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먹는 피임약의 원리
 |
문득 가수 김광석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포크 송 역사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넘어 갔고,지금은 아이돌을 앞세운 K-POP의 거센 물결에 다음 페이지는 넘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매일 매일 그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현대의 음악은 크로스 오버 즉 서로의 혈통을 교환하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장르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하지만 기타 반주 하나에 사람의 목소리 하나로 승부를 걸었던 포크 송이야말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 류트의 선율에 노래하던 음유시인이 불렀던 것도 포크송이고 가야금 산조에 구성지게 불렀던 아리랑도 포크송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기타 하나에 인생과 사랑을 노래했던 포크송의 역사는 계속 될 것입니다.
포크송은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듯 가까이 들리는 가수의 숨소리가 매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사를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 대중의 삶, 그 애환을 담고 있는 가사 때문에 포크송은 어느 시대이건 젊음과 저항의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마니아라면 코엔 형제를 모를 리 없겠지요.
<파고>,<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의 영화를 감독한 코엔 형제는 영화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독립 영화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엔 형제는 음악 영화 <인사이드 르윈>으로 2014 벽두에 영화 팬들을 포크 송의 매력 속으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데이브 반 롱크라는 포크송 가수를 모티브로 하였고 그의 원곡인 ‘hang me, oh hang me’를 주인공인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가
부르는 신으로 시작합니다.
마치 언플러그드 콘서트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가수의 숨소리,관객들의 헛기침 소리까지 생생히 들리는 음악,포크송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입니다.
무명 가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존심은 대단하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도 떨어져 친구나 지인의 집 소파를 전전하는 신세입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혼성 듀오 짐(저스틴 팀버레이크)과 진(캐리 멀리건)은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선택 했고 인기도 높습니다.
르윈 데이비스가 부르는 데이브 반 롱크의 ‘Hang me, oh hang me'와 짐과 진이 부르는 피터,폴 앤 매리의’ Five hundred miles'의 대조는 열 마디 대사보다
더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르윈의 현실을 말해줍니다.
설상가상으로 르윈과 하룻밤 보낸 적이 있는 진은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전합니다.
‘나 임신했어.’
낙태 ,즉 임신 중절을 위해 급하게 돈이 필요하게 된 르윈 하기 싫은 트리오에 참여해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재미있고 경쾌한 ‘ Please, Mr. Kennedy'가 바로 그것인데 코엔 형제는 절묘한 선곡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도 쓸모 없게 되어버리고,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는 르윈의 고민은 깊어 갑니다.
1960년대 초 뉴욕을 배경으로한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포크 송을 재조명하는 음악영화이지만 삶의 고단한 여정을 코엔 형제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와 절제된
영상으로 깊이 있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그 당시 포크송은 월남전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의 선두에 서서 록과 함께 음악시장을 이끌어가는 양대 산맥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는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았지만 여성의 인권에 기념비적인 발전이 있었습니다. 경구용 피임약의 개발이 그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의학적인 발견이 있어 왔습니다.
아스피린, 페니실린, 스테로이드 등 인류를 질병이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훌륭한 약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을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경구용 피임약이야말로 여성을 사회적으로 안정화시킨 역사적인 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구용 피임약의 원리는 황체 호르몬, 즉 프로게스테론의 투여입니다.
이 호르몬은 수정란의 착상과 임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인데 임신기간 중에는 배란이 억제되는 것을 이용한 것이 피임약의 원리입니다.
그 뿐 아니라 월경 불순의 치료 등 여성 호르몬 관련 질병의 치료제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후 피임약의 판매로 논란이 많은데 이 역시 프로게스테론이지만 약리작용은 다릅니다.
높은 농도의 혈중 프로게스테론이 갑자기 떨어지면 월경의 신호로 받아들인 자궁내막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 원리를 이용 고농도의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고, 잠시 후 그 농도가 떨어지면서 월경이 생기게 하는 것이 사후 피임약입니다.
하지만 고농도의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이므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요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 수술(임신중절 수술)을 위한 젊은이들의 고뇌를 보여줍니다.
진(캐리 멀리건)의 대사 중에 ‘콘돔을 두 겹으로 씌우고 전기 테이프로 꽁꽁 묶지 그랬어!’라고 힐난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 그때는 피임약이 출시되기 전이었나 봅니다.
피임을 남자에게 의존해야 했던 시절, 여성은 임신 때문에 성생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먹는 피임약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 사회적인 지위를 다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포크송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담고 있는 음악입니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고된 삶에 지친 한 포크 싱어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돌아 보게 합니다.
르윈과 우연히 같이 다니게 된 율리시즈라는 고양이처럼, 인생은 우연의 연속입니다.
그 우연이 다행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르윈이 고양이를 버려두고 가버릴 수 없었듯이 우리는 인생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된 여정입니다.
하지만 포크송처럼 인생의 무게에 저항하고, 힘든 여정에 대한 고통을 서로 나누어 지는 것, 그것이 또 삶의 의미일 것입니다.
☞ Premium Chosun ☜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草浮 印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