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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감숙성 천수, 복희(伏羲) 신화의 고향 < 천수 1>

浮萍草 2014. 1. 17. 06:00
    여성은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망치는 위험한 존재'
    계(寶鷄)를 떠나 감숙성의 소강남으로 불리는 천수(天水)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는 멀리 위수의 강줄기가 보인다. 천수라는 지명은 ‘하늘의 강이 물을 따른다.’는 옛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천수로 향하려니 몇 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삼국지’ 관련 막바지 여행으로 기산의 무후사와 가정전투 현장을 둘러볼 때였다. 보계에서 천수까지 자동차로 2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좁은 비포장도로를 메운 트럭들로 인해 온종일 길에서 시간을 허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곳을 다시 찾게 되면 반드시 기차를 타겠다고 결심하였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개통되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때의 아픈 기억 때문에 기차를 탔다. 특쾌열차는 좁은 협곡을 아랑곳없이 내달린다. 하나의 터널을 지났는가 하면 어느덧 또 다른 터널 속에 있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났을까. 터널만 연이어 내달리던 열차는 어느새 천수역에 멈춘다. 역에 내리니 가장 먼저 맞이하는 글귀가 미소를 짓게 한다.
    협곡 가로지르는 고속철

    “복희 황제의 고향에 오신 손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천수는 중국신화 중 남신(南神)인 복희(伏羲)의 고향이다. 위수가 이곳에서 커다란 강이 되어 본격적인 황하(黃河)의 위용을 갖추는 곳이기에 복희 신화의 고향으로 안성맞춤이리라. 그런데 여신인 여왜(女媧)는 왜 말이 없을까.
    ㆍ최초, 최고의 神은 여성이다
    상고시대의 인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하여 성스러운 상상을 하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내용의 신화가 탄생된다. 신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신들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남신은 아니었다. 이는 여성중심의 사회를 남성중심의 사회로 변혁시킨 결과다. 이런 사실은 태초의 신이 항상 여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의 여왜(女媧) 한국의 삼신할머니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이 모두 최고의 여신이다. 여신은 생명의 탄생과 양육을 관장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여신은 원시모계사회를 배경으로 천지창조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는다.
    복희상
    듣건대, 옛날 옛적 큰불이 났었다네聞之遂古大火然兮 물 또한 끝없이 넘쳐 온통 바다였었다네水亦溟涬無涯邊兮 여왜가 나서서 돌을 깎아 하늘을 막았다네女媧煉石補蒼天兮
    중국신화에서 여왜는 창조신이다. 천지를 만들고 흙으로 인간을 빚어낸다. 오색 돌을 다듬어 구멍 난 하늘을 메우고, 거북의 다리를 잘라서 네 기둥을 세워 하늘과 땅을 구분하고, 갈대를 태운 재로 홍수를 그치게 하였다. 여왜는 우주질서를 바로잡고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한 위대한 여신인 것이다.
    ㆍ전쟁, 女神을 추락시킨 主犯
    그러나 한대(漢代)로 오면서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기르던 여신이 추락한다. 천지창조의 자리는 복희(伏羲)라는 남신의 차지가 되고 여신인 여왜는 그에 종속된 존재로 전락한다. ‘여왜는 복희의 여동생이다.(女媧, 伏羲妹)’ ‘여왜는 본래 복희의 아내다.(女媧, 本是伏羲婦)’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인‘산해경(山海經)’에 묘사된 여신 서왕모는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곤륜산 꼭대기에 사는 반인반수의 무서운 형상을 한 신으로 인간의 생사와 형벌을 주관하였다. 이러한 힘을 가진 서왕모의 모습도 중국 역사소설인‘목천자전(穆天子傳)’에 이르면 주목왕(周穆王)과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리거나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중적인 여선(女仙)으로 전락한다. 원시모계사회 때부터 위대한 신의 위치를 고수하던 여신들이 모두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복희 여왜도

