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화속 도량을 찾아서

16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원주 구룡사

浮萍草 2013. 8. 15. 07:00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기억은 지워져도 인연은 남는다
    서원을 세운 이의 뒷모습에서 향기가 느껴진다. 구룡사 사천왕문을 지나 차분한 마음으로 절로 향한다

    철수와 수진이 대목장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구룡
    사를 찾았다.
    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어느날 갑자기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떨까. 남자는 첫사랑 여자를 평생 마음에 간직한다고 하고 여자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져도 ‘잊혀지지 않는 여자’가 되고파 한다던데….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기억은 특별한 추억이다.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이라 더욱 애틋하기 마련.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아름다웠던 두 남녀의 사랑이,한쪽의 기억 상실로 점점 무너져내리는 가슴시린 영화다. 연애시절부터 건망증이 유독 심한 수진(손예진)은 철수(정우성)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수진의 건망증은 그러나 심각한 치매로 밝혀졌다. 영화제목처럼 머리 속에 지우개가 생긴 듯 날마다 조금씩 기억이 희미해 져간다. 결국 그토록 끔찍하게 사랑한 남편 철수마저 못알아볼 정도에 이른다.
    “우리 헤어지자.” 수진이가 제안했다. 철수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다그치자 수진은 울먹이며 분통을 터뜨린다. “다 끝난 거야. 기억이 없어지는데 행복이 무슨 소용이고 사랑이 다 뭐야. 다 잃어버릴텐데. 나한테 잘 해줄 필요도 없어 다 까먹고 말텐데.” 철수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말한다. “내가 대신 다 기억해 줄게.” 수진을 사랑하고 가여워 하는 철수가 안간힘을 쓰면서 붙잡았지만 수진은 결국 철수를 떠난다. 기억이 다 바닥나기 전에 사랑하는 마음만은 기억하고 싶다며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식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정우성의 연기는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를 보는 이 누구나 도저히 눈물을 감추기 어려운 장면이다. 사랑스런 아내의 갑작스런 치매 원주 구룡사서 영근 애달픈 사랑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인연
    보광루에서 바라본 구룡사 경내.

    수령 200년된 구룡사 은행나무
    치악산 구룡사는 철수와 수진의 사랑이 영글 무렵 둘이 찾아가는 사찰로 등장한다. 무뚝뚝한 남자친구가 자기 가족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자 수진은 철수의 할아버지가 대목장으로 있는 구룡사를 찾은 것. 함께 걸어가는 것 자체가 화보가 될 정도로 선남선녀인 정우성과 손예진이 천년고찰 구룡사 사천왕문에 이르러 합장인사를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금상 첨화라고 할 만하다. 구룡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 수진은 철수의 어려웠던 어린시절과 엄마로 인해 가슴에 못이 박힌 상처를 듣게 된다. 결국 구룡사 장면은 수진이 철수의 내면을 이해하고 두 남녀의 사랑에 진정 성을 불어넣는 효과를 발휘한다. 원주 구룡사를 찾았다. 매표소를 지나 구룡사까지 900m 숲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명풍 소나무길’ 이다. 이 곳 소나무가 바로 금강송이다. 절 입구에 있는‘황장금표(黃腸禁標)’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서 무단벌목(無斷伐木)을 금한다는 방으로 전국에서 유일한 역사적 자료다.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면 구룡사 일주문은 원통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도전을 지나 숲길을 따라 10여분 더 걸으니 구룡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룡사 천년 묵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아홉 바다 영험한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다. 668년(신라 문무왕8) 의상대사가 절터에 머물고 있던 아홉 마리 용을 물리치고 창건했다. 창건이야기는 아홉 마리 용과 관련 있지만 지금은‘거북 구(龜)’자를 쓴 구룡사(龜龍寺)로 쓰고 있다. 거북바위의 혈맥이 끊어져 사세가 기울었다는 도승의 이야기에 따라 거북을 다시 살린다는 뜻으로 구룡사로 바꾸었다. 보광루 아래 계단을 올라서면 금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 천불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에 지은 격조 높은 목조건축물이었던 대웅전이 200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대웅전 복원불사가 한창일 때 영화‘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영화에서 수진은 결국 모든 기억을 잃는다. 철수도 못 알아보고 결혼한 기억도 잃고 가족도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 수진 앞에 다시 철수가 나타난다. 둘은 마치 처음 만난 연인처럼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철수는 마치 처음처럼 수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이 없어져도 인연은 남아 살아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숱한 인연들이 오고감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나 혼자 기억하지 못한채 자만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만감이 교차한다.
    불교신문 Vol 2727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