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관음성지를 찾아서

27 양양 낙산사

浮萍草 2013. 9. 27. 00:00
    화마도 비켜간 홍련암에 서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느끼다 
    자비로운 표정으로 사바세계를 바라보고 선 해수관음보살상
    가운 바람이 동해에 분다. 암벽에 부딪힌 높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져 간다. 바닷가 기암괴석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낙산사 홍련암은 이런 날 더욱 매력적이다. 지난 2005년 식목일에 일어난 화재로 낙산사는 거의 전소됐었다. 하지만 거대한 화마도 홍련암에 다다르진 못했다. 중국 당나라서 화엄교학을 공부한 의상스님은 670년(문무왕10) 신라로 돌아왔다. 조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해변 굴속에서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다. 그리고 671년 그 자리에 낙산사를 창건하게 된다. 지난 2일 양양 낙산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면 홍예문이 나온다. 홍예문에는 직사각형을 띤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됐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강원도 26개 고을서 석재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쌓았다고 전해진다. 홍예문을 지나 길을 따라 왼편으로 오르면 낙산사의 본전인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사천왕문은 아직 보수작업중이다. 사천왕문 옆으로 올라서니 고증을 걸쳐 새롭게 복원된 빈일루(賓日樓)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에도 명확하게 나오는 이 전각은 기록에 의하면 1888년 선학(仙鶴)스님이 중건하고 그 이후 어떤 연유로 없어졌던 모양이다.
     
    ▲ (左) 2005년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을 뒤덮은 거대한 화마도 홍련암을 덮진 못했다.사진은 바닷가 기암괴석 위 낙산사 홍련암.   
    ▲ (右)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과 칠층석탑

    1912년 해성(海星)스님이 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지난해 복원불사 회향식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빈일루를 지나 응향각을 지나니 원통보전 앞 석탑이 문 사이로 보인다. 불타는 잿더미 사이로 위태롭게 서 있던 옛 모습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원통보전 앞 7층석탑이 굳건하게 서 있다.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난 2007년에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원통보전에 기도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범종각 옆으로 난 작은 문을 나서면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나온다. 해수관세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이다. 가는 중 나지막이 관세음보살을 불러본다. 자애로운 표정의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를 넉넉하게 품어주듯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977년 점안한 해수관음상은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북 익산에서 약 700여 톤을 운반해 조성했고 높이가 16m나 된다.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멀리 설악산이 보이고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래로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일출로 유명한 의상대도 보인다. 홍련암으로 향한다. 2005년 화재가 났을 때 카메라를 들쳐매고 헐레벌떡 낙산사로 내려왔었다.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의 거의 모든 나무들이 거대한 불폭풍을 맞아 새까만 재가 되어 있었다. 바로 홍련암 바로 위 나무까지도 불타 사라졌지만 굳건히 서 있는 홍련암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신기해 했었다. 1300여년 전 의상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을 때도 동해의 푸른 바다가 이러했으리라. 초겨울 청명한 하늘과 청정동해가 맞닿아 바다 한복판에 관세음보살이 화현할 것 같았다.
    불교신문 Vol 2670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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