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5 우마미(旨味)와 우리말 과학

浮萍草 2014. 2. 12. 08:00
    어 광풍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할 것처럼 야단들이다. 
    우리말보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더 골몰하는 부모도 적지 않고 대학생과 일반인들도 영어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영어로 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는 세상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선조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영어 광풍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할 것처럼 야단들이다. 
    우리말보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더 골몰하는 부모도 적지 않고 대학생과 일반인들도 영어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영어로 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는 세상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선조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ㆍ어처구니없는 과학기술의 언어 현실
    과학기술도 영어 열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실 보편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의 사정은 정말 심각하다. 실제로 이공계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정상적인 우리말과 글이 사라져 가고 있다. 대학의 세계화를 핑계로 강요된 영어 강의를 가장 앞장서서 받아들인 것도 이공계 학과들이었다. 이제는 강의도 영어로 하고, 논문도 영어로 쓰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어차피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 과학자들과 소통을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현장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과학자와 이공계 학생들의 언어 현실은 참담하다. 대부분의 대화에서는 영어 단어에 우리말 토씨를 붙인 해괴한 언어가 사용된다. 전문용어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수식어까지도 영어 어휘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진짜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영어의 억양과 장단도 무시되고, 발음도 극도로 왜곡된 정체불명의 어휘가 넘쳐난다. 그런 해괴한 언어로는 외국인은 물론 우리말을 사용하는 일반인과의 소통도 불가능하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영어 광풍으로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과학 전문용어다. 이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리말 전문용어의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형편이다. 공연히 쓰지도 않을 우리말 전문용어를 애써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문용어는 한글이 아니라 로마자로 적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인명(人名)의 경우에는 로마자로 적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글보다 로마자가 더 많은 연구계획서도 흔하다. 결국 과학기술의 국제적 소통을 강조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우리 사회와의 소통은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영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무작정 나무라기는 어렵다. 국내 학술지에 우리말로 발표한 논문은 연구 업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학술지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우리말 논문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영어 논문을 강요하는 학술지의 세계화 요구와 국제화만 강조하는 평가가 과학기술에서 우리말과 글을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영어가 뒤섞인 우리말 학술논문

    ㆍ 국제적 전문 학술용어로 자리잡은 ‘우마미’와 ‘쓰나미’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물론 일본이 외래어에 대해 우리보다 비교적 너그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굳이 외국어의 의미를 의역(意譯)하려고 애쓰기보다 외국어의 발음을 자유롭게 변화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이 전문용어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어휘가 세계적인 전문 학술용어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 우마미’(うまみ, 旨味)와 ‘쓰나미’(つなみㆍ津波)가 그런 경우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성과다.
    '미국과학원회보’에 실린 우마미에 대한 학술논문

    ‘좋은 맛’이라는 뜻의 우마미는 인공조미료(MSG)의 정체를 처음 확인했던 일본 도쿄대학의 화학자 이케다 기케나에가 1908년에 처음 사용한 어휘다. 그런 우마미가 이제는 단순한 일본말이 아니라 웹스터 영어사전에도‘글루탐산이나 아스파트산과 같은 아미노산의 맛’이라고 등재되어 있고 학술논문에서도 당당한 전문 학술용어로 인정을 받고 있다. 1971년 이후에 ‘우마미’에 대한 학술논문이 2200여편에 이른다. 일본어의 우마미가 세계 모든 언어를 압도해 버린 셈이다. 이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입에 당기는 맛’이라는 감성적 의미의 ‘감칠맛’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우마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마미가 국제 학술용어로 인정을 받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MSG를 비롯한 우마미 물질에 대한 일본 과학자들의 생리학적 연구 성과 덕분이다. 더욱이 이케다는 MSG를 처음 분리해서‘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벤처 기업을 세웠고 그의 학생이었던 고다마 신타로와 구니나카 아키라는 IMP와 GMP와 같은 핵산계 조미료도 개발했다. 아지노모토 사는 지금도 전 세계 MSG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은 우마미의 실질적인 종주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쓰나미도 일본의 과학용어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경우다. 이제 쓰나미는 바다나 큰 호수에서 일어나는 지진, 화산폭발 사태(沙汰), 빙하 이동 등에 의해 일어나는 해일을 뜻하는 국제적인 전문 학술용어다. 해저 지형의 변화에 의한 해일에 대한 일본의 체계적인 과학적 연구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우리 기상청에서는 기압 저하에 의한 수면 상승이나 강풍에 의한 ‘폭풍해일’이나 백중사리에 의한 ‘고조(高潮)해일’과 구별해서 쓰나미를 ‘지진해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
    ㆍ우리말을 외면하는 과학은 남의 것
    물론 과학기술에서 영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를 못하는 과학자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과학자가 우리말을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우리말을 외면하는 과학기술은 절대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영어로 표현되는 과학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사정은 절대 달라질 수 없다. 국제화에 매달려서 우리말을 외면하는 과학기술은 과학자들만의 이기적인 잔치일 뿐이다. 국민이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성원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학술지의 세계화에 대한 욕심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백 개의 학술단체들 모두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세계적 학술지를 만들겠다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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