전까지는 중국에서도 그저 지방요리에 지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중국요리치고는 역사도 짧아 기껏해야 100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청나라 말기 남부 푸젠성의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감독관청의 관리를 접대하려고 만든 음식이 불도장의 효시다. 속된 말로 감독관을 구워삶으려다 보니 좋다는 재료는 모두 동원해서 만든 요리다
    덩샤오핑(왼쪽)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중국이 정상만찬에 불도장을 내놓은 속내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1980년대 중국은 선쩐을 비롯해 네 곳에 경제특구를 만들었지만 일부 화교자본을 제외하고 외국자본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불도장을 처음 만들었다는 푸젠성의 금융기관 책임자처럼 정성과 감동을 다해 외국 투자자를 유치해야만 했다. 80년대 치열했던 중국의 외자유치 한편에 불도장이 있었다.
    Premium Chosun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청보리미디어 대표 ohioyoo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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