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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가을은 달의 계절

浮萍草 2013. 9. 23. 09:16
    소멸~만월, 달은 ‘재생’ 상징
    산속 스님은 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세월이 저물어가고 천하가 추워짐을 알아 난 여름이 유달리 무더웠기에 음력 팔월로 접어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이 놀랍기만 하다. 바쁜 일상에 쫓겨 하늘 한번 쳐다보기 힘든 현대인들도 세월의 무상함 자연의 변화가 주는 감흥이 마음을 스쳤으리라. 추석(秋夕)이라는 말이 ‘가을밤’을 뜻하고 이제 추분(秋分)을 기점으로 밤이 길어지는 절기로 접어들었으니 가을은 긴 밤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달의 계절이라 할 만 하다. 어느 해안도시에는 달빛을 관광상품화 한 문탠로드(Moontan Road)를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달빛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서적 안정을 찾자는 것인데 선탠(Suntan)이 일광욕이라면 문탠이란 말은 월광욕(月光浴)이라는 뜻이다. 월광욕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지만 예전에는 단순한 달맞이 놀이가 아니라 달 기운을 몸으로 흡수하려는 일종의 월광욕 풍속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기를 원하는 여성들의 ‘달모래 찜질’과 ‘달힘 마시기’를 들 수 있다. 달모래 찜질은 보름달이 뜬 밤에 부인네들이 해변으로 나가 달의 정기를 간직한 모래로 배꼽찜질을 하는 풍습이다. 이렇게 하면 달의 정기를 체내에 흡수하여 냉이 없어지고 출산력이 왕성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또 보름 무렵 달이 만삭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를 때, 깊은 호흡으로 달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달힘 마시기(吸月精)’도 성행했다. 달의 음기를 깊이 흡수함으로써 출산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음(陰)의 대표주자로서 달이 지닌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취한 풍습들이다. 소멸했다가 살아나는 달은 재생을 상징하고 만월(滿月)은 충만한 생명력을 상징하기에 풍년과 출산을 기원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자연물인 것이다. 달이 충만한 가을에는 특히 여성과 관련된 풍습이 많아 추석을 지낸 뒤면 여성들이 시댁과 친정의 중간지점에서 친정식구들과 만나는 반보기.중로상봉(中路相逢). 중로보기도 성행했다. 혼인한 여성을 출가외인이라 여기던 시절에는 친정과 일상적인 교류가 힘들었다. 그러나 명절과 농한기를 맞아 친정나들이가 허락되면 중간지점에서 서로 만나 음식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중로보기는 모녀상봉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사돈 간이나 동년배의 상봉까지 이어져, 나들이가 쉽지 않은 여성들의 독특한 교류방식으로 전승되었다. 가을밤의 여성놀이인 강강술래를 중로상봉의 방식으로 행한 기록도 전한다. 호남지역에서는 두 마을의 형편을 잘 아는 이가 중로보기 마을중매를 서서 성사되면 보름날 밤에 마을처녀들이 초청받은 다른 마을로 가서 강강술래 판을 벌이고, 그 답례로 9월9일의 중구일에 상대마을 처녀들을 초청하게 된다. 이 행사는 억제된 신명을 풀어내는 여성들의 잔치마당이었기에 인근마을의 여성들까지 모두 모여‘큰애기 난장’이 벌어졌다고 한다. 옛글에“산속의 스님은 날짜 세는 법을 모르니 잎 하나 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하였고“작은 것으로 큰 것을 아나니 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세월이 저묾을 알고 병속의 물이 어는 것을 보고 천하가 추워짐을 안다”고 하였다. 각기 <문록(文錄)>과<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다. 이제 가을을 즐기는 다양한 세시풍속은 하나둘 사라지고 잎이 지는 걸 보며 가을이 왔음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하리라.
    ☞ 불교신문 Vol 2946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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