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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부처님과 중생의 복

浮萍草 2013. 12. 17. 07:00
    “그 큰 두 발로 우리에게 福을 전해주세요”
    부처님, 큰 손발로 ‘복’전하지만 성취는 각자 몫 ‘육바라밀’닦는 대신 상징물로 욕심 채우려 안달 사찰 벽화에 박쥐.사슴 등장 ‘부귀.장수’ 발원
    화성 용주사 선록도
    찰에서 법회를 시작할 때 맨 처음 거행하는 의식이 불,법,승 삼보께 귀의 하는 삼귀의(三歸依) 이다. 요즈음은 삼귀의 첫 번째를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는 노래로 시작하여 ‘부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라는 의미로 전해져 거룩하신 그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옛날 전통적인 의식에서의 삼귀의는‘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하여 부처 님의 두 발에 귀의하는 의미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도대체 부처님의 두발은 인간의 두발과 어떻게 다르기 때문일까? 부처님은 이세상에서 복덕과 지혜의 두발을 모두 갖추셨으므로 중생들이 부처 님의 두발에 귀의하여 두 손으로 절 받으실 부처님 발을 받들어 자기의 머리에 대는 접족례(接足禮)로 최상의 예경을 올렸다. 대반야경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겁 동안 여러 가지 복덕과 지혜를 닦아 모으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온전히 갖추지 않으신 것이 없으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을 온전히 갖추셨고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이 청정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다. 또한 <대지도론>에“중생들이 불도를 성취하고자 함에 있어서는 무릇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 복덕의 문이고 둘째 지혜의 문 이다. 보시,지계,인욕을 행하는 것이 복덕의 문이고 정진,선정,반야를 행하는 것이 지혜의 문이다”고 하여 이 육바라밀을 통해 성불의 길이 있음을 밝혔다. <제법집요경> 아귀품에“사람이 보시를 행하지 않고 즐거운 과보 즉 복을 구한다면 이것은 등잔도 없이 불이 켜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선업을 짓지 않고서 어찌 즐거운 과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마치 세간의 맹인이 눈이 없어서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보시를 떠나서는 행복의 과보를 낳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하여 단연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지 않고서는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하여 보시를 성불의 제일 덕목으로 강조 하였다. 또한 <출요경>에 “복은 불에 타지도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는다. 도둑에게 빼앗기지도 않고 사나운 벼락에도 부서지지 않으며 창고에 두고 지키지 않아도 줄지 않느니라” 하여 자신이 지은 복은 오직 자신의 것이지 타인의 것이 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였다.
    대구 용연사 박쥐도
    사찰이나 길거리에서 불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생이 원하는 복을 누구에게나 주시기 위하여 부처님의 손은 큼직하다. 부처님의 손이 얼마나 크면“손오공이 십만 팔천 리를 달아나도 부처님의 손안” 이라는 표현이 생겼을까? 이 큼직한 손으로 모든 중생 쓰다듬고 위로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작은 금동불에서 커다란 석불에 이르기까지 서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커다란 두발을 일자로 둔 정지 상태가 아니라 대부분 한발을 앞으로 더 나아가 중생 곁으로 걸어오시는 진행형의 모습이다. 이 또한 중생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한시라도 머무를 수 없는 부처님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논산 관촉사의 미륵보살님을 살펴보면 중생을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미륵상생경>에 보면“미륵보살님이 도솔천 칠보대에 있는 마니전 사자좌에 홀연히 화생하셨다.
    몸이 염부단금 같이 빛나고 키가 십육 유순이며 32상 80종호를 두루 갖추었으며 정수리 위에 살상투가 있고 머리에는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여의주와 백천만억 견숙가 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을 쓰고 법의 수레를 설하여 크게 불사를 일으키신다.” 하여 경전의 내용대로 큰 키에 커다란 하늘관(天冠)은 미륵보살님의 위의가 흘러나오고 큰 손은 중생에게 커다란 복이라도 내릴 듯하며 큰 발 은 뚜벅뚜벅 중생 곁으로 걸어오셔서 관촉사가 바로 도솔천임을 나타내 보이고 있어 상상의 세계를 현실화한 조상들의 지혜에 탄복할 뿐이다. 인간의 복을 바라는 마음은 어떠할까? 지은 선업은 적어도 복을 차지하려는 마음은 꽤나 큰 것 같다. 먼저 수명이 길어지길 바라고 부귀가 뒤따라 올 것을 기대하여 자손이 번창하길 바라는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소망을 사찰의 구석구석마다 동물,꽃,과일,문자 등등 각양각색으로 표현하였다. 불상 앞 원패에는 ‘주상전하 수만세’하여 왕의 축수와 사찰의 내벽에는 박쥐,사슴,복숭아,석류,목단,영지,신선 등 다양하게 표현 하였다. 먼저 대구 달성 용연사 극락전 창방에 표현된 박쥐를 보자. 서양에서는 박쥐를 흡혈귀나 마녀의 상징으로 나타내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부귀다남(富貴多男)과 수복강녕(壽福康寧)을 상징하여 베갯모,귀주머니,가구,도자기 등 전통 문양으로 자주 쓰여 왔다.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복의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박쥐는 한자로 편복()으로 ‘’자가 ‘福’과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박쥐 두 마리를 그린 문양을 쌍복(雙福)을 의미하고 다섯 마리는 오복(五福 : 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을 상징하여 일찍이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박쥐를 거꾸로 그려 놓으면 복도(福倒)로 이것 또한 복이 도래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용연사 창방의 박쥐 문양은 부처님께 부귀다남을 기원하고자 하는 조상들의 염원을 잘 표현하고 있어 재미있다. 복이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거꾸로 비행하는 박쥐를 그렸으며 박쥐의 노란색 퉁방울눈은 야행성을 나타내어 부부지간의 사랑 을 강한 번식력에 비유하였다. 날카로운 이빨과 붉은 색 날개,호랑이 발처럼 두툼한 발가락은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뜻으로 표현되어 부귀다남,수복강녕을 부처님 전에 강력히 발원하는 해학성을 보여주어 이채롭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내목도리 윗벽 남측 면을 보면 조선 왕실이 바라고자하는 여유로운 신선의 삶과 같은 고상함과 고귀함, 십장생의 하나인 사슴의 표현으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흰 옷을 입은 신선이 구름 모양의 버섯을 들고 암수 두 마리의 사슴을 이끈다. 뿔 달린 수사슴의 등에는 남성을 상징하여 꽃 중의 으뜸을 나타내는 큼직하고 화려한 모란을 싣고 있어 왕실의 번성과 부귀를 발원 하고 있으며,암사슴의 등에는 여성을 상징하고 수연과 장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하늘 복숭아 선도(仙桃)세 개를 싣고 있어 옥황상제 가 먹는 신성한 복숭아 3개를 몰래 훔쳐 먹은 동방삭처럼 3000년 더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어 중생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법성게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부처님은 보배 비를 허공 가득 고루 뿌리나 중생들은 각자 가진 그릇의 크기만큼 만 이익을 얻는다” 하였다. 이처럼 부처님은 오직 중생들을 위해 큰 손과,발로 뛰며 복을 나누어 주려고 하지만 중생들은 육바라밀을 닦아 복덕과 지혜를 성취 하기 보다는 복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 안달이 나 사찰 구석구석 마다 부귀다남, 수복강녕, 수명장수 등의 상징물로 복을 구 하려 한다.
    불교신문 Vol 2461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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