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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백중과 처서

浮萍草 2013. 8. 26. 09:15
    새로운 시작 그리고 충전
    농부들은 흙 묻은 쟁기와 호미 씻고 긴 안거 마친 스님들은 만행길 나서 추를 지나 열흘 넘게 계속되던 폭염도 한풀 꺾일 시기 처서(處暑)가 가까워졌다. 처서는 ‘더위(暑)가 그친다(處)’는 뜻이니 사람들도 스스로 여름의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가 된 셈이다. 옛사람들은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처서가 지나면 풀이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기운을 재밌게 담아냈다. 처서 이후면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니 추위에 약한 모기도 기세가 꺾여 입이 비뚤어지고 볕이 누그러져 식물도 생장을 멈추고 시들기 시작해 울며 돌아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제 자연의 운행은 봄.여름의 발산하는 기운에서 수렴하는 기운으로 넘어왔다. 이 시기를 하루로 압축해보면 해가 서산에 걸린 무렵, 일생으로 확대해보면 50대 무렵이라 할 만하다. 여름태양의 왕성함이 만물을 생장시켰으니 땀 흘려 일한 농부들은 수확을 기대할 것이다. ‘게으른 머슴은 저녁나절이 바쁘다’거나 ‘게으름뱅이 칠팔월에 애달프다’ 할 뿐더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저마다의 자화상 또한 삶의 여정이 압축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담론에 당당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의 순환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치가 되고 힘이 된다. 이 무렵에 드는 음력7월 보름의 백중은 삼원(三元)의 하나로 중원(中元)이라고도 부른다. 한 해의 으뜸 되는 가운데 날이니, 치열했던 전반의 막을 드리우고 후반의 새로운 막이 펼쳐지는 일단락의 시간에 적합한 이름이다. 백중이 되면 농부들은 쟁기와 호미를 씻고, 긴 안거를 마친 스님들은 다시 길 위의 수행으로 만행(萬行)에 나선다. 그런데 안거 중에도 자신의 수행에 허물은 없는지 돌아보고 참회하기 위해 초하루.보름마다 포살(布薩)을 행하는 데서 불교의 성찰적 면모가 드러난다. 포살의식은 초기승단 당시부터 열었던 뜻 깊은 법회이다. 어느 보름날 제자 500명과 함께 하안거를 마친 부처님이 대중들과 마주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몸과 말에서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말하라.” 위없는 존자 여래가 포살법회에서 스스로에게 혹시 비난받을 행위가 있었는지 대중들에게 물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많은 대중들이 모여 수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흐트러지고 해이해지는 마음을 바로잡고자 각자 지은 허물을 반성하고 대중 앞에서 고백하는 전통을 만들어 갔다. 이후 매달 8.14.15.23.29.30일의 육재일에 포살의식을 행하다가 인도의 신월제(新月祭)와 만월제(滿月祭)의 영향을 받아 초하루와 보름의 법회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부처님의 뜻이 지금까지 교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참된 수행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신도들이 함께하는 초하루.보름 법회도 부처님 당시부터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의식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출가자를 중심으로 한 법회요, 포살의식이었으나 참회수행에는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기에 자연스레 통합되었다. 그러니 불자라면 해제일인 7월 보름 나아가 매달 초하루.보름은 자신의 삶을 갈무리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다짐과 충전의 날로 삼을 만하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반성하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이라면 이미 종교적 삶을 살고 있는 수행자인 셈이다.
    ☞ 불교신문 Vol 2938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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