    인류의 역사가 남성 위주의 가부장 중심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상고시대는 모계중심사회였다. 이 시기에는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비약적인 인구증가가 나타난다. 경제의 발달과 정치의 안정은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인구의 증가는 교류를 증대시켰다. 하지만 원만한 교류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 씨족이나 부락 사이의 마찰과 충돌이 빚어지고 이는 갈수록 격렬해졌다. 자연재해까지 겹쳐 생활터전을 버리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중원에 살던 토착민들과의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황제와 염제 황제와 치우의 각축은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위기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경험 많은 여성이 권위를 지킬 수 있지만 자연재해나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급한 때에는 씨족의 안전을 위해 남성이 결정권을 쥐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부장제도가 출현하고 여타 씨족들은 그들 가운데 가장 권력이 강한 자를 우두머리로 뽑아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받게 된다.
    복희와 여왜 화상석

    ㆍ남성, 여신을 아내로 삼다
    묏자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상석(畵像石)은 한나라 시대에 많이 출토된다. 이 화상석에는 중국의 신화나 역사는 물론 당대의 각종 생활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그림이나 벽화에서도 여신의 변천을 볼 수 있는데, 창조신으로서의 여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뱀의 형상으로 남신인 복희와 일체가 되어 있을 뿐이다. 일명 ‘복희와 여왜의 교미도’인 셈인데 이는 여왜가 창조신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복희의 배우자로서 생산에만 치중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즉, 가부장제도의 출현으로 남신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의 표현인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상(商)나라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 부계제가 정착되긴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계제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갈등은 바로 상주(商周)교체기다. 주나라는 모계제의 풍습을 이어오던 상나라를 타도하고 진정한 부계사회를 만든다. 부계제를 제도화한 종법제를 완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주례(周禮)를 완성함으로써 가부장 중심의 사회가 체계화되고 이후 대대로 이어지게 된다.
    곤옥산의 서왕모를 표현한 화상석

