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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의 조제론(調劑論)

浮萍草 2014. 3. 21. 19:31
    림(士林)세력은 훈구(勳舊)세력에 의해 사화(士禍)를 겪었지만 끝내 승리해 조정을 장악했다. 
    도덕적 우위도 있었지만 학문 조직과 재정적 기반을 갖춘 결과였다. 
    이 무렵 영의정 이준경이 죽으면서 선조 임금에게 올린 짧은 상소문이 파란을 일으켰다.
    “붕당(朋黨)의 사사로움을 깨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은 과오가 없고 규칙을 위반한 일이 없더라도 혹 한마디만 합치하지 않으면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습니다. 
    바른 몸가짐에 전념하지 않고 독서에 힘쓰지 않으면서 고담과 큰소리만 쳐 붕비(朋比·패거리)를 맺는 것을 고상한 취향으로 여겨 마침내 허위의 풍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붕당을 구실로 군자인 사림들이 소인들로부터 공격받아 또 사화와 같은 수난을 당할까 걱정했다. 
    이준경의 상소문에 대해 반박했다. 
    붕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군자의 당인지 소인의 당인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군자라면 천백 사람이 한 무리를 짓더라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은 것이요,소인이라면 한 사람이라도 용납해서 안 되는데 하물며 붕당을 이루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이준경의 우려가 현실화되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이이는 사류(士類)의 분열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인과 서인의 화해를 촉구했다. 
    “사림은 나라의 원기(元氣)다. 
    성(盛)하여 조화를 이루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격(激)하여 분열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패하여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동·서 분열이 명확해지자 이이는 양쪽이 다 옳고 양쪽이 다 그를 수 있다는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전개하면서 양쪽을 적절히 조합한다는 조제론(調劑論)을 주장
    했다. 
    “이른바 조제(調劑)한다는 것은 양자 모두 사류이기 때문에 서로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훗날 송시열은 이이의 실패를 선례로 들어,조제보다 시비(是非)·사정(邪正)의 분별을 강조했다. 
    송시열의 주장은 ‘분열과 배제의 논리’였다. 
    당시 일당이 조정을 장악하면 다른 당은 내몰리는 환국(換局)정치가 전개되었다. 
    도덕적 당당함과 지적 우월감이 도리어 독선과 자만을 낳고 분열과 소모적 정쟁을 촉진할 수 있었다.
     붕당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윤리규범인 군자소인론으로만 접근할 것도 아니다. 
    이이의 조제론은 환국정치의 폐해를 반성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화해·공존과 경쟁의 논리’로 활용된 소중한 유산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정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Khan ☜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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