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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浮萍草 2013. 8. 26. 11:01
    팔각구층석탑이 더욱 빛나는 것은 왜일까…
    금당인 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이지만,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이는 화엄사상을 널리 펼쳤던 탄허스님이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대웅전의 편액만 적광전으로 바꾸어 달았기 때문이다.기단부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은데 이는 일부 기단이 지표 아래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석탑이 많이 재현되었는데, 서울 종로 조계사 대웅전 앞의 팔각십층석탑도 그 중 하나다.

    석탑의 상륜부에는 역시 아홉 개의 보륜이 층층이 쌓여 있고
    한 개의 보륜마다 여덟 곳에 꽃모양을 두 겹으로 조각하여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것만 같다
    다음에는 꼭 동대위로 만월이 떠오를 때 찾아와야지…

    두대간의 중추에 자리 잡은 오대산(五臺山)은 중대(中臺)를 두고 북대, 남대, 동대, 서대의 다섯 봉우리가 모여 있어 오대산이라 부른다. 그 동대의 만월산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아 이곳에 자리한 절의 이름은 월정사가 되었다고 한다. 월정사의 기원은 643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머물며 기도했던 터에서 시작되는데 오랜 세월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왔으나 한국전쟁 때 모든 전각들이 전소되면서 고찰의 흔적이 이어져 내려오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금당 앞을 꿋꿋하게 지켜온 팔각구층석탑의 자태가 더욱 빛이 나는 것일까. 이 석탑은 우리나라 팔각석탑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석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은 흔치 않은 경우로 그 완전함에 옛 선인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함께 쌍을 이루고 있는 백색 화강암의 석조보살좌상을 보면 역사 속에 취해 있던 감정은 이내 흐트러지고 만다. 새 것 같은 보살상이 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보살상은 중생들의 심신의 병고를 구완한다는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손에는 향로를 들고 탑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원래 있던 것은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금 탑 앞에는 복제품이 공양을 올리고 있으니 가뜩이나 화강암을 기계로 다듬어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안스러운데 다시 만들면서 크기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연화대도 부쩍 높아져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진다. 또한 탑 주위를 크고 정형화된 난간이 둘러싸고 있어 경내 분위기를 경직시키는 것만 같아 못내 아쉽다. 그저 화엄사 등의 석탑에서 보이는 낮게 깔린 경계목 정도의 운치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 뿐이다. 한동안 탑을 돌며 자세히 살펴보니 탑의 상륜부에 거미줄이 근사하게 둘러쳐져 있다. 묘하게도 새로운 석조보살좌상의 백호(白毫)에도 조그마한 벌집이 붙어 있다. 생을 위한 자연의 적응은 옛 것에나 새 것에 대해 구분도 없는가 보다. 문득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마저 인간이 정해 놓은 하나의 기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내 아집을 나무라 본다. 긴 장마의 흐린 하늘이 또다시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가까운 처마에 몸을 피하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그 빗방울들은 탑의 상륜부에서 탑신을 지나 기단을 따라 흘렀다. 훗날 풍화가 심해지면 일부 석탑들과 마찬가지로 보호각을 뒤집어 쓸 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실내로 옮겨지고 이 자리에는 표정 없는 복제품이 대신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경한 풍경을 내 삶에서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이 순간 오대산을 배경으로 천년을 버텨온 아홉 탑신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 그래. 다음에는 꼭 동대(東臺) 위로 만월이 떠오를 때 찾아와야겠다. 절의 이름이 있게 한 그 밝은 달빛이 보듬는 석탑의 오랜 깊이를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 불교신문 Vol 2938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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