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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암사 마애이불입상

浮萍草 2013. 6. 21. 10:00
    눈부실 정도로 웅장하고 하얗게 반짝거리니 …
    둥근 갓을 쓴 원립불상은 남상(男像)이라 전해 내려오고 연꽃을 들고 있는데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나 천개(天蓋)를 씌우는 의미는 눈이나 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려시대불상에 많이 보여 진다. 두 석상은 얼굴 형태만 다르고 전체적인 기법은 같다. 양 어깨를 모두 덮는 법의를 입고 있으며 허리에 묶은 띠 매듭이 무척 선명하고 인상적이다. 온몸 여기저기 패인 자국들은 6ㆍ25한국전쟁 때의 탄알 흔적이라고 한다. 아픈 상흔의 역사까지 품고 있는 석상이다. 높이는 17.4미터에 이르며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늘날 아이를 바라는 많은 부부들이 불공을 드리러 온다고 하는 두 입불석상은 묘하게도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의 안식처인 서울시립공원묘지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저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그 우거진 숲은 내게 말을 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놓으라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기대라고…

    사각의 갓을 쓴 방립불상은 여상(女像)이라 전해지고 합장을 하고 있다.

    대웅보전을 비롯한 작은 절집이 두서너 채 뿐인 소담한 용암사 경내를 지나 숲 사이로 반듯하게 놓인 돌계단으로 접어든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나무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화강암의 하얀 빛깔이 초록 나뭇잎 사이에서 유난히 찰랑인다. 파주 용미리의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을 보러 가는 길 6살 딸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스케치여행이다. 아이는 유부초밥 도시락을 언제쯤 먹을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관심사인지도 모르지만 직접 준비물을 챙겨 어깨에 멘 작은 소풍가방에는 도시락 뿐 아니라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넣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드디어 계단이 끝나는 부분. 아이가 올려다 본 거대한 입불석상은 더욱 웅장하고 하얗게 반짝거리는 것만 같다. 마치 초여름의 이른 무더위에 눈이 부실 정도로! 용암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마애불이 만들어진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대략 고려 때로 짐작하고 있는데 사연인즉 이렇다. 고려 제13대 왕인 선종(재위: 1083∼1094년)은 자식이 없자 세 번째 부인으로 원신궁주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고 궁주의 근심도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두 도승이 찾아와 말하길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오. 지금 배가 몹시 고프니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꿈을 깬 궁주는 이 기이한 이야기를 왕에게 아뢰었고 왕은 신하들을 시켜 장지산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 곳에는 사람을 닮은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있었으니 왕은 즉시 바위에는 두 도승을 새기고, 옆에는 절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불공을 드리자 그 해 바로 왕자 한산후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창건설화도 재미있고 토속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석상의 푸근함도 마음에 든다. 산 언저리에서 아이가 그토록 기다려 하던 점심 도시락을 먹고 산사의 스케치를 담아 본다. 석탑을 그리는 아이에게 몇 층짜리 석탑인지를 물으니 이내 기단부터 상륜부 장식까지 열심히 세고 있다. 나는 최대한 쉽게 석탑이란 어떤 것이고 몸돌에서 층수를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다. 여섯 살에게 너무 이른 건 아닐까. 내심 편안하게 시작하려던 스케치여행을 따분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도 앞선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탑신부의 옥개석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내는 걸 보며 제대로 이해 한 듯싶어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 나는 아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앞서 그리다 멈춘 마애불 너머의 숲을 채워나간다. 그걸 보던 아이가 말한다. “아빠, 제가 숲을 쉽게 그리는 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아마 내가 숲을 그리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는가 보다.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초록색 색연필을 꺼내더니 거침없이 둥글둥글 선들을 감아 올려 자신의 스케치북을 채워 나간다. 어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인다. 태초부터 자리를 정하고 서 있는 듯 한 마애불의 미소처럼 부드럽다. 이내 스케치북 안의 숲은 작은 손 안에서 보글보글 부풀어 올라 생명을 얻는다. 그 우거진 숲은 내게 말을 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놓으라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기대라고.
    ☞ 불교신문 Vol 2919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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