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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서 맞이

浮萍草 2013. 7. 29. 10:08
    아예 더위를 껴안아라
    상대적 개념을 떠나라는 동산양개스님의 가르침 무더울수록 잠방이 걸치고 밭가는 일꾼 생각하길…
    위와 더위 굶주림과 갈증, 시름과 고민, 걱정과 질병…. 조선후기의 선비 이학규(李學逵)는 인간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여기는 여덟 가지 상황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책을 풀어나갔다. “추울 때에는 가난한 집의 아이를 더울 때에는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배가 고플 때에는 구걸하는 거지를 목이 마를 때에는 소금을 갈망하는 사람을 수심이 찾아올 때에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殉葬)을 당하는 사람을,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생각해보라.” 이른바 〈고통을 푸는 방법(譬解八則)〉이라 불리는 이 글은 책상물림 선비가 머리로 쓴 글이 아니라 굴곡의 삶을 겪으며 가슴으로 쓴 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2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족과 헤어져 귀양살이를 했던 고단한 선비였던 것이다. 고통을 이겨나가도록 묘사해놓은 그의 글을 읽어가노라면 고통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에 연민을 느끼며 손 내미는 그의 안타까운 상념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그는 수심이 찾아들 때는 집안에 큰 화(禍)를 입은 사람을 떠올리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붙이들이 모두 죽고 집안기물은 흩어져 없어졌으며 자신은 노비신세가 되어 외진 곳에 유배되었다. 지난시절 즐겁게 웃으며 노닐던 일들 돌이켜보니 마음은 미어지듯 하여 눈물이 먼저 떨어진다.” 또 번민할 때는 순장을 당해 산채로 무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을 떠올리라고 한다. “땅 속에서 위를 쳐다보니 시커멓기가 경쇠 같고 등불이 가물가물 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자유의 몸으로 하늘을 향해 서있다는 것만으로 지금 이 시름과 번민을 능히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고통을 푸는 그의 방법은 ‘비유’이다. 그리고 비유의 핵심은 자신이 처한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여름의 절정인 대서(大暑)에 즈음하여 더위를 이기는 그의 해법을 보면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생각하는 것이다. 정오의 불볕더위 아래 호미를 쥐고 밭을 갈면서 땀이 비 오듯 하는 일꾼에 비하면 지금 내가 처한 더위쯤이야 호사스러울 법하다. 동산양개(洞山良价)스님은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묻는 이에게 ‘더위에 뛰어드는 것 그래서 자신과 더위가 하나 되는 것’이라 말했다. 더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을 떠나라는 가르침이다. 더위도 시련도 나와 떨어져 대상화되면 그것에 끌려 다니기 쉽지만 나에게서 나온 것으로 주체화하면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선비 이학규가 내놓은 ‘비유의 해법’ 또한 마음먹기의 문제로 풀어나갔으니 동산스님의 뜻과 그리 멀지 않다.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은 지독하게 더운 어느 날 항선사(恒禪師)의 모습을 보고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지만 항 선사는 홀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네 선방엔들 무더위가 없으랴만 단지 마음이 안정되면 몸도 시원한 것….” 연중 가장 큰 더위라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이다. 불볕더위 속에서도 고단한 삶의 일터에서 저마다 열심인 이들이 곧 우리의 더위고통을 풀어주는 방책이다. 그리고 처처에서 서늘하고 선선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이 곧 우리의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한 바람이다.
    ☞ 불교신문 Vol 2931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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