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34 송광사 (상)

浮萍草 2013. 6. 22. 07:00
    아비 읽은 사자들의 기구한 人生流轉
    최고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왕실의 법칙
    소현세자의 후손들 줄줄이 죽음으로 내몰려
    글의 제왕 사자에게 유일한 적은 ‘더 젊은 사자’이다. 
    숫사자는 청년기가 되면 자신이 성장한 무리에서 쫓겨나는데 이때 다른 사자의 무리를 공격해 우두머리를 쫓아낸 다음 자신이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한다.
    젊은 사자가 늙은 사자를 몰아낸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늙은 사자의 새끼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행위이며 또한 새끼를 키우는 동안 멈춰있는 암컷의 발정기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사자는 자신이 정복한 무리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늙은 사자는 무리에서 쫓겨난 후 초원에서 방황하다 굶어죽게 되고 아비를 잃은 새끼 사자들은 힘센 정복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젊은 사자 또한 언젠가는 똑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먹이사슬의 최고정점에서도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는 사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같은 정글의 법칙은‘왕실’이라는 생태계의 습성과 소름 끼칠 정도로 흡사하다. 
    한국은 물론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잠재적인 왕위계승자는 젊은 사자의 출현과 동시에 제거돼 왔다. 
    그의 자식들은 온갖 역모에 연루되었고 그 집안의 씨가 다 마를 때까지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다.
    왕위계승 서열 1순위였던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줄줄이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은 늙은 사자의 새끼들이 물려죽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소현세자가 죽고 나자 인조는 서열 2순위인 소현세자의 맏아들 대신 자신의 둘째아들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이는 유교식 종법에 완전히 위배되는 일이었지만 인조의 뜻이 워낙 단호했기 때문에 신하들도 어찌해볼 방도가 없었다. 
    곧이어 소현세자빈 강씨가 사사되었고, 인조의 손자들은 모조리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소현세자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경선군은 12살 둘째아들 경완군은 9살 막내아들 경안군은 겨우 4살이었다. 
    경선군과 경완군은 제주도로 내려간 지 2년 뒤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두 왕자는 제주도에서 풍토병을 얻어 죽은 것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살해의혹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경안군만이 홀로 살아남았는데 이후 십 수 년 동안 제주에서 남해 함양 강화 교동으로 유배지를 옮겨 다니며 고단한 세월을 보냈다. 
    심양에서 태어난 경안군은 22살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생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1656년(효종 7) 방면된 경안군은 허씨를 부인으로 맞아 임창군과 임성군을 낳았다.
    하지만 기나긴 유배생활로 인해 경안군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둘째아들이 태어나던 1665년에 경안군은 결국 병사하고 말았다.
    2009년, 송광사 관음전 관세음불상 복장에서 경안군의 저고리가 발견되면서 송광사가 경안군의 원당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저고리에는 경안군의 병이 낫기를 발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안군의 원불이 조성된 것은 그가 죽기 3년 전인 1662년(현종 3)이었다. 
    경안군이 십수년의 유배생활이 끝난 후 깊은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복장물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경안군이 죽은 후 남겨진 두 아들에게도 아비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기다리고 있었다. 
    1679년(숙종 5) 강화도에서“임창군이 왕실의 종통이므로 임금으로 세워야 한다”는 흉서(凶書)가 나돌았다. 
    그 벽보 한 장으로 인해 임창군과 임성군은 제주도로 유배된 뒤 진도를 거쳐 해남으로 옮겨졌다가 5년 만에 방면되었다.
    임성군은 후사 없이 죽었고 임창군은 슬하에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의 맏아들이 바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된 밀풍군이다.
    
    불교신문 Vol 2914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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