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32 삼막사 (상)

浮萍草 2013. 6. 16. 07:00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의 비극
    볼모로 끌려간 세자부부의 눈부신 활약 인조, 왕위에서 쫓겨날까 극도의 불안감
    <소설 만다라>에는 ‘병속의 새를 꺼내라’는 화두가 나온다. 병 속에 들어간 새를 꺼내야 하는데, 병의 목이 너무 작아 새는 스스로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병을 깨서도 안 되고, 새를 병 안에서 죽게 내버려 두어도 안 된다. 필자는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병 속의 새를 끄집어내는 기분이 들곤 한다. 여자가 사람이 아니었던 시대에 그들 삶 속에서 역사적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라니 마치 새를 죽이지 말고 병을 깨지도 말라 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조선이라는 병 속에서 살아남기에 지나치게 뛰어났던 여성들은 대부분 병이 깨짐과 동시에 스스로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이들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조의 며느리이자 소현세자의 부인 강씨는 매우 총명하고, 안목이 뛰어났으며 수완이 좋았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무능하고 찌질한 시아버지의 나라, 조선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유능했던 것이 이 여자의 문제였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두 며느리는 청으로 끌려갔다. 소현세자와 세자빈이 심양에 이르기까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맨 처음 강화도로 피난해 청 군대에 잡힐 당시 소현세자빈은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을 시도했다. 시녀들이 말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곧바로 청의 포로가 되어 압송되었다. 심양으로 이송될 당시 수일동안 곡기를 먹지 못하고 꽁꽁 언 만주 벌판에서 노숙까지 했다. 하지만 세자빈 강씨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찾아내었다. 심양에 도착한 이후 이들은 청에서 내려준 땅뙈기를 붙이며 살아갔다. 강빈은 이 땅을 경작해 곡식을 거둔 다음 그 수익금으로 조선에서 표범가죽,수달피,약재 등을 수입해왔다. 그리고 이 물품을 청에서 팔아 비단을 구입하고는 이를 다시 조선에 보내는 방식으로 중개무역을 한 결과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다. 당시 청의 수도였던 심양에는 많은 조선인 포로들이 끌려와 있었다. 강빈은 조선인들이 노예시장에서 매매되는 현실을 목격하고는 그가 벌어들인 돈으로 많은 조선인들을 구출해 본국으로 송환하였다. 청나라 사람들이 심양관에 높은 몸값을 부르며 조선인 포로들을 속환하라고 떠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부 조선인 포로들은 둔전 경작에 동원되었다. <인조실록>에는 “(강빈이) 포로로 잡혀 간 조선 사람들을 모집하여 둔전(屯田)을 경작해서 곡식을 쌓아 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館所)의 문이 마치 시장 같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은 강빈의 탁월한 사업경영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자부부가 타국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 힘썼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소현세자 부부가 심양에서 지내는 동안 명나라는 패망했고,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접하는 등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인식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인맥과 경제력을 활용해 청 조정과 연결되는 외교적 기반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소현세자는 청과의 외교에서 현실론을 채택하는 한편 서구문명과 과학기술을 통해 조선을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키워갔다. 이는 물론 유능한 사업가로 변신한 세자빈의 적극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소식들이 전해질수록 찌질한 시아버지 인조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언제 청이 자신을 폐위하고 큰아들을 왕으로 세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청나라 조정에서는 군사나 군량 징발 등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면 소현세자에게 전결을 요구해 인조의 심기를 건드렸다.
    불교신문 Vol 2909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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