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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전 총리 때문에 '봄바람' 날 뻔한 사연

浮萍草 2014. 4. 1. 06:00
    모든 아내는 쭈그렁 할머니 되어도 봄바람에 흔들린다
    지난 2월 이임식을 가진 김황식 전 총리
    황식 전(前) 국무총리를 처음 만난 건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였습니다. 한국여기자협회 임원 10여명과 총리가 만나는 자리였지요. 나이 마흔줄에도 이 나라 국무총리가 사는 곳을 구경간다는 생각에 소풍가는 초딩처럼 마음이 설렜습니다. TV로만 보던 김 총리를‘실물’로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것보다 훨씬 젊고 웃음이 많은 분이었지요. 농담도 곧잘 하시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습니다. 밥 먹다 말고 체할 뻔한 일이 있긴 했습니다. 워낙 숫기 없고 입심도 없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선 거의 반벙어리로 앉아 있는 저인데 총리가 갑자기 기자 들을 향해“자 이제 왼쪽부터 돌아가면서 국정에 관한 조언 한말씀씩 해주시지요” 하는 겁니다. 프리 토킹이 자연스럽지만 자칫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몇몇만 얘기하다 자리가 파한다는 게 총리의 지론 이었지요.
    ㆍ시골 여고의 고지식한 교감선생님 같았던 김 전 총리 취지는 훌륭하나 마이크 울렁증이 있는 저로서는 곤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타사 기자들은 어쩜 그리 말도 유식하고 감칠맛나게 잘하는지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콩닥거리고 목 언저리 화끈거리는 게 제가 그날 총리 면전에서 어떤 허황한 ‘썰(說)’을 풀었는지 부끄러워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그날 김 총리는 시골 여자고등학교의 고지식한 교감선생님 같았다는 것입니다. 발표내용 듣고 속으로 점수를 매길 것만 같은 깐깐한…. 아무튼 야속했습니다. # 김황식 총리를 두번째로 만난 건,올해 2월 정부세종청사의 국무총리실에서였습니다. 그달 퇴임을 앞두고 조선일보 Why?와 첫 단독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모처럼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떠나는 총리이니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지요.
    하지만 긴장과 떨림은 이내 안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총리실에 미리 보낸 질문지에 연필로 빼곡하게 메모한 총리의 ‘답안지’를 훔쳐본 덕분입니다. 아, 천하의 국무총리도 인터뷰할 땐 저으기 긴장이 되나 보다 그래서‘모범답안’을 준비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대강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세종 청사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워낙 바쁜 양반이니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에도 사진 촬영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총리 또한 귀찮은 내색없이 성실히 답변했습니다. 실은,질문은 많이 한 것 같은데 온몸을 전율케 할 ‘한방’이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 하던 차였지요. 순간 사전 취재 준비를 할 때 최형두 공보수석이 “총리가 젊은 시절 문청(文靑)이었고 직원들 야유회를 가면 시 몇 수는 그 자리에서 줄줄 외는 낭만파”라 귀띔해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는 총리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ㆍ인터뷰 중 유치환의 시 ‘바위’를 읊다 “시(詩) 한 수 늘 마음에 품고 다니신다던데, 요즘 마음에 담은 시는 무엇입니까?” 총리가 빙그레 웃더니 저에게 되묻습니다. “유치환의 ‘바위’ 아세요?” 그러더니 바로 시를 읊어내려갑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 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아줌마 기자, 입을 딱 벌린 채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대바악~” # 시골학교 교감선생님에서 낭만파 시인으로 이미지가 바뀐 김 총리를 다시 만난 건 서울 시내 어느 한식당에서였습니다. 퇴임 후 6개월 일정으로 독일 연수를 떠나는 총리와의 송별회 비슷한 자리에 어찌어찌 합류하게 된 것인데 정치에 문외한인데다, 참석자들이 저보다 연배 많고 경륜 높은 분들이라 또다시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었습니다.