    제정일치사회에서의 점복은 매우 중요하다. 역(易)은 이러한 과정의 이치와 원리를 밝히는 것인데 당시에는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상나라 때의 역은 ‘귀장역(歸藏易)’이다. 이는 곤(坤)괘를 중시한다. 곤은 땅이고 음이다. 주나라의 역인 ‘주역(周易)’은 건(乾)괘를 중시한다. 건은 하늘이고 양이다. 이러한 ‘곤건(坤乾)’에서 ‘건곤(乾坤)’으로의 변화 역시 여성이 중심인 모계사회가 남성중심의 부계사회로 바뀌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ㆍ공자, 남성 중심 家父長制 완성자
    중국의 사상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줄기는 도교와 유교다. 도교가 카오스(chaos)적이라면 유교는 코스모스(cosmos)적이다. 도교가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여성적이라면, 유교는 완고하고 강하며 남성적이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는 유가철학에 의해 사상적으로 완성되는데 유가철학은 서주(西周) 초기에 주공(周公)에 의해 기초가 세워지고 춘추(春秋)시대 공자에 의해 완성된다. 그 후 맹자, 순자 등 뛰어난 후학들이 이를 보다 발전시키고 체계화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보다 이론적으로 무장된 유학은 한 무제가 국교로 삼으면서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중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국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유가사상이 통일 제국의 통치이념이 되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더욱 하락한다. 반고의 ‘한서’ ‘외척전’에 이르면 여성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하여 ‘나라를 망치는 위험한 존재’가 되어 정치에서 배제되고 급기야는 남성의 노리갯감으로 떨어진다. 물방울 머금은 배꽃들 아리따움을 자랑하고梨花帶雨爭嬌艶 안개 속 작약은 제 미모를 한껏 뽐내누나.芍藥籠烟騁媚妝 요염한 자태 움직여 얻을 수만 있다면 但得妖嬈能擧動 평생 즐거울 군왕에게 속히 데리고 갈 터인데.取回長樂待君王
    ㆍ여성 희생의 산물 “열녀문”
    여성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유향(劉向)의 ‘열녀전’이다. 이로부터 여성은 죽은 배필을 위해 남은 생을 홀로 희생해야 하고 어머니가 되어서는 지아비와 자식의 출세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이제 ‘도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대의명분의 희생물이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복희의 배우자로서 자손을 낳고 지극한 효행으로 집안을 번성시켜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열녀전 서문
    한나라 때의 수많은 화상석(畵像石)과 그림에 보이는 ‘복희와 여왜의 교미도’는 이제 더 이상 여왜가 여신이 아님을 천하에 선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여왜의 강했던 힘은 철저히 박탈당하고 지아비에게 순종하는 아내 아이들에게 자애롭고 희생적인 어머니 로서의 열녀문만 세울 것을 강요당하게 된 것이다. 삼 년의 시집살이三歲爲婦 궂은 일 힘들다 않고靡室勞矣 일찍 일어나 새벽에 잠들며夙興夜寐 조반조차 먹을 겨를 없이 지내며靡有朝矣 남편 말대로 이루고 나니言旣遂矣 오히려 이제는 구박만 하는구나.至于暴矣 형제들은 알지도 못하면서도兄弟不知 비웃는 듯 웃고 있구나.咥其笑矣 생각하면 할수록靜言思之 이 신세 한스럽기만 하구나.躬自悼矣
    우리의 조선시대 또한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여성 개인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고 필요하다면 목숨마저도 버리도록 강요하였으니 말이다. 열녀문은 이런 여성들의 억울한 죽음을 감싸는 수단이자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열녀문을 세우는 것이 저마다 자랑이요 가문의 영광이 되어 자자손손 칭송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천하 만물을 주재하던 여신은 진흙탕 속에 처박히고 만 것이다. 공자의 말씀은 항상 언행일치를 강조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인덕(仁德)을 중시하였지만 정작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았으니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 인의(人義)와 경애(敬愛)를 중시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ㆍ‘읍참여왜’의 현장에서
    복희 황제만 내세우고 있지만 천수 일대는 여왜신화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안현(秦安縣) 롱성진(朧城鎭)은 여왜의 고향이라고 한다.
    롱성진 마을에 이르자 장날인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북적이는 길 위로 여왜의 고향(女媧古里)이라는 팻말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 이곳은 또한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인 ‘가정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제갈량의 심복 마속은 제갈량의 조언을 잊고 수비하기 좋은 고지대로 이동한다. 하지만 물을 구할 수 없어 천혜의 요충지 가정을 포기하고 후퇴한다. 마속의 실수는 제갈량의 정치력에 결정타를 먹이는 꼴이 되어 결국 마속은 처형을 당한다. ‘ 읍참마속’의 현장에서 여왜의 사당을 보노라니 슬픈 감정이 솟구친다. 마속은 한 번 죽었지만 최고의 신에서 가부장제의 희생물로 추락한 여왜는 몇 번을 죽어야만 했던가. 눈물조차 마른 채 수천 번은 죽어야만 했으니 가정은 ‘읍참여왜(泣斬女媧)’의 현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왜를 최고의 신으로 모신 여왜궁

    노자는 우주의 에너지를 도(道)라고 하였다. 이 도는 무질서한 것 같지만 근원적인 힘이 있으며 한 군데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며 셋이 만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을 낳고 만물을 적셔주는 도의 이미지는 여성의 이미지와 같다. 여성은 창조적인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ㆍ여신의 부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섞여서 이루어진 것이 있으니有物混成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나 先天地生 적막하고 고요한 것이여. 寂兮寥兮 홀로 서 있되 고치지 않으며 獨立而不改 두루 행하나 위태롭지 않으니 周行而不殆 세상의 어미가 될 수 있도다. 可以爲天下母
    중국인들은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일치일난(一治一亂)’이라는 말을 잘 쓴다. 한번 다스려지면 한번 어지럽다는 말인데 이는 곧 나뉜 지 오래면 합쳐지고 합친지 오래면 반드시 나눠진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순환론적 역사관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21세기도 남성의 시대일까. 아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의 힘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부드럽고 감성에 호소하며 포용심 넓은 여성의 힘이 대세다. 그리하여 이제 수천 년간 이어온 남성의 신적인 권력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왜가 다시 수천 년을 비상할 것인가. 창조신의 자리로 되돌아 갈 것인가. 그것은 그동안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여왜만이 알 일이다. 그리고 복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
    Premium Chosun      허우범 역사기행 전문가(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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