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옛글에서 읽는 오늘

승자에 환호하는 까닭

浮萍草 2014. 2. 21. 10:59
    운창은 남쪽 바닷가 보성 사람이었다. 
    사촌형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5~6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먹고 자는 것조차 잊고 바둑에 몰두했다. 
    사촌형이 말했다. 
    “아우야 너무 수고 마라. 
    그렇지 않아도 행세하기에 충분한 실력이다.” 
    그래도 그는 매일매일 바둑의 수를 궁리하며 연마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정운창은 좁은 시골에서 자신을 상대할 자가 없자 당대의 실력자와 겨루고 싶어 상경했다. 
    그의 목표는 당시 국수(國手)로 인정받는 김종기였다. 
    그런데 김종기는 하필 관서 순찰사의 식객으로 평양에 가 있었다. 
    정운창이 평양으로 그를 찾아갔다. 
    포정문 밖에 사흘을 머물며 기다렸지만 관리가 만나게 해주질 않았다. 그는 탄식했다.
    “선비가 재기(才器)를 지니고서 서로 만나지 못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 
    나는 차마 되돌아갈 수가 없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평양까지 수천리다. 
    먼길의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힘들게 여기에 온 것은 한 기예로써 다른 사람과 승부를 겨뤄 잠깐의 쾌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어찌 불우하지 아니한가.”
    사흘을 더 기다렸다. 
    이를 들은 순찰사가 괴이하게 여겨 정운창을 불러들였다. 
    “지금 김종기는 여기 없다. 
    김 국수보단 좀 못하지만 엇비슷한 자가 있으니 그와 한 번 시험 삼아 겨뤄보겠는가?”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김종기가 미리 짠 대로 다른 사람인 척 들어와 대국을 했다.
    한두 번 돌자 김종기는 갑자기 쩔쩔맸다. 
    시간이 지나자 더욱 심해져 정운창을 이길 수가 없었다. 
    편안히 두던 정운창은 이상하게 여겼다. 
    “좀 쉬었다 하시죠. 
    김종기와는 어느 정도 차이입니까?” 
    이를 본 순찰사는 정운창에게 사실을 밝히고 백금 20냥을 사례로 주었다. 
    18세기 조선 바둑의 최고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서구의‘기객소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 진재교의 <알아주지 않는 삶>과 안대회의 <조선의 프로페셔널> 등에 소개되었다.                                           
    최고수가 강호에 등장하는 장면은 극적이고 흥미롭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스포츠에 환호하고 승자의 탄생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스포츠가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들었고 엘리트주의라는 비판도 개의치 않는다. 
    미리 정한 룰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해 진정한 실력자를 가려내는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 만큼 기회와 심판의 불공정에는 분개한다. 
    빅토르 안을 응원하는 심리도 이런 것 아닐까.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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