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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할(喝)’ 통도사 사명암

浮萍草 2013. 11. 28. 07:00
    “저 소리는 바람소리인가 풍경소리인가”
    무수히 달렸던 감들이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영각 앞에 감이 하나 매달려 있다.
    구도여행을 떠나는 청송스님과 우천스님.
    해 가을은 길다. 더위가 채 가시기 무섭게 추위가 닥쳐왔던 지난 몇 해와 다르다. 한 달 전 설악산에서 본 단풍이 이제 영축산에서 절정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는 잎에 더 이상 영양분을 주지 않는다. 나뭇잎은 찬란한 마지막을 울긋불긋한 빛깔로 회향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 간다. 작년에 개봉한 윤용진 감독의 영화 ‘할’은 독립영화다. 독립영화란 자본과 배급망에 의지하지 않고 창작자 의도대로 제작된 영화를 말한다. ‘할’은 상업성과 떨어져 있는 만큼 불교를 깊이 다루고자 노력한 작품으로 보인다. 젊은 우천스님과 그를 이끄는 청송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의 길’로 안내한다.
    우천스님과 청송스님의 이야기는 주로 중국의 조사와 선사들의 선문답이다. 청송스님이 던지는 화두와 함께 관객들은 두 스님의 구도여행에 기꺼이 동행한다.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이어지는 두 스님의 수행 수업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펼쳐진다. 그 이야기는 가을을 맞은 아름다운 절에서 시작한다. 그 곳이 바로 통도사 사명암이다. ㆍ참나 찾아 떠나는 여행 스승과 제자 문답에 오묘한 진리 담아내
      
    ▲ (左) 통도사 사명암 전경.▲ (中) 무작정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는 보살들▲ (右) 그림같은 가을 풍경이 펼쳐지는 사명암.

    불보사찰 통도사는 국내를 대표하는 거찰이다. 그 위풍에 맞게 산내에는 무려 19개의 부속암자가 있다. ‘할’을 촬영한 사명암도 그 중 한 곳이며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400m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4일 낙엽들이 쌓인 진입로를 따라 들어서니 아름다운 정자를 두 개 가진 사명암의 모습이 보였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의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라 전하며 1573년(선조 6)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스님과 신백스님이 암자를 지어 창건했다. 작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면 ‘사명암(泗溟庵)’이라 적힌 현판 달린 문이 나오고 그 뒤로 본전인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극락보전 오른편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영각 앞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데 이제 겨우 몇 개만이 남아 있다. 두 스님이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정자의 이름은 무작정(無作亭)이고 또 다른 정자는 일승대(日升臺)이다. 두 정자 모두 작은 연못 위에 아름답게 솟아 있다. ‘무작정’ 앞에서 나누는 두 스님의 첫 대화는 이렇다.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내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다. 허나 성품을 보는 지혜가 열리고 보니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더라 그러나 깨닫고는 다시 보니 그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놈아.” “스님, 그럼 깨닫기 전과 후가 같은 것 입니까.”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니놈한테 붉은 색을 어찌 설명할꼬. 정 그렇게 궁금하면 니놈이 직접 부처님을 만나 보거라. 이놈아.” 두 스님은 구도여행을 떠난다. 영화 속 우천스님과 청송스님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온다. “저 소리가 풍경소리냐 바람소리냐?” 청송스님이 묻는다. “바람소리도 풍경소리도 아닙니다” 라며 우천스님은 가사를 번쩍 들어 바람에 날린다. 영화 속 두 스님이 첫 대화를 나눈 무작정에서는 보살님들이 차담을 나누고 있다. 가을을 찻잔에 듬뿍 담아 마시는 듯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바람에 붉은 낙엽이 떨어진다. 이 좋은 가을 다 가기전에 무작정! 무작정 정자에 와 앉아볼 일이다.
    불교신문 Vol 2770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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