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실려온 경찰과 강도, 수술실은 하나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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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대국민 홍보를 위해 모내기를 하러 갔습니다.
논의 주인인 늙은 농부와 모내기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합니다.
독사가 두 사람을 물고 도망가버린 것입니다.
시골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는데 마침 항독소 주사가 한 병 밖에 없다고 합니다.
주사를 맞는 사람은 살고 아닌 한 사람은 죽을 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누구를 우선하여 치료해야 하는가?’, 선택의 기로에 선 의사의 갈등은 깊어갑니다.
과연 의사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의학적 판단보다 사회적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 그래도 대통령이 우선치료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농부가 의사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의사의 판단은 달라질까요? 의사의 의학적 판단은 흔들리지 않겠지만 사회적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이 걸린 판단을 해야 하는 의사에게는 고도의 의학적, 사회적 교육과 능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서두의 에피소드는 필자가 만든 가상의 설정입니다.
하지만 유사한 상황이 자주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용되기도 하는데 의사의 의학적 판단 뿐 아니라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 선택의 경우 들입니다.
뉴욕의 종합병원 응급실 몰려드는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갑자기 응급환자 두 명이 후송되어옵니다.
총격전의 희생자들로 한 명은 경찰이고, 한 명은 강도라고 합니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데, 가용한 수술실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한 명은 살고, 다른 한 명은 죽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 의사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 <선택>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최근 유행은 복고입니다.
특히‘응답하라’류의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계도 흘러간 명작들을 다시 둘러보는 이벤트가 많았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1990년대 영화들을 뒤져보던 중에 보석 같은 영화 한편을 발견했습니다.
1996년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작품 <선택>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휴 그랜트의 필모그래피 중에 거의 유일무이한 스릴러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진 핵크만, 사라 제시카 파커, 데이빗 모즈 등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영화는 묵직한 주제를 깊이 있게 그려나갑니다.
특히 휴 그랜트의 20년 전의 앳된 모습과 매력적인 영국 발음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뉴욕 시립병원의 유능한 응급실 의사인 가이(휴 그랜트)는 선택의 순간,잠시 고민하더니 부상 경찰을 수술실로 올려 보내,병원에 모인 경찰들의 감사의 박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응급실 한 곳에 임시 수술장을 만들어 나머지 부상당한 강도도 본인이 직접 수술하여 살려냅니다.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어느 날, 닥터 가이는 특이한 환자를 받게 됩니다.
나체로 실려 온 중년의 노숙자인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치료하던 중 호전을 보이지 않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의문의 사망환자의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 결과를 찾던 중,엄청난 음모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정체불명의 의사(진 핵크만)가 운영하는 비밀 병원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비밀 실험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희생자들 중의 하나가 응급실에서 자신이 치료하다 죽은 환자였던 것입니다.
진 핵크만의 비밀 병원에서는 척수 마비 환자들을 다시 걷게 만들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노숙자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의 개발 단계에 이른 상황 앞에서 닥터 가이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척수 마비로 온 몸이 마비된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에 동참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비 인륜적
생체 실험을 막아내야 하는가. 과연 닥터 가이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강의와 책으로 유명한데 그 내용 중에는 공리주의에 대한
예를 많이 들고 있습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입니다.
의학 역시 공리주의의 모순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즉, 다수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묵인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반인륜적인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진 의학의 역사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나치의 생체실험과 악명 높은 일본의 731부대의
만행입니다.
물론 전쟁, 전염병, 불가피한 재난이나 사고 후, 의학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우연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의학의 발전을 위해 의도적인 사건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다수의 건강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경우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의학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학문입니다.
학술적인 성과에만 눈이 멀어 생명을 등한시하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막기 위해서는 임상 시험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합니다.
필자가 있는 병원에서도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를 만들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까다로운 규정과 절차를 거쳐야만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도 좋지만,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매일,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의학적 판단은 물론이고 치료의 과정에는 사회적 판단,도덕적 판단을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학 교육에는 높은 수준의 인성의 함양을 위한 과정들이 포함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의학적 실력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무장되어야하고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판단력으로 환자의 치료에 임해야 합니다.
의사들은 스스로의 엄격한 잣대로 매진해야 하며, 고민하고 또 판단해야합니다.
힘든 길을 걸어야하는 의사들의 어깨에 따뜻한 격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 Premium Chosun ☜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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