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화속 도량을 찾아서

18 ‘그 해 여름’ 밀양 만어사

浮萍草 2013. 8. 29. 07:00
    돌로 변한 물고기가 있다고? 
    시골소녀 수애가 서울청년 이병헌에게 만어사 돌멩이 물고기를 아느냐고 묻자 갸우뚱한 이병헌…사랑 잃고 수년만에 만어사 찾아가서 끝내 돌물고기 만나다
    만어사 미륵전 앞에 펼쳐져 있는 어산불영(魚山佛影). 많은 바위들이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

    만어사에 석영이 남기고 간 돌을 집고 있는 정인
    록이 우거진 싱그러운 여름날 잘생긴 이병헌과 청순미녀 수애가 그림같은 사랑을 나누는 영화‘그 해 여름’은 암울했던 1970년대 사회현실 속에서 젊은이 들의 고뇌와 애환이 녹아있다. 1969년 여름, 윤석영(이병헌)은 힘 깨나 쓴다는 부잣집 아들이다. 당시 대다수 대학생들이 온몸을 던져 3선 개헌 반대를 외쳤지만 석영은 그런 사회상황에도 관심이 없었고, 연애에도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 친구들에 이끌려 농촌봉사활동을 떠난다. ‘수내리’라는 농가에서 짐을 풀었다. 그 동네 한복판에는 마을회관격인 도서관이 있었고 거기서 꽃처럼 예쁘고 청순한 도서관 사서 정인(수애)을 만난다. 석영은 정인에게 빠져들고 정인 역시 서울서 온 대학생 석영의 사랑을 받아 들인다. 어느날 정인이 물었다. “만어사라고 알아요?”
    “아 그거 출판사?” 사찰 이름을 출판사 이름이냐고 묻는 석영에게 정인은 설명한다. “만어사는 절이예요. 거기에는 물고기들이 변해서 만들어진 돌이 많이 있어요.” 석영은 못믿는다는 듯 직접 가보았냐고 되물었고 정인은 네 살배기때 엄마 아빠랑 갔다고 답한다. 정인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왕 아들이 부처님이 되어서 하늘로 가고요. 따라왔던 물고기들이 돌로 변한거래요. 그래서 이렇게 비가 오면 돌로 변한 물고기들이 슬피 운데요. 예전에 갔을 때 비가 왔었는데 진짜 돌에서 뎅뎅뎅 소리가 나더라고요.” 밀양 만어사의 설화를 둘러싸고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한참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만어사를 찾았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삼랑진에 있는 만어사는 지금 4대강 개발사업이 한창이다. 거대한 덤프트럭들이 쉴새없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강줄기에서 벗어나 만어산에 오르자 번잡함이 사라지고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열매로 길은 검게 물들어갔다. 포장길이 끝나갈 무렵 만어사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돌너덜지대가 사찰 앞에 펼쳐져 있다. 너덜지대의 바윗덩이들은‘만어산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 부른다.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삼국유사>에도 만어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가야 수로왕 때 옥지라는 연못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이 산에 살았던 나찰녀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일으켜 4년 동안 오곡의 결실을 맺지 못하자 수로왕이 주술로 이를 금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부처님께 청하여 설법을 한 후에야 폐해가 없게 됐다. 그러자 동해의 용과 물고기가 모조리 바위로 변해 골짜기에 가득 찼는데 각기 쇠북과 경쇠소리가 났다고 전한다.
    돌멩이로 두드리면 “뎅뎅뎅” 종소리가 나 종석(鐘石)이라 불리기도 한다.

    만어사의 너덜 바위에서는 정말 종소리가 날까?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이 너덜의 돌 3분의2가 금옥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정말 종소리 나는 돌을 찾을 수 있다. 몇몇 방문객들은 목탁처럼 돌멩이로 바위를 두드리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너덜지대 위에 만어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466호 만어사 삼층석탑이 1000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웅전에 참배하고 미륵전으로 향한다. 미륵전에는 영화에서 정인이 말한 부처가 된 용왕 아들이 모셔져 있다. 용왕 아들이 이곳에서 큰 미륵돌로 변했다고 한다. 미륵전 안에 세로로 높게 선 바위가 바로 미륵부처님이다. 미륵전 앞에서 바라보는 너덜지대가 장관이다. 마치 미륵불로 변한 용왕의 아들에게 법문을 듣고자 수만마리 물고기들이 미륵전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영화 ‘그해 여름’ 석영과 정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무렵 둘은 뜻하지 않은 이별하게 된다. 서울역에서 헤어진 정인을 찾기 위해 석영은 전국을 누빈다. 그러다 예전 정인이 얘기했던 만어사를 찾는다. 정인이 얘기했을 때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고기가 돌로 변해 종소리를 낸다는 정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석영은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된다. 둘은 결국 살아서 만나지는 못한다. 40년이 지난 후 석영은 정인의 흔적을 찾는다. 늘 그녀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석영은 정인이 남기고 간 메시지 속에서 항상 그녀가 그의 곁에 있었음을 깨닫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는다. 이곳에 와서 용왕을 따라나선 물고기들은 오죽 간절한 마음이었으면 바위가 됐을까. 돌이 되고 난 후에 그 간절한 마음마저 비웠으니 청아한 울림으로 남으리. 누구든 만어사에 간다면 물고기 돌멩이에 깃든 기다림과 비움의 소리에 귀기울여 볼 일이다.
    만어사 경내.

    불교신문 Vol 2731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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