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7세기 한반도

22. 연화장세계

浮萍草 2013. 8. 24. 07:00
    신라인, 성속의 대립 넘어 화엄적 세계관 구현
    포천산 5비구·욱면비 서방정토로 극락왕생 원효 전생 도반인 사복 모친과 땅속으로 열반
    신라인들이 꿈꾸었던 연화장세계는 비로자나불의 공덕에 의해 장엄된 화엄의 불국정토다. 사진은 연화장세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유명한 경주 불국사.
    리는 흔히 세계를 둘로 나눈다. 사바세계와 불국(佛國)세계 예토(穢土)와 정토(淨土),차안(此岸)과 피안(彼岸) 등으로 그리하여 저쪽 언덕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꿈 꾼다.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西方)까지 가셔서 무량수불(無量壽佛) 전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올려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그리는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아, 이 몸을 남겨두고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을 이루실까.’ 이것은 신라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이다. 문무왕(661~681) 때 광덕(廣德)이 부른 향가다. 신라인이 꿈꾸던 정토(淨土), 그것은 서방 극락세계. 그래서 그들은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극락에 왕생하기를 빌었다. 포천산(布川山)의 다섯 비구는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서방정토를 구하기 수십 년 만에 연화대에 앉아 서쪽으로 날아갔다. 또 욱면비(郁面婢)는 염불서승(念佛西昇)했다. 그것도 법당의 대들보를 뚫고 신 한 짝을 버렸고,마침내 육신도 버렸다. 이렇게 신라인들 중에는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있다는 서방 정토로의 왕생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원효(671~686)는 말했다. 분명한 어조로 강조했다. “어떻게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이 있으며 어찌하여 동쪽과 서쪽이 있단 말인가?(何有淨穢之處 何有東西之處) 예토(穢土)와 정국(淨國)은 본래 일심(一心)이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도 결국은 둘이 아닌 것을.” 또 그는 말했다. “건너갈 피안(彼岸)도 이미 없는데, 떠나갈 차안(此岸)인들 어찌 있겠는가?” 그렇다. 이쪽 언덕에서 바라보면,저쪽 언덕에서는 우리를 손짓해 부르지만 저쪽에서 보면 다시 이쪽이 피안인 것을. 서쪽을 향해 10만억 국토를 지나가더라도 서쪽은 또 다시 저쪽에 있을 뿐인 것을. ‘법구경’의 다음 말씀도 새겨볼 일이다. ‘건너야 할 저쪽 언덕도 없고,떠나야할 이쪽 언덕도 없으며 아무런 근심도 없고 모든 속박 에서 해방된 이가 있으면 그가 곧 브라만이다.’ 사복(蛇福)설화, 7세기 후반 신라 왕경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설화의 주제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의 왕생이다. 왕경 만선사(萬善寺) 북쪽 마을에 한 과부가 살았다. 그녀는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았는데 열두 살이나 되도록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복(蛇福)이라고 불렀는데 사동(蛇童) 즉 뱀 아이라는 뜻이었다. 어느 날 사복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래서 사복은 고선사(高仙寺)를 찾아가 원효에게 말했다. “옛날에 스님과 내가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습니다.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원효가 함께 사복의 집에 이르자, 사복은 원효로 하여금 망자에게 계(戒)를 주도록 부탁했다. 원효는 시신 앞에서 축원했다. “태어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롭고(莫生兮 其死也苦), 죽지 말 것이니 태어남이 괴롭도다(莫死兮 其生也苦).” 사복은 말했다. “말이 너무 번거롭소.” 원효는 고쳐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괴롭도다.(死生苦兮)”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했다. “지혜(智惠)의 호랑이를 지혜(智惠)의 숲 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偈)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지금 또한 그와 같은 이 있어 연화장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게송을 읊은 뒤에 사복은 띠 풀의 줄기를 뽑았다. 그 아래에 인간세상과는 다른 한 세상이 있었다.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그 세계에는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이 장엄했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땅이 합쳐졌다. 원효는 돌아왔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래도 그 의미는 깊다. 사복 어머니인 과부의 전생은 암소였다. 그래도 경을 실어 나른 공덕으로 금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아들 사복을 낳고 살았다. 이제는 죽어서 연화장세계로 열반하고 있다. 이렇게 한 과부의 삼생(三生)은 불교의 명제(命題)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을 말하고 있다. 생(生)에서 사(死)로, 그리고 사에서 다시 생으로의 되풀이 이를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한다. 윤회는 괴로운 것. 그러기에 원효는 그의 죽음 앞에서 축원했다. “다시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말라”고. 사생은 고통이니, 이제 그만 생사윤회는 멈추라고. 