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심장박사 의 심장 이야기

화병이 심하면 심장병을 의심하라

浮萍草 2014. 1. 25. 10:19
    50대 이상 폐경기 여성은 심장병 사망 확률 급증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민요는 경북 경산 지방 부녀자들에게 구전되는 “시집살이 노래”다.
    결혼 15년 차 며느리 김모(45)씨에게는 앞으로 다가 올 긴 설 연휴가 오히려 더 원망스럽다. 
    명절이지만, 일부러 휴일근무를 자진해서 신청하고 싶을 정도로 피하고 싶은 명절. ‘
    남들은 명절이 길다고 좋아라하는데 이번 설 연휴는 또 얼마나 참고 견뎌야 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죄어오는 느낌이다’라며 한숨만 내쉰다.
    물론 민족 대명절 ‘설’은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풍요롭고 의미있는 자리이다. 
    이러한 명절을 잘 보내면 개인의 휴식과 가족의 유대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설 명절을 앞두고 응어리 진 듯이 가슴 갑갑함과 소화불량, 두통 등을 호소하는 이 시대의 며느리 아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른바 '명절 화병', ‘주부 화병’이라고 일컬을 정도이다.

    ‘화병’이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말이며 ‘hwa-byung’이라는 우리말 용어로 영어표기를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흔한 특징적인 문화관련 증후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편과 시부모와의 관계로부터 야기되는 고통스런 결혼생활 가난과 고생 사회적 좌절 개인적 성격 특성으로부터 오는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 절망 등의 특징적 감정반응을 말하며 이와 같은 감정반응을 계속 억제하고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서 화병이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병’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주로 감정표현을 못하고 지내다 감정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미국 정신의학회 및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분노 증후군(anger syndrome)’이라는 정식 질병의 하나로 공인하고 있을 만큼 괴로운 질병이다. 하지만 이같이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 막연하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자가 진단하고 넘겼던 ‘화병’이 중년여성의 심장병 진단과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슴을 움켜쥔 채 응급실에 실려 가는 상황이 발생해도 구급차 안 중년여성 환자는 ‘내가 왜 이러지 체했나? 오늘 시어머니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걸 내가 너무 스트레스 받았나? 신경성인가? ’등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것도 울화가 치밀어 오른 화병 탓으로만 여기기 쉽고 협심증 심근경색 등을 떠올리며 ‘내가 설마 심장병?’ 이라는 의심은 결코 쉽게 하지 못한다. 대한심장학회가 10년간(1995년~2004년)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의 발병율 및 사망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대 폐경기 이후 여성들의 급성관상동맥증후군 발병율 및 사망 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의 심장은 남성과 달리 폐경기 전에는 여성 호르몬의 보호를 받으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콜레스테롤의 분비를 조절해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그런데 갱년기 이후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감소는 심장 주변 혈관과 심장벽도 점점 경화(硬化)시켜 심근경색의 위험을 더욱 높인다. 폐경기 이후 동맥경화에 의한 질환이 급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년여성의 경우 직접적인 흉통 외에도 숨이 차거나 머리가 무겁거나 불안감 소화불량 등 때로는 통증은 없는데 힘이 없고 피로한데다 숨이 심하게 차는 듯한 증상 가슴 이나 배 쪽은 괜찮은데 등이나 팔 쪽만 아픈 경우 등 다른 복합적인 증상을 겪는 예가 많아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일종의 전반적인 정서적 과도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 ‘위장병’등으로 자가진단하고 소화제와 우황청심원 복용 심지어 손가락을 따는 등 민간요법에 의존하다 심장병의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 중년여성의 심장병이 이처럼 소홀하고 무관심하게 다뤄지는 것은 남성은 30∼50대의 한창 일할 나이에 쓰러져 주목을 받는 반면 여성은 50대 이후 주로 발병해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등 대체로 남성보다 늦게 발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도 현모양처였고 그의 아내도 현모양처였다. 그래서 당연히 궂은 일은 그 여자들의 몫이었고 좋은 일은 그의 몫이었다. 거친 음식은 그 여자들의 것이었고, 맛있는 음식은 그의 것이었다. 진자리, 차가운 자리는 그 여자들의 것이었고 마른자리, 따뜻한 자리는 그의 것이었다. 그들이 같이 낳은 아기도 벙글벙글 재롱 필 땐 그가 안았고 보채거나 똥 싸면 당장 그 여자들의 품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현모양처는 꾸준히 그들을 궂은 일, 어려운 일, 싫은 일로부터 보호해 왔었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 ‘살아있는 날의 시작’의 일부이다. 과거 일반적으로 결혼한 중년여자의 행복이란 남의 눈에 팔자 좋은 여자로 비쳐지기를 원하고 욕구같은 건 아예 억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이른바 재래식 부덕이 통념으로 되어 왔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십대 중년여성은 사회제도의 피폐함과 남성우위 사고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차츰 자아를 찾아 ‘희생’이란 거룩한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삶의 유린이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화병 속병 심장병을 앓으면서 우리시대 어머니 그리고 나의 아내 나의 사랑스런 며느리가 아직까지도 누구보다 더 인내하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달라졌어도 변함이 없다. 먼 곳에서 그녀들의 아픔을 들으려 하지 말라. 그녀들이 자식 남편 부모 등 사랑하는 가족 누군가에게 갑자기 소홀히 하는 일은 없는지 혹시 어딘가 아프기 때문은 아닌지 가까이서 살펴보고 그녀들의 속이야기를 들어 보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함께 병원에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아닌가. 이것 역시 처음이 어렵다. 먼저 귀를 열고 손을 내밀어보자.
    Premium Chosun         임도선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과장 dslmd@kum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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