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50 보덕사 (上)

浮萍草 2013. 10. 9. 09:46
    ‘조선의 헐크’ 흥선대원군
    ‘상갓집 개’로 불리면서 20여년 와신상담 ‘조선의 자존심’‘나라 망친 주범’ 평가 상반 사학자들에게 있어서 흥선대원군은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 같은 존재이다. 헐크는 고질라처럼 파괴본능만 남은 괴물도 아니고 슈퍼맨같은 정의의 수호자도 아니다. 이같은 애매모호한 존재는 영화평론가들로 하여금 헐크를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게 만든다. 괴물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악당도 아닌 헐크를 무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흥선대원군이 역사학자들에게 헐크인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말의 위대한 정치가라는 평가와 함께 망국의 주역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어떤 학자도 그를 악당이라 단정 짓지도 훌륭한 인물이라 추앙하지도 못한다. 두 얼굴을 가진 흥선대원군은 한마디로 규정하기에 참으로 난해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킨 ‘위인’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발표된 논문들 중에 흥선대원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쟁이 한창이지만 우파적 역사관에서도 좌파적 역사관에서도 흥선대원군은 ‘나라를 말아먹은 노인네’ 취급을 받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시대를 착오한 최악의 결정이었다, 천주교도 수만명을 죽인 살인자다 아들을 앞세워 권력을 전횡하고 국가재정을 파탄케 한 장본인이다, 며느리와 진흙탕 튀기는 싸움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다 등등 대원군에 대한 혹평은 끝도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대원군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내리는 학자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은 집념이나 배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가 보통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조선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직시하고 있었으며 이를 부수는데 거침이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은 저자거리에서 ‘상갓집의 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비록 왕실 종친이기는 했지만 넉살 좋고 수완이 넘쳤던 그는 길거리의 깡패들과도 친구로 지냈고 양반들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술 한 잔 얻어먹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말이 좋아 왕의 친척이었지, 실제로 흥선대원군은 왕실 직계들과 수십 촌이나 떨어진 인물이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은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신군의 양자였지만 실제로는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6대손으로 흥선대원군이나 그의 아들들은 이미 200년 전에 왕위계승권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흥선대원군을 눈여겨보지도 위험한 인물이라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권력자들의 비위나 맞추던 파락호가 남몰래 왕실 큰 어른인 조대비에게 줄을 대고 있을 줄이야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조대비는 돌연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을 양자로 들여 왕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흥선군의 비범함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20여 년 전 그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조선말기의 야담집 <계압만록>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은 1849년(헌종 15) 안성 청룡산에 있는 부친 남연군의 묘소에 성묘를 가다가 정만인이라는 승려를 만났다. 이 승려는 흥선대원군에게 남연군 묘소의 풍수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2명의 왕이 태어날 명당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만인은 흥선대원군을 덕산으로 데려가 가야사의 법당 뒤편을 가리켰다. 그리고 언제 남연군의 관을 이관해올 것인지를 약속했다. 약속한 날 흥선대원군이 관을 운반해 가니 그 승려는 절 법당에 불을 질러 태우고 타지 않는 부처님은 쇠망치로 부숴 골짜기에 묻었다. 그로부터 3년 뒤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이 태어났으니 그가 후일의 고종이다.
    ☞ 불교신문 Vol 2951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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