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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前 대법관이 후회했던 3가지

浮萍草 2014. 4. 2. 06:00
    "서울법대 가고, 사시 보고, 시험에 붙은 것"…그의 자녀 교육 철학은?
    2008년 9월 경기 수원시 지하철 수원역에서 강지원
    변호사,김영란 대법관 부부가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이들은 평일엔 승용차를 이용하고 주말이면 버스나
    지하철로 다닌다고 했다. / 조인원 기자
    혹 新줌마병법 ‘꺼리’가 없어서 전전긍긍할 때가 있습니다. 5주에 한번 순서가 돌아오니 그 사이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수집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머리만 통 복잡한 것이 ‘이거다!’ 하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보통 2주일 전에 소재를 정하고 1주일 전부터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한 뒤 마감 3일 전부터 쓰기 시작해 고치고 또 고치고를 수십 번 반복합니다. 한데 이번에는 마감 5일 전이 되어도 소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대입 수능 시험을 치른 직후 고3 엄마들 위한 위로성 이바구나 지어봐야겠다 생각한 건데,얼개가 통 잡히질 않더라고요.ㅜㅜ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한테 기도도 안했는데 말이지요.^^ 그날 이메일함에 보석처럼 빛나는 편지 한 통이 들어와 있는 겁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외국계 홍보대행사 상무님 편지였죠. 신줌마병법이나‘트렌드 돋보기’(시사칼럼)를 쓴 날이면 어김없이 피드백을 주시는 정말 멋지고 자비심 많은 싱글여성인데 이날도 제가 쓴 칼럼 ‘결국 교사가 解法이다’를 읽고 보내온 메일이었습니다. 한국 교육의 문제에 공감하며 그녀가 쓴 편지의 말미에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중 이번에 수능을 친 고3 딸을 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이 공부에 통 취미가 없는 걸 깨닫고는 고3 올라가자마자 부모에게 영어 수학 학원 대신 미용 학원을 다니겠노라 선언한 용감한 딸 그 딸을 적극 지지해준 부모의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입니다. 당장 상무님께 전화를 걸어 그 ‘멋진 아빠’의 연락처를 알려달라 부탁했습니다. 인터뷰를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건 기우였습니다. 아빠가 어찌나 쿨하고 자신감 넘치는지 “아이구, 전혀 자랑할 만한 이야기 아니에요. 실은 복장 터지는 일이잖아요” 하며 넉살을 부리면서도 30분 넘게 저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부부 모두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를 나왔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부모가 서울대 나오면 그 아이는 오죽 똑똑할까, 싶었는데 수능 시험날에도 대충 찍고 졸다가 나왔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영특한 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개는‘인서울(in Seoul)’을 목표로 흥미도 없는 과에 지망해 일단 입학이나 하고 보자 하는 분위기가 대세 인데 대범하게도 그런 삶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니까요. ‘자기주도학습’엔 실패했지만‘자기주도인생’의 첫단추는 성공적으로 꿴 당돌하고 가망성 있는 10대였습니다. 그런 자식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부모, 정말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이 멋진 아빠와 인터뷰를 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또 한 커플의 서울대 명사(名士)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김영란 전(前) 대법관과 강지원 변호사입니다. 둘 다 서울대를 나온 수재들이지요. 학교 선후배로 만나 연애결혼했고,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지금까지 잉꼬부부로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플인데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는 두 분 이야기를 지난 4월에 들었습니다. 대법관 퇴임 후 유명 로펌에 가지 않고 후진 양성을 위해 지난 봄부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한 김 전 대법관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지난 4월 서울 정동에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 위원장
    이 자신의 신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이명원 기자
    대학시절 어떻게 하다 강지원 변호사의‘유혹’에 넘어가셨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김 전 대법관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평생 웃게 해주겠다고 철썩같이 약속을 하잖아요.” 무소속으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해 국민권익위원장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아내를 물러나게 한 남편이 원망 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권 바뀌면 어차피 물러나려고 했어요. 함께 열심히 일해온 직원들에겐 정말 미안했지만요.” 선거자금으로 10억여원을 까먹고 돌아온 강 변호사와 ‘한판’ 하셨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김 전 대법관은 한치의 흔들림없이 대답했습니다. “비싼 사교육비 낸 셈 쳤지요. ‘정책선거’를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 배우게 됐으니까요.” 아, ‘고수’는 다르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기사에 쓰진 않았지만 두 사람의 자녀교육 이야기가 저는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서울대 나온 명사들은 자식도 남다르게 키울 것 같아서‘김영란법’같은 이슈의 본류에서 살짝 빠져나와 두 딸 키운 이야기 좀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한데 대답이 허탈했습니다. “남편이나 저나 딸들에게 한번도‘공부하라’ 소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가 그녀의 답이었습니다. “공부하는 게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지 둘 다 너무나 잘 아니까 아이들한테는‘공부하라’소리 못하겠더라고요. 책 읽어라 소리도 안했어요. 맨날 책만 들여다보는 엄마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엄마 아빠가 공부 잘하던 사람이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죠. 책 많이 읽은 사람이 다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고요.” 이어진 답변은 더 압권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서울대에 들어간 것, 사법고시를 본 것, 시험에 합격한 거예요. 호호호!” 처음엔 두 딸이 알아서 공부를 척척하니까‘공부하라’ 다그치지 않았나보다, 미뤄짐작했습니다. 명문대 보낸 엄마들이 으레“내가 해준 건 밥해주고 빨래해준 것밖엔 없어요”라고 자랑하는 것처럼 말 이지요. 그런데 김 전 대법관과 강 변호사의 두 딸은 우등생,시쳇말로‘엄친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제도권 교육이 싫어 둘 다 대안학교를 택했고, 명문대에 입학한 것도 아니었지요. “공부 안하면 걱정되지 않으세요?” 하고 묻자 김영란 전 대법관은 어깨를 으쓱해보였습니다. “공부라는 게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본인이 절실하게 공부의 필요성과 재미를 느껴야 하는 거지. 아이들에 따라 깨닫는 시기가 일찍 오고 늦게 오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 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잘 성장해가리라 믿어요.”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존엄사 소송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열렸을 때의 김영란 대법관

    실제로 큰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뒤늦게 ‘학구본능(學究本能)’이 솟구친 경우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그것을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공부에 전념하게 됐고 요즘은 일본어까지 섭렵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식들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김 전 대법관은 말했습니다. 공부가 정말 지겨웠다는 대법관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전 대법관이 로펌 대신 대학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강의 시간 빼고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였습니다. 여고시절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공부를 ‘잘해도 너~무 잘해서’ 떠밀려 들어간 법대였으니 오랫동안 미뤄온 소망을 인생 2막에서 이룰 모양입니다. 하여튼 이번 신줌마병법을 쓰면서, 한국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기회가 더욱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절실해졌습니다. 대학이라는 한길로 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이 있었으면 진짜진짜 좋겠습니다. 중1 아들을 둔 엄마로서 매일매일 착잡한 심경속에 살아가는 저에게 그 ‘멋진 아빠’와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이야기는 단비처럼 시원하고 희망적이었습니다.
    Premium Chosun ☜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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