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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음사

浮萍草 2013. 7. 12. 10:07
    티끌만큼의 짐이라도 내려놓고 싶어 
    단된 한반도 이남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모두가 잘 알듯 한라산이다. 제주도의 중심에 우뚝 솟은 한라산은 여러 번의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것으로 제주도는 그 자체가 한라산이라 말할 수도 있다. 이 산의 중턱에 제주 불교의 중심지라 말할 수 있는 관음사가 있다. 예로부터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독립적일 수밖에 없던 제주에는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과 사당이 많았다고 한다. 문헌상의 옛 제주 인구나 경제지표로 유추해 보아도 육지에 있는 보통 절 규모의 사찰이 500개나 있었을 리는 만무한데 아마도 그 만큼 다양한 신앙이 제주 전역에 퍼져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 이야기일 것이다. 제주의 불교는 고려 후기에 크게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당시 서귀포 부근의 법화사나 제주시의 수정사 등 몇 절들이 크게 융숭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절은 하나도 없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제주도의 불교는 쇠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특히 숙종 때 파견된 제주목사 이형상은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앞장서서 많은 절과 당을 불태웠다. 육지에 있던 절의 수난과 비교해 보아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이런 파괴는 당시 제주 불교가 상당히 토속성이 심했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1912년 비구니 안봉려관에 의해 법정암이란 이름으로 다시 창건된 절이 관음사의 전신이다. 또한 관음사는 제주도의 쓰라린 역사인 4ㆍ3사건의 치열한 격전지로 역사의 한 켠에서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은 1968년 복원되어 이어져 온 모습이다.

    제주시에서 벗어나 한라산을 향하는 산록도로의 오르막길에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멀리 한라산의 여러 오름들이 제주의 아름다움을 대변해 주었고 일주문을 지나 길 양옆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삼나무숲은 천왕문까지의 상대적인 거리감을 깊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제주의 현무암 돌담에는 단을 두어 석불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는 묘한 신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석불은 모두 108개라고 하는데, 이는 108번뇌를 상징하는 미륵불이라고 한다. 여행을 함께 간 가족과 사찰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절집의 커다랗고 누런 개 한 마리가 어슬렁 다가온다. 딸아이가 호기심에 먹던 빵을 조각내 던져 주자 좋다고 받아먹은 개는 아이 옆을 떠날 줄을 모른다. 대웅전 앞에서부터 따라오던 개는 천왕문까지도 줄곧 옆에서 배회 하고 있다. 아이에게 괜찮다며 안심을 시켰지만 불안해하던 아이는 천왕문을 지나자 일주문까지 꽁지가 빠지게 줄달음을 친다. 웃음도 나왔지만, 한가득 겁을 먹은 아이의 뒷모습이 안스럽기도 하다. 아이는 108미륵불을 지나 멀어져간다. 아마도 6살 아이는 어느 번뇌 하나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을 테지만 적어도 오늘 만큼은 어떤 괴로움인가를 맛본 관음사 방문으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개는 흥미를 잃었는지 이미 대웅전을 향해 저만치 멀어져 있다. 나는 일주문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아이는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인다. 어쩌면 뛰어 달아날 수 있는 괴로움은 가장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세상에는 훨씬 무거운 마음의 짐들이 가득 도사리고 있으니. 나는 많은 미륵불상 사이를 걸으며 티끌만큼의 짐이라도 내려놓고 싶어 마음속으로나마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눈앞에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흘러나온 기분 좋은 미소로 손을 들어 화답했다.
    ☞ 불교신문 Vol 2927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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