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11. 호랑이의 익살

浮萍草 2013. 7. 9. 07:00
    높을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거의 사찰을 지나게 된다. 사찰에 들려 청량한 물맛을 느끼며 한숨 돌려 금당의 부처님을 참배하고 곧장 또 참배할 곳이 있으니 사찰의 뒤쪽 악간 후미진 곳 아담한 집 산신각에 모셔진 산신이다. 다소곳이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오늘 하루 산행이 즐겁고 무사하길 산신께 빌어본다.
    붉은 코 . 흰 눈썹의 우스꽝스런 표정 “虎虎虎”
    사찰 뒤 산신각서 참배객에 ‘친근한 손짓’ 아저씨처럼 친구처럼 산의 너그러움 전해
    김용사 산신도 호랑이
    으로 다행스럽다. ‘메이드 인 인디아’ 나 ‘메이드 인 차이나’ 로 불려지는 많은 신들 중에 사찰 에서 유일하게 ‘메이드 인 코리아’ 즉 한국 국적의 신이 산신이다. 고향의 정취가 배어 있는 한적한 소나무 밑에 있는 산신각을 보면 불교의 큰 포용성이 느껴진다. 다른 종교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사상이다. 한 지붕 밑에 다른 신을 모셔둘 수 있는 관용성,포용성은 불교가 인류에게 주는 행복한 선물이다. 우리 조상들이 산에 대한 경외심과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각이 산신각이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얼마나 무서워 했을까? 아마 지금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하리라.
    얼마나 두려우면 그 두려움을 잊는 방법으로 아예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살았을까?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하는 존재로 인식해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신은 조각보다는 주로 그림으로 그려 모시는 곳이 많다. 사람의 형태만 신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무서운 호랑이도 신으로 형상화하자면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자연히 호랑이는 산신을 모시는 비서 겸 승용차로 그 역할이 격하되며 사람들과 친밀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무서운 모습을 하면 누가 산신을 숭배하고 찾아가 존경심을 표하겠는가? 조금은 모자라는 호랑이로 어린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 그러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만약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신과 무섭고 사나운 모습의 완벽한 호랑이가 함께 표현된다면 그 두려움으로 산신도 호랑이도 사랑받지 못하고 외면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감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이것이 우리조상들의 지혜이고 안목이다. 해학과 익살, 웃음만이 그들을 사랑하게 하는 이유이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호랑이의 재미난 이야기는 자라나는 아이의 상상력을 높여주고 유머와 해학을 함께 전해줘‘무서운 호랑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보다 친근감을 준다. 조상님 같고 할아버지 같은 호랑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던 이러한 조상들의 생각이 호랑이를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동물로 표현 하였으리라.
    예천 용문사 산신도
    대부분 산신 모습은 흰 수염에 머리에는 관을 쓰고 옷은 붉은색 도포를 입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거나 깃털 부채를 들고 호랑이에게 기대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예천 용문사 산신도를 보면 산신은 머리에는 푸른 관을 쓰고 붉은 천으로 묶었으며 붉은 색 도포를 치렁치렁 걸쳐 입고 금빛 속옷을 살짝 보여줌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분임을 나타낸다. 한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학의 깃털로 만든 신비해 보이는 부채를 들고 편안한 자세로 호랑이의 등에 기대어 호랑이가 대견한 듯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산신을 모신 호랑이는 붉은 코에 흰 눈썹과 수염, 금빛 눈을 크게 뜨고 전방을 주시 하며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을 요량으로 너무나 얌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케 한다. “어이 자네 호랑이 맞아?” 무서워야할 호랑이의 우스꽝스런 표정은 조상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욕구를 들어줌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산신도의 해학미는 일품이다. 또한 케케묵은 이야기를 할 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 말한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다. 사찰 벽화에 남아있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그림을 통하여 해학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 있다. 서울 화계사 벽에는 재미난 호랑이 그림이 있다. 덩치 큰 백호가 꼬리를 앞으로 길게 늘어 뜨려 토끼에게 잡아먹을 의사가 없음을 나타 낸다. 그러나 토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긴 담뱃대를 선택 하였다. 마음이 바뀌어 달려드는 호랑이를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이다.
    불을 붙이는 자와 긴 담뱃대를 전달하는 자로 역할분담을 하여 담배 시중을 들고 있다. 요즈음은 담배가 백해무익하기 때문에 눈총을 받고 있지만 얼마 전만하여도 담배는 품위를 나타내는 기호품으로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담배의 가치 때문에 호랑이도 산중의 제왕 품위를 위해서 장죽의 담뱃대로 멋을 부렸으리라. 산중의 왕 호랑이와 연약한 토끼와의 공존! 상상을 뛰어 넘는 공생의 해학을 통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서로 돕고 살아가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만약 토끼가 없으면 장죽의 담배 맛을 평생 느끼지 못하여 제왕의 체면을 세우지 못하였으리라. 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마음이 더욱 여유롭고 풍요로워 표정이 밝아지는 즐거움을 느껴보자. 조상들이 그때에 느꼈던 마음을 읽어보면 악의가 끼어 있지 않은 서로간의 인정 속에 은근하게 나타나는 미소를 발견할 것이다. 호랑이 아저씨 왈 “토끼야 고마워 너희 덕에 내가 산다.” 그리고 문경 김용사의 산신도를 보면 호랑이 표정과 채색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다. 집 고양이 같이 생긴 호랑이가 앞 뒷다리를 한곳으로 모으고 산신 옆에 얌전히 서 있다.
    서울 화계사 벽화.
    순하고 말 잘 듣는 산신의 손자처럼 예쁜 얼굴로 참배객을 바라다본다. 반짝이는 선한 금빛 눈은 맹수임을 포기 하였고 길고 흰 눈썹과 콧수염은 막 세수를 하고 나온 듯 생기가 있다. 그래도 이름이 호랑이라고 튀어나온 송곳니가 어린아이 덧니처럼 귀엽다.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깜찍하게 그렸을까? 무서운 호랑이를 이렇게 그릴 수 있는 조상들의 해학과 재치가 번득인다.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나와서 함께 놀아줄 것 같은 멋쟁이 호랑이.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를 가장 가깝고 친근한 관계로 만들어 버린 우리 조상 들의 지혜가 놀랍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해학은 자연에서 나와 상상을 뛰어 넘는 창조성을 발휘한다. 우리 조상들이 그린 인자한 산신과 해학적이고 익살스런 호랑이는 산의 너그러움과 베푸는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우리 인간은 산에서 모든 것을 가져다 먹었음에도 모자라 이젠 산허리를 잘라내 나 편리한대로 쓰고 그것도 모자라 물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산신인 호랑이를 모시는 까닭은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산신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자 함이다. 산이 솟아 아름답고 내가 흘러 부드러운 우리의 산천을 산신과 호랑이를 통하여 우리조상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불교신문 Vol 2412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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