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실크로드 7000㎞ 대장정

2 한무제 첫부인의 애가(哀歌) "한번만 더 사랑해주세요"

浮萍草 2013. 12. 21. 06:00
    진황후의 질투와 실연, 흔적 없는 무덤…
    랑은 사랑으로 존재할 때 아름답다-(서안2)

    서안 시내로 들어서니 사방으로 통하는 길목에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반갑게 맞이한다. 모두 명나라 때 세워진 것인데 종루의 종은 성문을 여는 아침을 알리고 고루의 북은 성문이 닫힌 후 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였다. 한당(漢唐)의 수도였던 서안은 거대한 성벽이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도 웅장한 성벽이 서안 곳곳을 에워싸고 있지만, 이는 명나라 때 건설한 것이다. 성곽의 위치나 건설공법에 차이는 있겠지만 크기는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종루와 고루를 돌아보고 성곽의 동문인 장락문(長樂門)에 들어선다. 순간, 나는 2150여 년 전의 한무제(漢武帝)를 떠올린다.
    서안 종루(鐘樓).

    “만일 내가 아교(阿嬌)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반드시 황금으로 된 집을 지어 줄 거예요.” 한무제의 이름은 유철(劉徹)이다. 어린 시절 고모인 관도(館陶) 장공주(長公主) 앞에서 그녀의 딸인 아교를 황후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장공주는 유철의 약속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황제이자 오라버니인 경제(景帝)에게 유철이 14명의 황자 가운데 가장 영명하다고 끊임없이 간언한다. 장공주의 부단한 노력은 경제로 하여금 유철을 새로운 황태자로 옹립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울러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에 뛸 듯이 기뻤다. 황태자 유철은 16세에 황제에 오른다. 아교를 황후로 맞이하여 장공주와의 약속도 지킨다. 아교는 무제의 첫 번째 황후인 진(陣)황후가 된다.
    ㆍ무제도 어찌 못한 황후 아교
    진황후는 예뻤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질투심도 많은 여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장공주는 선황제와 각별한 사이인데다 남편을 황제로 만든 주인공이기에 진황후는 무척 거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제는 자신의 권력으로 정치를 개혁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기 10년은 힘겹게 보낸다. 관도 장공주의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황제에 앉혀준 데다 고모이자 장모였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서안 고루(鼓樓).

    구세력의 정치적 보루인 진황후와 개혁으로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젊은 황제. 이 둘의 관계는 일반적인 부부 사이와는 달리 미묘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물론 소년시절 황태자 유철은 아리따운 아교의 모습에 반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황금으로 만든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던 것도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진황후를 앞세운 외척들의 견제가 강해지자 무제는 그녀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황후의 성격도 나긋나긋하지 않았으니 부부 사이는 이미 허울뿐이었고 자식이 생길 리 만무하였다. 황후보다 더 초초한 사람은 장공주였다. 그녀는 황후를 위해 9,000만 냥이나 들여 온갖 용하다는 처방을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부부의 애정을 어찌 약이 대신할 수 있으랴.
    ㆍ아이는 없고, 밖으로 나도는 무제…파탄조짐
    황자를 생산하지 못하면 황후라도 권력의 심장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자식을 갖지 못한 진황후는 급기야 히스테리까지 부렸다. 무제의 관심은 더욱 밖으로 향한다. 자신의 정치역량 부족과 부부관계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수렵에 몰두한다. 신하들이 보기에는 무제가 바깥으로 나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황제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서안 성곽.

