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육조의 생애와 사상

3 혜능과 부처님의 깨달음

浮萍草 2013. 4. 13. 07:00
    보살행…인류사상 최대의 공헌 ‘중도<中道>’를 남기다
    뭇꾼 혜능이 출가할 때 건넜던 오조사 앞 다리
    자도 모르는 24세 행자 혜능이 어떻게 불교, 유교 경전에 통달한 교수사 신수보다 먼저 깨쳤을까? 혜능은 일자무식한 나뭇꾼이었지만,어려서부터 홀어머님께 효성을 다한 마음씀이 그대로 수행이 되어 <금강경>을 듣는 순간 바로 발심(發心)이 됐다. 부처가 되고자 출가의 결단을 내리고 머나먼 거리를 걸어 간 과정도 수행이 되어 오조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음이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8개월 동안 행자로 있으면서 방앗간에서 대중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봉사한 그 마음 또한 보살행이 되어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갔다. 혜능은 불교와 수행을 배우지 않았더라도“모든 악을 짓지 않고 두루 선을 행하여 스스로 마음을 맑게 하라”는 칠불통게(七佛通偈) 가르침과 같이 그 마음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오조대사를 만나 문답할 때도 바로 부처의 성품은 오랑캐도 차별하지 않는다 했고 신수의 게송에 깨달음과 번뇌가 따로 있다 고 본 것이 잘못된 게송임을 간파했다. 혜능은 우리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깨달음과 번뇌의 양변이 따로 없고,차별할 것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는 금강경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혜능의 보살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선종의 육조로 추앙하는 조계혜능은 그렇게 경전을 읽거나 화두를 참구하거나 좌선했다는 기록도 없이 오직 효성을 다한 나뭇꾼 출신으로 8개월 동안 방앗간에서 일만 한 행자인데도 깨달아 육조가 됐다. 육조 혜능의 깨달음으로 보건데, 경전을 많이 보거나 출가하여 오랫동안 공부하거나 선방에서 오직 화두 하나로 장좌불와와 용맹 정진을 해야만 깨치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재가자라도 남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행자가 자기가 맡은 소임을 정성껏 하는 것,사판승이 대중을 위해 공심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대로 수행이 되어 깨달을 수가 있다. 이런 이치로 조주스님은“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 했고,임제스님은“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진실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했으며 운문스님은 “매일매일 좋은날(日日是好日)”이라 한 것이다.
    행자로 일하던 오조사 전경
    ㆍ부처님의 깨달음, 중도
    혜능은 무엇을 깨달아 오조로부터 인가를 받았을까? 오조 위로는 어떻게 법을 전해 왔을까? 여기에 부처님부터 오조까지 전해진 깨달음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부처님이 깨치고 처음으로 한 법문이 초전법륜이다. 다섯 비구에게 깨달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행주의와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를 깨달았노라! 비구들이여, 무엇을 여래가 깨닫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라 하는가? 그것은 곧 팔정도(八正道)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가 현등각한 바,눈을 열고 지혜를 일으키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라 한다.” 이것은 초기 경전보다 먼저 결집됐다고 전하는 남방불교 <율장(律藏, 마하박가)>에 기록된 부처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은 당신이 “중도를 깨달았다”고 선언한다. 이것을 ‘중도대선언’이라 한다. 이 법문을 듣고 다섯 비구가 깨달아 부처님의 제자로 귀의했다. 이것이 승가공동체가 되어 불교 교단이 처음으로 성립된다. 불교 교단은 부처님을 교조로 부처님의 깨달음이 중도라는 것을 기반으로 성립됐다고 하겠다. 불교 교단은 2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공동체이다. 그러나,부처님 열반 이후 500년이 지나 이 깨달음을 두고 많은 부파가 다툴 때 용수보살이 <중론(中論)>을 지어 부처님의 깨달음이 중도에 있음을 천하에 다시 알렸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출발이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를 바로 보고 실천하자는 운동이다. 성철스님은 1967년 가야산 해인총림에서 <백일법문>을 하면서“부처님의 이 말씀이 인류사상 최대의 공헌”이라고 평하였다. 부처님은 이 중도를 깨달아 인간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았고,이것을 인류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이후로 인간은 누구나 중도를 깨치기만 하면 생사를 해탈하여 절대적이고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처님은 팔만대장경에서 당신이 깨달은 중도를 팔정도,사성제,삼법인,무아,연기,불성,자성,법성 등등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이름만 다르지 중도(中道)로 회통하고 있다. 2600년 불교 사상사에서 유력했던 중관사상도 중도를 핵심으로 하고 있고 천태사상의 ‘쌍차쌍조(雙遮雙照)’,화엄사상의 ‘이사무애 (理事無碍)’도 표현만 다르지 중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불교의 33대 조사이자, 선의 6조인 조계혜능이 정립한 선종(禪宗)도 이 중도를 종지(宗旨)로 한다. 선종의 살활(殺活),정혜(定慧),무념(無念),진공묘유(眞空妙有),적조(寂照),체용(體用) 등도 모두 중도의 다른 표현이다. 이 중도는 부처님과 혜능 사상의 핵심인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조사 경내의 대나무숲.
    ㆍ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법을 전하고
    경전에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초전법륜 당시 다섯 비구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바로 돈오했다. 부처님은 “여기 여섯 아라한이 있노라!” 하고 선언했다. 그런데, 조사선문(祖師禪門)에서는 부처님은 마하가섭에게 법맥을 전했다고 한다. 그 증표가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三處傳心)고 알려진 “염화미소” “다자탑반분좌”,“곽시쌍부”이다. 또한,남방불교에서 핵심 경전으로 보는 <잡아함경>(권41)에도 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법을 전하는 기록이 보인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에게 말했다. ‘나의 분소의(糞掃衣)를 받아라.’ … 만약 ‘누가 세존의 법자이며 법의 재산을 부여받은 자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입니다’라고 대답하여라.” 또 남방에 전해지는 <아육왕전>에도 부처님께서 2조 마하가섭에게 법을 부촉하셨고 마하가섭은 아난존자에게 전법을 인가하여 3조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부처님의 깨달음은 2조 마하가섭에게 전법됐고 3조로 아난존자에게 이어진 것은 남방과 북방 불교가 공히 인정하는 전등 법맥이다. ㆍ28조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전하다
    소림사 달마굴 위 산 정상에 조성된 달마대사상.

