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간박사의 간 이야기

2 연말연시 침묵의 살인자

浮萍草 2014. 1. 3. 06:00
    제 38살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병상 머리맡에는 사랑하는 그의 어린 딸들과 아내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 속에 웃고 있던 가족들은 이제 오랜 슬픔에 잠기게 되며 그의 아내는 혼자서 어린 딸들을 키워야 하리라.
    그는 고등학생시절부터 B형 간염으로 간이 나빠서 오랫동안 멀리 지방에서 본인의 진료를 받아왔다. 
    어머니와 함께 와서 간수치가 좋아졌다고 하면 유난히 밝게 웃고 돌아 갔으며 간 때문에 얼굴이 검은지 치아가 유난히 희게 보였다. 
    어려서부터 병을 오래 앓아 와서 그런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간염이 어린 나이에 일찍 시작되어 처음 진료실을 방문했을 때 이미 간이 굳어가고 황달까지 있었으나 다행히 B형 간염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서 매우 느리게나마 
    조금씩 좋아졌다. 
    여러 해를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와서 검사를 받고 꾸준히 투약 하면서 눈에 띄게 많이 회복되어 앞으로 지방에서 관리를 받기로 하고 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환자가 본인의 진료실을 다시 찾은 시점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던 중 간암으로 진단을 받고 나서이다. 
    여전히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특유의 침착함을 보이며 자신의 문제를 상의하였다. 그는 그 동안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갖고 캐나다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간의 상태가 좋아져서 더 이상 관리를 정기적으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캐나다는 의료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지만 실질적으로 캐나다 동포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의사의 진료를 쉽게 받기가 어렵고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고 한다.
    본인을 찾은 시점에 간암은 불행하게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크게 자라서 수술로 제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로 자라있었다. 
    고민 끝에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같이하는 치료를 시작하여 성공적으로 1차 치료가 끝나고 기다리는 중에 황달과 열이 나서 응급실을 찾았다. 
    폐렴과 패혈증(균이 전신에 퍼진 위독한 상태)이 동반된 상태로 중환자실로 간 이후에 생사를 오가는 투병중에 가족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났다. 이제 그가 믿던 영원한 안식처에서 더 이상 간암으로 고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뚱뚱해서 생기는 지방간은 방치하면 간경화·간암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양방향 화살표는 관리하고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조선일보DB

    필자는 간 분야에서 대학병원에서 근무한지 27년째로 그 동안 많은 간암환자의 문제를 지켜보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간암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관리하면 막을 수 있는 병이고 6개월 간격으로 정기 점검을 하면 조기에 발견하여 완치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도 많은 환자 들이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소홀히 하여 침묵의 살인자인 간암에게 고귀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 간암은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인한 사망 2위지만 가족을 지켜야 할 시기의 중년 남자에 가장 위험한 암이기 때문에 사회적 부담은 더욱 크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환자 처럼 나름대로 건실하게 술 한 방울 안마시고 성실하게 살아도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와 비교하여 이제는 간암의 주원인인 바이러스성 간염에 대한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되어 치료와 관리가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국가에서 무료로 간암 조기 검진도 해주지만 아직도 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간학회는 매해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하고 간암 예방을 위한 캠페인도 하고 세계보건기구인 WHO는 세계간염의 날을 정하여 전세계적으로 간염 퇴치를 위해 노력 하고 있으나 아직도 전세계에서 이 침묵의 살인자는 연간 50만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 간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전세계적으로 신생아에게 B형간염 예방접종을 1992년부터 시작하여 이 환자처럼 B형 간염으로 인한 간암의 사망은 앞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예외로 아직 B형간염 예방접종 조차 실시하지 않아 탈북자에서 간염 보유 비율이 매우 높다). 더욱이 많은 간염 치료제가 개발되어 이미 간염에 걸린 사람도 꾸준히 복용하면 간암을 예방할 수 있다. 간암의 두번째 위험요인인 C형 간염의 경우는 완치가 가능한 약제의 지속적 개선으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간암을 일으키는 만성 바이러스성 간질환에 의한 간암은 지속적 으로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암에 걸리는 환자들 상당수는 생업에 바빠서 자신이 병이 있는지 모르거나 알고도 적절한 관리를 잘 못하고 있다. 더욱이 술을 권하는 우리사회에서는 간암의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필자의 연구결과로는 술만 끊거나 습관성 음주만 피해도 간암 발생위험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본인이 간에 문제가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간암의 치료성적을 높이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로 간암팀을 구성하여 간암전문클리닉을 시작한지 올해 10년째다. 돌이켜보면 10년 전에 비해 치료성적이 괄목하게 향상 되었지만 침묵의 살인자는 아직 많은 사람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아직도 아까운 나이의 젊은 가장이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먼저 떠나는 것을 보면서 그를 지켜주기 못한 미안함에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건전음주와 간염예방 및 관리로 침묵의 살인자인 간암의 마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모든 일은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의 문제를 관심을 갖고 멀리 내다보고 미리 해결하여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를 바란다. 우리사회의 침묵의 살인자를 우리가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걱정이 된다. 연말 송년에 건전음주와 간의 소중함을 한번도 돌아보기 바란다.
    Premium Chosun         한광협 연세대 의대 내과교수 gihankhys@yuhs.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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