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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기전’ 의성 고운사 2013-10-17

浮萍草 2013. 10. 17. 07:00
    “부용반개속 천년고찰, 신선도 머무는것 같네”
    고운사 조계문. 천년송림 길을 걸어 오면 고운사 일주문 역활을 하는 조계문을 만난다. 2개의 민흘림기둥으로 세워진 조계문은
    크지 않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보물 제246호 석조여래좌상
    종대왕 당시 새로운 화기가 개발된다. 그 이름은 ‘신기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병기이다. 영화‘신기전’은 조선의 무기개발을 두려워하는 명나라 황실의 방해작전,그리고 그 것을 극복하고 최종 완성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기전 개발을 담당했던 연구소 도감 해산은 명나라 자객에게 습격을 당하고 그의 외동딸 홍리(한은정)만 피신한다. 왕은 그의 호위무사 창강(허준호)에게 홍리를 부탁하고 홍리는 부보상단 설주 (정재영)와 함께 신기전 개발에 나선다. 홍리가 명나라 사신단에게 잡혀 가는 장면이 나온다. 명나라 사신을 마중나온 많은 수의 여진족 병사와 함께 이동하는 장면이 바로 조계종 16교구 본사 고운사에서 촬영됐다. 남안동 IC를 빠져 나오자 마자 일차선도로가 나온다. 풍성한 가을 풍경을 담고 있는 시골마을로 들어선다. 이제 곧 수확을 앞둔 작물을 지키기 위해 반짝이는 인형모양의 풍선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허수아비도 매년 모습을 바꾼다. 고운사 가는 길은 거대한 본사를 찾아가는 길 같지 않다. 넓찍한 도로도 복잡한 사하촌도 없다. 작은 산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고운사 입구에 다다를 때 쯤 왼편으론 연밭이 오른쪽엔 ‘법계도인림’이 나온다. ㆍ“조선의 신무기 개발 중국에 시원한 설욕 고운사 송림길 담아”
    연밭에 이제 겨우 몇 송이의 연꽃만이 남아있다. 떨어진 하얀 연꽃잎이 작은 돛단배 마냥 연못위에 떠 있다.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숲으로 조성한 ‘법계도인림’은 법계도 모양의 길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한 것으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산문(山門)을 들어서자 터널처럼 숲길이 펼쳐진다. 영화 제작진들이 고운사를 촬영장소를 택한 것도 바로 이 숲길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홍리가 명나라 사신단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촬영된 곳이다. 일주문까지 이르는 1㎞ 천년송림체험로를 걷다보면 푸르름속에 속세의 잡념을 잊는다. 자연에 대한 감탄이 계속 이어갈 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주문을 만난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화엄사상과 함께 대유학자로 존경받는 최치원 사상을 간직한 도량이다. 의상스님과 최치원이 비록 20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고운사에 머물었지만 둘의 만남의 영향은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가운루가 눈에 들어온다. 길이 16m,높이가 13m에 달하는 3쌍의 긴 기둥이 계곡바닥에서 거대한 루를 떠받치고 있다.
      
    ▲ (左) 가운루. 고운사의 대표적인 건물로 개울사이에 가람을 연결하는 교각 역할도 하고 있다. 고운사(高雲寺)로 창건됐다가 고운
    (孤雲) 최치원이 여지.여사스님과 함께 가운루와 운허루를 건립한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 (中) 가운루 내부엔 기와에 그린 학생들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右) 신기전 개발을 돕던 금오스님. 명나라 자객에게
    목숨을 잃는다.

    고운사 대웅보전.
    최치원이 여지,여사 두 대사와 가운루(駕雲樓),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한 후, 그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어 현재까지 사용 되고 있다.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나 대웅전 구역으로 들어선다. 대웅보전 뒤 편 언덕에 개성있게 뻗어 있는 소나무들이 서로 우아함을 경쟁 하고 있다. 영화 신기전에서 명나라의 압력으로 조선왕실에선 포기했던 무기를 주인공 들이 개발해 명나라에 통쾌한 설욕을 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의 기술력이 세삼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설주는 무기 제작에 필요한 ‘황’을 일본상인에게 구하는데 일본상인이 원한 것은 한국의 대장경인 점도 흥미롭다. 조선 초기 일본에서 사신을 보내 수차례 대장경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전해 지고 있다. 우연히도 고운사에는 조선왕조와 관련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대웅보전 왼편에 절에서 보기에는 왠지 낯선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최초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연수전’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 지었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곳으로 절에선 볼 수 없는 단청 문양이 흥미롭다. 용과 봉황 뿐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태극문양도 눈에 띈다. 선방 옆에 있는 나한전에 오르면 대웅보전을 비롯해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꽃이 반쯤 핀 모습을 뜻하는 ‘부용반개’,고운사가 바로 그 반쯤 핀 연꽃 가운데 자리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한강 이남에 최고 명당터로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죽어서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그와 밀접한 인연을 간직한 고운사,뒷산 명칭도 뭉게구름을 뜻하는 등운산이고 가운루의 원래 이름인 가허루와 우화루 역시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것을 뜻한다. 신선이 된 최치원이 가야산에만 머물진 않을 듯 싶다.
    불교신문 Vol 2752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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