    부처님의 법은 3조 아난 이후 여러 조사를 거쳐 제27조 반야다라존자에게 이어졌다. 반야다라는 어느 날 남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초청을 받아 궁에서 공양하게 되었다. 이때 왕의 셋째 아들 보리다라가 이 대선지식을 만나 대화하던 중 마음을 깨달았다. 그가 바로 달마이다. 반야다라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모든 법을 다 깨달아 나의 법을 받았다. 달마(法, Dharma)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이름을 달마(達磨)라 하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동쪽 나라에 가서 법약(法藥)을 크게 베풀라.” 이렇게 하여 제28조가 된 달마대사는 인도를 떠나 동쪽나라 중국으로 왔다. 인도는 부처님이 태어나고 깨치고 열반에 든 땅이다. 그런데 어째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제28대로 인가 받은 달마는 인도를 떠나 동쪽으로 왔을까? 이것은 선문(禪門)에서 유명한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祖師西來意)?’이라는 화두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달마는 3년에 걸쳐 해로로 왔다. 중국에 처음 닿은 곳은 혜능의 고향인 광동성 광주였다. 이때가 서기 510년경이다. 혜능이 태어난 것은 서기 638년이니 120년 앞이 된다. 달마대사가 도착한 중국은 저 유명한 <삼국지> 시대가 끝나고 5호16국시대였다. 당시 광동성 일대는 남경을 도읍지로 한 양(梁)나라 무제(武帝, 464~549)가 통치하고 있었다. 양 무제는 독실한 불자였다. 그는 인도에서 대선지식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친히 달마대사를 궁궐로 모셨다.
    불교신문 Vol 2902         박희승 조계종총무원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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