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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오세암’ 설악산 오세암

浮萍草 2013. 11. 21. 07:00
    “마음 다해 관세음보살 부르니 어머니가…”
     
    ▲ (좌) 만경대에서 바라 보이는 오세암. 설악산 단풍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우)오세암 동자각에 모셔져 있는
    동자상.
    눈썰매를 타고 암자로 돌아온 스님과 길손이
    담사 산내 암자인 오세암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관세음보살이 머무신다는 관음암인 이 암자는 백담사에서 약 6km 떨어 진 마등령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진하던 설정스님,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고향마을로 가보라고 한다. 스님은 고향 마을에 도착하니 괴상한 병이 퍼져 마을 사람은 모두 죽고 세살 어린아이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스님은 아이를 데리고 관음암으로 왔고 산속 생활에 적응을 잘 한 어린이는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스님은 가을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양양을 다녀와야 했다. 험한 길에 아이를 데리고 갈수 없어“절밖에 나서지 말고 무서우면 관세음 보살을 외쳐라”라고 당부를 하고 산을 내려왔다. ㆍ깊은 산속 혼자 남겨진 다섯 살 아이의 기도에 관세음보살 나투다
    양양에 도착한 스님은 하루 지난 후 다시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폭설이 내려 도저히 다시 산으로 갈 수가 없었다. 겨우내 눈은 계속 내렸고 눈이 녹는 봄에야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식량이 남아 있지 않은 산속 암자에 다섯 살 된 아이 혼자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암자에 도착하자 스님은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살아있었다.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 그러자 갑자기 환한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다섯 살 아이가 간절하게 부르자 관세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아이가 성불하자 이 후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개칭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1년 작고한 정채봉 작가가 1984년 동화 <오세암>을 써서 발표했다. 동화<오세암>은 이 후 10만부 이상 판매되는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동화를 원작으로 2003년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제작되었다.
    오세암 관음전. 뒤로 관음봉과 동자봉이 보인다.

    설악산을 찾았다. 자연히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향하고 있다. 백담사를 지나 오세암으로 향하는 길 이 곳에서는 특별한 단체를 자주 만난다. 회색 법복을 입고 새 등산화를 신은 나이 지긋한 여성분들이다. 이들은 봉정암과 오세암에서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는 불자들이다. “저녁예불하러 법당에 갔는데 들어갈 틈이 없어서…”, “어제 밤에 많이 추웠어요”하며 힘든 이야기를 하지만 표정만은 밝다. “하지만 열심히 기도했고 너무 좋았어요. 내년에도 꼭 다시 올겁니다.” 한 노보살님이 조심히 올라가라는 인사를 하고 나무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절뚝 산을 내려간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계곡에 화려했던 단풍이 오세암 위쪽으로 이미 사라져 버렸다. 카메라를 든 한 아저씨가 지난 주가 정말 좋았다고 단풍이야기를 전해준다. 비록 단풍이 많이 사라진 설악산이지만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오세암은 647년(선덕여왕13) 자장율사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 관음암(觀音庵)으로 창건했다. 이 암자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한 도량이기도 하다.
    오세암으로 향하는 붉게 물든 단풍길

    백담사와 오세암은 금강산에서 수도한 스님들이 중생교화를 위해 한양으로 갈 때 반드시 머무는 도량이기도 했다. 1643년(인조 21) 설정스님이 중건한 다음 오세암으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만일염불회의 염불하는 도량으로 참선수행자의 용맹정진 장소가 되었던 오세암은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만다. 그 뒤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근대엔 만해스님 또한 이 곳에 머물렀다. 우연히도 김시습과 만해스님 모두 이 곳에서 선종의 깊은 뜻이 담긴 <십현담(十玄談)>을 주해했다. 만해스님은 십현담을 주해하면서“매월당도 십현담을 오세암에서 주해했고, 나 또한 오세암에서 김시습의 주를 읽었다. 수백 년 후 접했건만 그 느끼는 바는 오히려 새롭구나”라고 술해했다. 오세암 가는 길 중 만경대가 있다. 만가지 경치가 보인다는 만경대에서는 오세암 뿐 아니라 설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세암을 바라보며 다섯 살 아이 길손이처럼 아무 욕심 없이 진심으로 불러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불교신문 Vol 2764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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