사생은 고통스럽다. 이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사제(四諦) 중의 고제(苦諦)에 대한 설명이기에 그렇다. 변화하는 것은 고통이다.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오온에 집착하는 것도 고통스럽고,무상(無常)한 생사에 집착하는 것도 괴로운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에 집착함으로써 미망(迷妄)의 인생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 때문에 “죽지도 말고 태어나지도 말라”고 했다. 고통을 낳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윤회의 사슬을 끊으라는 의미다. 죽은 어머니가 아들의 등에 업혀 연화장세계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새겨듣는다면 이해할 수 있다. 전생의 소가 금생에는 여인으로 윤회했던 그가 이제는 생사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연화장세계로 열반하고 있음을. 열반은 곧 해탈 (解脫)이다. 연화장세계는 비로자나불의 공덕에 의해 장엄된 화엄의 불국정토다. 지혜와 자비로 행한 행원(行願), 그 행원의 공덕으로 이룬 연화장세계는 지혜와 자비로 가꾼 숲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사복이 풀을 뽑자 열린 그 아름다운 세상은 연화장세계다. 원효가 지혜와 은혜(자비)를 갖춘 호랑이를 지혜의 숲에 장사지냄이 마땅하다고 했던 것도 사복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라쌍수 아래 에서 열반했던 석가모니불과 같은 이라고 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연화장은 화엄 불국정토 생사의 고통 끊어진 세계 정토는 머나먼 서쪽 아닌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어
    연화장세계는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중의 비로자나장엄장누각과도 통한다. 선재동자는 52번째의 선지식 미륵보살을 만났다.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비로자나장엄장누각의 문이 열렸고, 선재가 들어가니 닫혔다. 넓은 누각은 수많은 보배로 장엄되어 있었다. 사복이 띠 풀을 뽑은 그 자리에 열린 연화장세계,망모(亡母)를 업은 사복이 그곳으로 들어가자 땅이 합쳐졌다는 이야기의 모티브는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튕겨 선재에게 보여준 비로자나장엄장누각과 비슷하다. 열두 살까지 일어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던 사복은 무슨 도력이 있어서 그의 망모를 연화장세계로 안내할 수 있었을까? 12라는 숫자에 열쇠를 숨긴 것은 아닐까? 생사는 12연기로 설명된다. 무명(無明)으로부터 시작하여 생(生),노(老),사(死)의 순서로 12연기를 관하는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한다. 순관으로 본 12연기는 윤회고 유전(流轉)이며 생사(生死)다. 12연기의 관법에는 역관(逆觀)도 있다. 사(死)로부터 무명을 관하면서 생사의 근본 원인이 되는 무명을 제거하면 12연기는 환멸(還滅)이 되고 열반에 이르게 된다. 12세까지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던 사복이 띠 풀의 줄기를 뽑자 연화장세계가 전개되었다는 것은 12연기의 역관과 무관 하지 않다. 살아 있는 사복이 죽은 어머니를 업고 함께 연화장세계로 들어갔을 때 그 땅이 합쳐졌다는 것은 미혹(迷惑)과 깨달음이 별개가 아니고 생사와 열반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뜻한다. 생사와 열반은 별개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라 각(覺)과 불각(不覺)에 따라 나타나는 상태일 뿐이다. 원효에 의하면, “우리들이 지금 연화장세계에 같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무명망심(無明妄心)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또 말했다. “나와 중생이 오직 긴 꿈의 침대 위를 망령되게 사실이라고 믿지만 이것은 나의 꿈일 뿐 사실이 아니다. 긴 꿈으로부터 확연히 깨어나면 본래부터 유전(流轉)함이 없으며 다만 이 일심(一心)이 하나의 같은 침상에 누웠음을 알 것이다.” 이 설화에는 신라인의 화엄적 인생관이 녹아 있다. 그들은 이미 사바세계와 불국세계, 현실과 이상, 성(聖)과 속(俗), 각(覺)과 불각(不覺) 등, 이원적인 가치관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의상(義相)은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라고 했다. 생사라는 이쪽 언덕과 열반의 저쪽 언덕이 함께 있다는 이 말은 생사와 열반이 결국은 둘이 아니라던 원효의 말과 다르지 않다. 원효와 의상보다 한 세대 뒤인 8세기 초에 활동했던 신라 승려 명효(明)는 이렇게 읊었다.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은 다른 곳 아니고 번뇌(煩惱)와 보리(菩提)의 바탕도 둘이 아니네. 열반이 가까워도 아는 사람 없고 보리가 가까이 있어도 보기 참 어렵네.” 화엄불국은 극락세계처럼 서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멀리 10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는 세계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있다. 살짝 풀포기 하나 뽑으면 전개되는 물론 자성미타(自性彌陀)나 유심정토(唯心淨土)로 설명되는 서방정토도 눈 깜짝 할 사이 우리들 눈앞에 전개되는 세계다. “오직 한 구 아미타불 다른 생각 없다면(一句彌陀無別念) 손가락 튕기는 수고도 없이 서방에 이르리.(不勞彈指到西方)” 육조 혜능(慧能)의 이 게송 중의 서방정토는 미륵보살의 탄지(彈指)로 열리는 비로자나장엄장누각 보다도 더 빨리 열리는 세계다. 그러나 어쩌랴. 비록 우리 곁에 연화장세계 있어도 그 세상 살짝 가리고 있는 한 포기 풀 뽑기란 또한 쉽지 않으니.
    법보신문 Vol 1101         김상현 전 동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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