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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

浮萍草 2013. 6. 20. 07:00
    여기만큼 의미 있는 변화가 또 있을까…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의 일주문이 특이하다. 길상사에는 없는 것도 많다.문 안으로 보이는 극락전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사천왕도 없고, 인왕도 없다.극락전에는
    단청이 없고, 아미타불 뒤의 후불탱화에는 색깔도 없는 먹탱화다. 갖추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없어서 편안한 절집인지도 모르겠다.
    래 전 불교가 전해진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마다 많은 사찰들이 있고 저마다 탄생의 배경이 되는 소중한 설화들을 간직해 오기 마련이다. 천년고찰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절이 있는가 하면 국사(國師)를 지낸 덕망 높은 고승이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이야기를 담은 절도 있다. 어디 하나 각별한 사연을 담지 않은 절집이 있을까. 하지만 서울 번화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북동에는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그렇다고 스님이 직접 뜻을 갖고 창건한 것도 아닌 절집 같지 않은 절집이 하나 있다. 짧은 역사와 더불어 더 없이 애틋한 창건의 사연을 담고 있는 이 절집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다. 지하철 한성대역에 내려 산책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길을 걷는다. 높다란 담벼락 사이의 성북동 부촌 골목은 또 다른 의미의 오솔길이다. 어느 집 하나 조금의 속내도 드러내 보이길 원치 않는 폐쇄적인 모습이 성북동 부촌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그 사이에 힘 있는 모습으로 선 길상사의 일주문. 예의 절집들 같지 않게 솟을대문 형태를 한 길상사의 대문이 그래서인지 낯설지만 더욱 반갑기만 하다. 길상사는 1995년 탄생한 젊은 사찰이다. 하지만 건물들까지 그 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절집으로 바꾼 것인데 이 예사롭지 않았을 건물들은 무슨 용도였을까? 놀랍게도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국내 3대 요정(料亭)으로 꼽혔던 대원각이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무소유’철학에 감명을 받아 1000억원이 훨씬 넘는 재산을 선뜻 불교에 내 놓은 것이다. 요정이 길상사라는 이름의 절로 비뀌던 날 요정 주인 김영한도 길상화 보살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의 바람대로 본당인 극락전에도 석가모니부처님 대신 아미타불을 모셨다. 극락세계를 관장한다는 아미타부처님. 그녀는 길상사가 시민들 누구나 와서 걱정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절이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곳이 극락아니겠는가?
    조각가 최종태 교수의 작품.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명동성당 입구에 두 팔을 벌리
    고 서 있는 예수님성상이나 성모마리아상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법정스님
    의 권유로 만든 수녀복을 입은 듯 한 이 보살상은 종교의 구분이라는 것은 일찌감치
    벗어낸 듯 조화로움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영한 여사의 애틋한 사연은 젊은 시절 근대시인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 때문에 더욱 깊고 아련해진다. 천재시인이라 불렸던 백석의 시집은 우리 시대 시인들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광복 뒤에 이어진 분단으로 북한에서 활동하고 생을 마감한 월북작가로 분류되어 한때 우리에게는 금서의 시집이기도 했다. 몇 년간 열애를 나누었던 두 사람,당시 만주로 함께 떠나자는 백석의 제안을 거절한 김영한은 결국 살아생전 다시는 그를 만나볼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김영한 여사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불교에 시주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어느 기자가 고령의 할머니가 된 김영한 여사에게 물었다. “그 분 생각을 언제 많이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으세요?”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할 거야.” “그 분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시를 쓸 거야.” 초봄의 한중간, 극락전 주변 바위에 걸터앉아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겼다.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는 이 봄빛 햇살도 곧 누구나 피하고 싶을 한여름의 뙤약볕이 되겠지. 그저 세상의 많은 변화들이 놀랍고 신비롭기만 하다. 그래도 요정에서 절집이 된 길상사처럼 의미스런 변화가 또 있을까 싶다. 고요한 경내에는 멀리 삼각산 자락을 휘 돌아 오르는 자동차의 간헐적인 엔진소음만 아련하게 전해져 왔다. 요정을 가득 채웠을 소모적인 웃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 그 자리에는 아미타불의 엷은 미소만 남았을 뿐이다.
    불교신문 Vol 2905호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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