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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늦더위의 초가을 정취

浮萍草 2013. 8. 27. 10:32
    문을 밀기 보단 두드림이…
    세월 지나 문장 다듬는 ‘퇴고’의 유래는 ‘스님이 달빛 아래 문 두드린다’는 시구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낮의 더위는 처서를 무색케 하지만 해가 지고난 뒤의 선선한 기운은 하루가 다르다. 자연의 전령사들은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늘 노래로써 계절을 알린다. 밤마다 들려주던 초여름 도심 속의 개구리 합창소리가 기특했던 기억이 한참 되었고 맹렬하던 한낮의 매미소리도 어느덧 조금씩 멀어졌다. 얼마 전부터는 계절의 가수가 가을벌레들로 바뀌었으니 늦더위의 초가을 정취가 반갑다. 이에 가을속담 속 지혜를 새기며 가을채비를 해봄직하다. “가을비는 내복 한 벌”이라, 가을이면 비가 올 때마가 기온이 뚝 떨어진다니 채비를 해야겠다. 그러나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니 비가 오더라도 잠깐씩 내리다 그칠 모양이다. “가을안개는 쌀안개 봄안개는 죽안개”라 봄안개는 곡식에 해를 주지만 벼를 잘 영글게 하는 가을안개가 끼면 풍년이 들겠거니 해야 하리라.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이라 제철 만난 전어는 지방함량이 많아져 고소하고 비린내가 적어졌다. 여름채소인 줄 알았던 상추가 장마 지난 후부터 가을까지 제철이라“가을상추는 문 걸어놓고 먹는다”니“봄조개 가을낙지”로 꼽는 낙지와 함께 즐겨도 좋을 것이다. 들판에만 나가도 먹을 것이 그득하여 “가을들판이 딸네 집보다 낫다”는 수확의 계절에, 풍요로운 결실을 꿈꿀 만하다.
    그런가하면, 가을 무렵이면 떠오르곤 하는 글귀가 있다.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는 말이다. 이 짧은 문장이 꽤 인상적이었고 떠오르는 이미지 또한 어릴 적부터 마음에 들었다.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내용도 모르는 채 가을이 배경일 것이라 여겼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서야 글의 문장을 가다듬고 고친다는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가 된 시구임을 알게 되었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노새를 타고 장안을 거닐다가 시상이 떠올라 골몰하고 있었다. 그때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행차가 다가왔으나 알아차리지 못했고 호위병들이 호통 치며 그를 노새에서 끌어내렸다. 얼떨결에 끌려 간 그는 높은 관리 앞에서 자신이 길을 피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한적하게 사노라니 이웃도 드물고 풀숲 오솔길은 적막한 정원으로 통하누나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라는 시구를 떠올리면서 넷째 구절의 ‘두드린다(敲)’는 표현을 ‘민다(推)’로 할까 궁리 중이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한유는 그를 벌하기는커녕“내 생각엔‘두드리네’가 좋을 듯하군”하며 함께 시를 이야기했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이 일화로 인해 글을 고친다는 뜻과 아무 상관없는 ‘밀고 두드리는’ 두 낱말이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을 밀지 않고 두드리는 것은 낯선 곳임을 뜻하여 스님의 행보에 걸맞다. 김홍도는〈월하고문(月下敲門)〉이라는 작품에서 이 시의 정취를 표현했고 화제는 3, 4구를 옮겨 적었다. 5언율시로 된 이 시엔 계절이 담겨있지 않건만 단원 또한 황량한 나뭇가지에 걸린 달과 사립문을 두드리는 스님 모습을 영락없는 가을정경으로 그렸다. 달과 가을의 어울림뿐만 아니라, 운수승(雲水僧)의 발걸음 또한 가을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 불교신문 Vol 2940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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