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육조의 생애와 사상

1 혜능에서 스티브 잡스까지

浮萍草 2013. 4. 2. 07:00
    인도인 부처님, 중국인 혜능 
    한국인 도의…깨달음은 하나
    “광동성 신주마을에는 ‘국은사’라는 큰 절이 있다 혜능스님이 75세에 고향으로 와 부모와 나라에 보은하는 뜻으로 ‘보은탑을 쌓은 뒤 열반에 들자 당 황제 측천무후가 절을 짓고 편액을 하사한 것…”
    조계 남화선사 조사전에 모셔진 육조 혜능 조사
    진신상.
    해는 육조 혜능조사의 열반 1300주년이 되는 해다. 금년 1월 종단 대표로선 처음으로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불교포럼’ 임원들과 육조 성지인 중국 조계 남화선사, 국 은사 등지를 참배하고 순례했다. 이에 본지는 육조 혜능조사의 성지를 중심으로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ㆍ육조 조계 혜능은 누구인가?
    혜능 조사(祖師)는 서기 638년 당나라시대 중국 광동성 신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가난하여 문자를 배우지 못한 채 나뭇꾼으로 어머님을 봉양하다가<금강경>읽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출가하여 8개월 행자생활 중에 확철대오하고 5조 홍인의 법을 이어 6조가 되어 선종(禪宗)시대를 연 위대한 인물이다. 법문집으로 <육조단경>이 전해오는데,부처님 제자 중 유일하게 ‘경(經)’자를 붙이며,선종의 종지(宗旨)가 담겨 있어 선 수행의 지침서로 가장 많이 읽힌다. 성철스님은 참선 수행자가 먼저 ‘단경’으로 사상 정립을 하라고 권했다. 기록에 의하면 모택동도 가까이 두고 애독했다 한다. 혜능 조사는 중국 남쪽 조계 보림사(지금의 광동성 소관시 남화선사)에 오래 주석하며 교화하였다. 만년에 고향 신주로 돌아가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들었는데 세수 76세로 713년 이었으니 올해로 1300년이 된다. 조사는 육조단경에서 단박에 깨친다는 ‘돈오(頓悟)’를 천명했다. 이것은 오조 홍인으로부터 수법 경쟁을 벌였으나 깨달음을 인가 받지 못하고 북쪽으로 가서 교화한 신수(神秀)대사의 점수(漸修)와 대비되는 사상이다. 육조로 인가 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교화를 편 혜능 돈오사상은 신수대사의 ‘북종(北宗)’에 대비하여 ‘남종(南宗)’ 돈오선이라 한다.
    국은사 일주문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불교포럼’ 순례단.

    당대에는 중국 수도였던 장안과 낙양에서 활약하며 측천무후를 비롯한 3대 황제에 걸쳐 국사(國師)로 모셔진 신수대사의 북종선 위세에 비해 남종 돈오선의 육조 혜능은 중국의 영남 광동성 일대에서는 ‘살아있는 부처(生佛)’로 존경받았으나 남쪽 변두리 사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혜능의 열반 이후 2~3대 제자에 이르면 북종선은 거의 법맥이 단절되어 버리지만,남종 돈오선은 마조와 석두 대에 이르러 강호를 제패하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우리가 흔히 ‘강호제현(江湖諸賢)’할 때 이 강호가 강서성의 마조와 호남성의 석두 선사 문하의 많은 선지식들을 일컫는 데서 유래 했다. <경덕전등록>에 의하면 혜능 조사는 남악회양과 청원행사 등 43인의 제자에게 깨달음을 전했다. 이 법맥이 마조와 석두에게 이어져 천하를 석권하여 후일 임제종겵떫옥?운문종.위앙종.법안종 등 중국선문 5가7종과 한국의 구산 선문(九山禪門)과 조계종, 일본의 조동종.임제종, 베트남, 대만으로 이어져 수많은 위대한 선사를 배출했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사상,문화,건축,디자인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현대 인류문명의 상징 스마트폰을 만든 미국 스티브 잡스도 일본 조동종 선사의 지도를 받은 선 수행자였는데,따지고 보면 잡스도 혜능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베트남의 틱낫한스님도 스스로 임제의 법손이라 한다. ㆍ조계 혜능과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
    육조 혜능 조사는 우리 종단의 법맥과 사상이 직결되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曹溪宗)할 때 ‘조계(曹溪)’가 바로 혜능 조사를 말한다. 이 조계는 육조가 오랫동안 주석한 중국 광동성 남화선사 앞에 흐르는 개울 이름이다. 남화선사의 뒷산 이름은 조계산이다. 조계란‘조(曹)씨네 개울’이란 말이지만,육조혜능이 주석하고 많은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여 돈오선 발원지가 되었기 때문에 육조의 돈오선을 상징하게 되었다. 조계에 주석한 육조는 43인의 전법제자를 두었는데,그중 남악회양은 마조선사를 거쳐 서당지장에게 남종 돈오선이 전해졌다. 우리 조계종조 도의국사는 서당지장에게 깨달음을 인가 받아 우리나라에 최초로 남종 돈오선을 전했다. 이때가 통일신라시대 서기 821년 무렵이니 육조가 열반한지 100여년 뒤가 된다. 도의국사의 가지산문을 필두로 9산에 선문(禪門)이 건립되었는데 그중 희양산문 외에 여덟 산문이 모두 조계로부터 남종 돈오선이 전해져 지금의 조계종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우리 조계종의 법맥은 육조 조계혜능에 기원을 두고 있다. 물론 육조 위로는 5조 홍인에서 초조 달마대사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조로 하는 것은 이 지구상의 모든 불제자 들이 같은 것이다. 혹자는 우리 종단이 중국 선종과 선사들의 법맥을 전승해온 것을 사대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이것은 불교와 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사선이 비록 중국 육조 혜능대에 와서 크게 발흥이 되었지만,육조의 깨달음도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다. 부처님이 중도(中道)를 깨달았듯이 육조도 역대 모든 조사들도 중도를 깨달았다. 다만, 그 표현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인도인 부처님이나 중국인 혜능이나 한국인 도의나 깨달음은 하나다. 불교를 제창한 부처님도 고대 인도 사람으로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인류세계에 보편적 진리를 전파하셨듯이,혜능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성취하고 전파하였기에 민족과 국적,인종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상인 것이다. 까닭에 민족과 국적에 집착한 시각으로 불교와 법맥을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ㆍ혜능, ‘금강경’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다
    국은사에 있는 육조의 부모묘.