    어느 봄날 무제는 장안 동쪽을 흐르는 패수(覇水)에서 불계(祓禊․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첫째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 집을 방문한다. 평양공주는 열여덟 살의 동생 무제가 적적해함을 알고 비녀(婢女)들을 알현시킨다. 무제의 마음에 든 여인은 위자부(衛子夫)라는 가희(歌姬)였다. 아비가 누군지 몰라 어미의 성을 딴 사생아였다.
    ㆍ가희(歌姬)와 화장실에서 나눈 사랑
    무제는 이 여인과 ‘헌중(軒中)’에서 사랑을 나눈다. 헌중은 곧 ‘화장실’을 의미하니, 화장실에서 정사(情事)를 벌였다는 말이다. 당시 화장실은 욕조와 간이 휴식용 침대까지 갖춰져 있었다. 황제의 사랑은 받은 위자부는 그날로 궁궐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무제의 두 번째 황후인 위황후가 된다. 누이 평양공주가 동생의 마음을 든든히 지켜줄 배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무제의 사랑을 듬뿍 받은 위황후는 1남 3녀를 낳았다. 넷째로 황자 거(據)를 낳자 무제는 기쁨에 겨워 동방삭(東方朔)에게 황태자 탄생을 기념하는 부(賦)까지 짓도록 하였다. 무제의 기쁨이 클수록 진황후의 가슴은 질투로 타올랐다. 불안해진 진황후는 무제의 이궁(離宮)인 건장궁(建章宮)의 사인(舍人)으로 있던 위자부의 남동생 위청(衛靑)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위청은 친구 공손오(公孫敖)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무제는 위청을 건장궁 소속 시종무관(侍從武官)으로 임명한다. 이는 무제의 특기인 인재발탁의 지혜가 번뜩인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더 이상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당당한 황제라는 사실을 외척세력들에게 간접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위청은 이후 무제의 흉노정벌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한다. 진황후는 점점 더 깊은 실의에 빠진다. 어머니 관도 장공주도 마찬가지다. 초초하고 위태롭고 불안하면 일을 벌이는 법. 무제가 즉위한 지 12년째인 기원전 130년 진황후가 무고(巫蠱)의 요술로 위자부를 저주한 것이 발각된다. 무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외척세력을 뿌리 뽑고 명실 공히 황제의 권력을 굳건히 하기로 결심한다.
    ㆍ쫒겨나는 첫 부인 진황후
    진황후는 처형은 면했지만 폐위되어 장문궁(長門宮)으로 쫓겨난다. 장문궁은 장안성의 동남쪽에 있는 이궁으로 관도 장공주가 자신의 별장이었던 것을 황제에게 헌상한 것이다. 황제가 자신의 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갈망하며 바쳤을 터인데 딸이 갇히는 감옥으로 변할 줄이야. 어머니 장공주의 마음이 한없이 아팠으리라. 무제 또한 장공주의 은의(恩義)를 잊을 수 없었기에 그나마 진황후를 살려준 것이리라. 진황후는 장문궁에서 10여 년을 칩거하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장문궁에서 멀지 않은 패릉(覇陵) 낭관정(郎官亭) 동쪽에 묻혔다.
    패릉묘원.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진황후의 기구한 운명을〈첩박명(妾薄命)〉이라는 시로 표현하였다. 한무제가 아교를 총애한 나머지 漢帝寵阿嬌 황금으로 지은 집을 주었네 貯之黃金屋 하늘에서 기침하다 침이 떨어지면 咳唾落九天 바람 쫒아오다 구슬 된다고 하였네. 隨風生珠玉 지극하던 사랑도 시들해져 버리고 寵極愛還歇 정이 멀어지자 투기만 깊어졌네 妒深情卻疏 황제가 장문궁 앞을 지나갈 때에 長門一步地 잠깐이라도 수레를 돌리지 않았네. 不肯暫回車 빗물은 다시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雨落不上天 쏟아진 물은 다시 담기 어려워라 水覆難再收 황제의 사랑과 황후의 마음은 君情與妾意 동과 서로 따로 흐르고 各自東西流 어제의 아름다운 연꽃도 昔日芙蓉花 오늘은 뿌리 잘린 풀이 되었네. 今成斷根草 미색으로만 사람을 섬기면 以色事他人 좋은 시절 그 얼마이겠는가! 能得幾時好
    진황후가 잠들어 있는 낭관정을 보기 위해 패릉으로 향한다. 패릉은 한나라 문제(文帝)의 릉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패릉보다는 낭관정에 있다. 패릉은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찾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인지 몇 번을 물어야 찾을 수 있었다. 패릉은 산 전체를 릉으로 삼았는데, 풍수가들은 산의 형세가 ‘봉황의 입’모양이라 명당자리라고 한단다.
    패릉의 낭관정터.

    황제의 묏자리니 당연 명당자리일 터. 그래서인가 지금도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부근에 낭관정이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다. 마침 공무원들이 있기에 물어보았으나 낭관정 자체를 모른다. 낭관정을 찾을 수 없다는 허탈감에 젖어들 즈음, 할아버지 한 분이 오신다. 낭관정에 대해 묻자 해박한 지식과 함께 위치를 알려주신다. “옛날에는 낭관정 주변에 300여개의 비석이 있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다 파괴되고 일부는 사람들이 가져갔다오. 정자도 그때 다 부서졌지. 그러다가 얼마 전에 남은 비석들을 모아서 예전의 위치에 세워놓았는데, 지금은 얼마 없다오.”
    ㆍ나무와 풀더미만 우거진 곳, 진황후 묘는 찾을 길 없어
    풀숲을 헤치고 찾아간 낭관정 터에는 7개의 비석만이 따가운 햇살을 피하는 듯 띄엄띄엄 서있다. 나무와 풀 더미 뿐 진황후의 묘는 찾을 수도 없다. 미색(美色)이 아무리 출중한들 심색(心色)만 하겠는가. 사랑은 결국 고운 마음씨에서 비롯됨을 그녀는 진정 몰랐던 것일까. 풀들은 더위에 고개 숙이고 시간보다 빠른 바람만이 풀숲을 지나친다. 순간, 어디선가 애절하게 흐느끼는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를 한번만 더 사랑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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