    퇴임 이후 독일로 떠날 당시의 김황식 전 총리
    와중에도 기자의 버릇은 작동하여,김 총리가 좌중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고 답을 하는지 살피게 되더군요. 공식 석상에선 알아챌 수 없는 김 총리의 처세랄까요? 무엇이냐면 김 총리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흉을 볼 때 절대 동참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지언정 아예 관심을 갖지도 않고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김 총리의 동의를 얻어 이야기를 계속 엮어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은 머쓱해지고 무안해지기 일쑤 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헤어지려는데 총리가 집이 어느 쪽이냐고 묻습니다. 사는 동네를 말했더니, 비슷한 방향이니 태워다 주겠노라 하십니다. 몇번을 사양하다 택시비가 굳었다는 기쁨에 사뿐히 올라탄 것인데 그야말로 바늘방석이라 후회막심했습니다. 뭐 할 얘기가 있어야지요. 욀 줄 아는 시(詩)가 있나, 독일 철학을 아나, 법전 한번 들여다 본 적이 있나. 시시껄렁한 풍문으로 수다 떨어도 되는 양반이 아니니 의례적인 이야기 몇마디 나누다 어색한 침묵으로 빠져 들었지요.
    ㆍ “숙녀분을 밤에 어찌 길거리에.”…‘아줌마 기자’에 끝까지 극진 마침내 저희 동네가 가까워졌습니다. 반가운 마음에“저~어기 큰길가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하였더니“밤길인데 아파트 안까지 가시지요” 하십니다. 급당황한 제 입에서 평소 말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아이구, 아줌마라 아무도 안잡아간다니까요, 푸하핫!” 한데 총리는 웃지 않습니다. “숙녀분을 이 어둑한 밤에 어찌 길거리에….” 헐~ 그러더니 기사님으로 하여금 그예 저희 아파트 앞까지 승용차를 몰고 가 세우게 하십니다. 대략난감하여 차가 멈춘 동시에 총알처럼 뛰어내린 것인데 총리 또한 차 문을 열고 따라 나오십니다. 그리고는 정중히 목례를 하십니다. 한학자 집안에 태어나 워낙에 점잖고 바르게 자란데다 동네 코흘리개들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분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일개 기자에까지 이리도 극진한 예를 갖추시니 황송하여 진땀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멀어져가는 총리의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자니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설렙니다. 나날이 주책과 주름살이 한바가지씩 늘어나는 이 아줌마 기자한테 세상에 ‘숙녀’라니요. 4월, 벚꽃 향기 진동하는 밤이어서 그랬을까요? # 그 두근거림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낸 꽁트가 2013년 4월23일자 ‘新줌마병법―꽃비 오는 날 아내의 봄바람을 막는 법’입니다.
    “…기억해내세요. 그 옛날 꽃보다 아름다웠던 당신의 아내가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 어떤 시집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울었는지. 찬장에 숨겨둔 아내의 일기장엔 뭐라고 적혀 있는지. 그런 다음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세요. 그 이야기를 다른 남자가 들어주기 전에.” Mr.대한민국 여러분 세상의 모든 아내는 나이 팔십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여인입니다.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sion@chosun.com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년째 파킨슨병과 싸우시는 아버지는 저를 ‘우리 둘째야’라 부르.. 2년째 파킨슨병과 싸우시는 아버지는 저를 ‘우리 둘째야’라 부르시고 14년째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남자는 ‘YD’라 부릅니다. 중1 큰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며느리 뒷바라지 하시는 시어머니는‘시온 에미야’라 부르시고 조선일보‘新줌마병법’을 즐겨 읽는 독자 들은 저를 ‘줌마’라고 부릅니다. 사진 보고 58년 개띠라 오해하는 분들 많지만, 70년 개띠입니다. 스웨덴 연수시절 20개월 된 딸내미 유모차 태워 유럽 10개국 여행한 것이 마흔 생애 가장 고달프고도 행복했던 추억이고 갑상선에 암 생겨 수술대에 누웠을 때보다 아들녀석 다리 부러져 수술실로 들어갈 때 더 많이 울었던 대한민국 엄마입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데, 최근엔 ‘선생님’ 소리도 듣습니다. ‘김윤덕의 맛있는 글쓰기’ 강의 들으러 오시는 40~80대 ‘학생’들과의 만남이 요즘 저의 새로운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Premium Chosun ☜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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