    혜능은 중국의 남쪽 광동성 신주에서 범양 노(盧)씨 행도를 아버지로 이씨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래 지금의 북경 지역의 말단 관리였는데 좌천되어 신주로 유배되어 왔다고 한다. 당시 광동성 일대는 유배지였고, 이 지방 사람들은 오랑캐로 불리었다. 혜능은 세 살 때 부친을 여의고,홀어머니 밑에 자랐다. 어머니는 수절하며 혜능을 키웠지만 가난하여 혜능에게 문자를 가르칠 수 없었다. 어린 혜능은 나무를 해서 시장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뭇꾼 혜능은 어느 날 땔나무 산 손님을 따라 여관에 갔다가 문득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이 밝아졌다. 혜능은 그 손님에게 다가가 “그 글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님은“저 양자강 위 황매현 오조사에 가면 홍인대사가 이<금강경>을 의지해 공부하면 깨달아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말해주었다. 혜능은 이 말을 듣고 문득 공부를 해야겠다는 발심을 하고, 약간의 돈을 마련하여 외가에 어머니를 의탁하고 오조사로 홍인대사를 찾아 길을 떠났다. ㆍ국은사, 혜능 조사의 고향이자 열반지
    국은사 보은탑에 모신 달마대사가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지금 혜능 조사가 태어난 광동성 신주 마을에는 국은사라는 큰 절이 세워져 있다. 혜능이 출가 이후 75세에 돌아와 부모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보은(報恩)탑을 쌓은 뒤 76세에 열반에 들자,당 황제 측천 무후가 추모의 뜻으로 절을 짓게 하고 ‘국은사(國恩寺)’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지금 국은사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과 육조를 모신 조사전 등 전각이 있다. 육조가 본래 세웠다는 탑 터가 있고, 바로 옆에 다시 세운 보은탑이 있다. 육조가 세웠던 탑지를 2006년에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보물로 전시되어 있다. 이 부처님 사리는 초조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올 때 가져와 대대로 전해오던 것을 육조가 국은사에 봉안한 것이라 한다. 절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육조의 부모님 묘소가 있다. 올 1월에 총무원장 스님을 모시고 참배한 불교포럼 순례단 일행은 절 방장 스님으로부터 가끔 한국의 노(盧)씨 문중에서 참배하러 온다는 설명을 듣고는 ‘우리나라에는 노씨가 희귀한 성씨인데 직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것은 다 혜능 대사의 은덕이 아니겠느냐’는 우스개 소리를 나누고는 박장대소했다. 우리가 이렇게 국은사를 참배하던 1350여 년 전에 나무꾼 혜능은 구도의 일념으로 저 머나먼 양자강 이북으로 홍인대사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ㆍ필자 박희승은…
    근대 불교개화기 역사를 다룬 <이제 승려의 입성을 허함이 어떨는지요>,일제 강점기 종단 대표를 지낸 이종욱스님의 일대기<조계종의 산파,지암 이종욱>을 펴내는 등 불교사를 전문적으로 연구 하는 한편,여러 선지식을 모시고 선을 실참하고 사상을 연찬하는 등 교학 불교사, 선수행에 두루 밝다.

    불교신문 Vol 2898         박희승 조계종총무원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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