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1 생명의 근원은 탄소

浮萍草 2014. 2. 7. 20:30
    새빨간 단풍은 겨울나기 위한 생존투쟁의 산물
    탄소를 골격으로 하는 안토시아닌이 만들어내는 붉은 단풍잎
    해도 어김없이 단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중국에서 밀어닥친 희뿌연 스모그 속에서도 단풍의 강렬함과 화려함은 여전하다. 진홍색의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하찮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참나무 잎도 단풍의 고운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멋진 단풍은 생산의 계절인 여름 내내 짙은 녹음(綠陰)을 제공해주던 활엽수가 본격적인 월동 준비를 시작한다는 신호다. 힘든 더위를 이겨내고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깜짝 선물이기도 하다. 자연의 화려함은 가을 단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붉은 장미나 이름 없는 들꽃의 아름다움도 결코 단풍에 뒤지지 않는다. 과일 나무의 가지에 열리는 다양한 색깔의 열매의 화려함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연은 살아있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 덕분에 더욱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연의 화려한 색깔 잔치 뒤에는 탄소(炭素)의 오묘한 화학적 신비가 숨겨져 있다.
    ㆍ색깔 잔치 뒤에는 탄소의 오묘한 작용이
    식물의 잎 꽃 열매의 화려한 색깔은 엽록소(클로로필) 안토시아닌 카로테노이드 베타레인과 같은 낯선 이름을 가진 식물의 색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식물 색소는 모두가 탄소의 화합물이다. 어디에도 예외는 없다. 식물의 색소는 수십 개의 탄소 원자들이 정교한 육각형이나 오각형의 고리 모양이나 긴 사슬 모양으로 연결되어 만들어진다. 색소 분자들에 포함된 탄소 원자들 사이의 이중결합을 형성하는 전자(電子)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중 일부를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하면 영롱한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깔이 모두 만들어진다. 탄소는 모두 검을 것이라는 생각은 석탄과 흑연에서 비롯된 우리의 제한된 인식 탓이다.
    탄소를 골격으로 하는 안토시아닌이 만들어 내는 화려한 색깔
    식물이 우리 인간에게 공연히 자신의 화려함을 자랑하려고 화학적으로 복잡한 색소 분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식물의 화려함은 식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짙은 녹음을 만들어주는 엽록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탄수화물(炭水化物)을 생산하는 광합성(光合成)을 위한 것이고 꽃과 열매의 온갖 화려한 색깔도 식물의 번식과 성장에 꼭 필요한 곤충과 새를 유인하기 위한 것 이다. 심지어 화려한 낙엽도 자신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퇴치하는 타감(他感) 작용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단풍나무 밑에서는 잡초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의 화려한 색깔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맹독성의 화학무기조차 가리지 않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냉혹함이 숨겨져 있다. 지구상의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식물이 우리 인간을 위해 꽃과 열매를 오색으로 단장한다는 인식은 우리의 순진하고 오만한 인간중심적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는 생물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ㆍ탄소는 생물진화에도 결정적인 역할
    탄소화합물로 만들어진 단백질의
    구조
    탄소의 역할은 겉으로 드러나는 식물 색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식물을 포함한 생물은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를 통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색소를 비롯한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비법(秘法)을 터득한다. 물론 지구상에 등장했던 모든 생물이 자신에게 필요한 비법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생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비법을 확보하지 못한 수많은 생물은 자연에서 가차 없이 도태되어 버렸던 것이 냉혹한 역사다. 생물 진화의 핵심에도 탄소가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생물을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생리작용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수없이 다양한 단백질도 모두 탄소의 화합물이다. 그 뿐이 아니다. 생리활성을 가진 단백질 효소(酵素)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도 역시 탄소의 화합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미물(微物)에서부터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에서 예외는 없다.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바이러스도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 덕분에 세대를 이어간다.
    생명의 책으로 알려진 탄소
    화합물인 DNA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138억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광활하게 확대되어 버린 우리의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생명이 살고 있다면 그런 생명도 역시 화학적으로는 탄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현대 과학의 명백한 결론이다. 탄소가 없는 탈(脫)탄소 사회는 아무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 거칠고 메마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연료를 마구 사용해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에 의한 기후 변화의 문제를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탄소의 문제로 잘못 인식하는 오류를 하루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탄소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탄소문화’가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ㆍ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kr 서울대학교 화학과(1977)와 서울대학교 대학원(1979)을 거쳐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이학박사(1983)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원(1983-1985)을 거쳐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1985-현재)로 재직하고 있다. (사)대한화학회 회장(2012)을 거쳐 현재 (사)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론화학 및 과학커뮤니케이션이 전공이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2006)과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을 받았다. 저서 및 역서에는 이덕환의 과학세상,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이 있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