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16 정인사(수국사)

浮萍草 2013. 5. 3. 07:00
    며느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탁효정 전임연구원
    “시어머니가 심술을 피우는 것은 신부가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때문이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부가 남편의 사랑을 몰래 받고,시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딴 데로 돌리거나 약화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요.”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가 지은 윤리론집 <수다에 대하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에도 고부갈등이 있었을까 싶지만,‘시월드’가 존재하는 세상에 고부갈등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그리스는 한국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고부갈등이 심한 나라로 유명하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나라일수록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매우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시집살이가 고되었던 여자일수록,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큰 어머니일수록, 며느리를 재는 잣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멀리 그리스까지 찾아갈 필요 없이,조선시대 역사에도 이 공식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바로 인수대비 한씨,성종의 엄마이자 연산군의 할머니인,한때 ‘채시라’로 불렸던 그 분이다.
    세조의 큰 아들 의경세자는 세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 갑자기 요절했다. 당시 세자빈 한씨의 뱃속에는 둘째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세조는 의경세자의 4살 난 아들 대신 세자 동생인 해양대군(후일 예종)을 세자로 삼았고 이후 세자빈 한씨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궁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국모가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여자가 하루아침에 유복자까지 밴 청상과부 신세가 되었으니,뒤웅박 팔자도 이런 깨진 뒤웅박 같은 팔자가 다 있을까. ㆍ조선 최고의 학식 갖춘 엘리트 여인이면 뭣하랴 因만 알고 果 몰랐으니…
    훗날 인수대비가 되는 한씨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유식했던 왕실여인이었다. 한씨는 한확의 장녀로, 요즘으로 치면 중국대사의 큰 딸이었다. 아버지가 신문물 유입의 주요 루트인 대중국 외교의 책임자였으니 그 집안의 자식들이 선진문물을 먼저 익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였다. 게다가 한확은 아들뿐만 아니라 딸자식들에게도 학문을 가르쳤다. 다른 왕비들도 가격(家格)으로만 본다면야 조선의 상위 0.1%에 해당되었지만 인수대비 정도의 학식을 갖추지는 못했다. 인수대비는 웬만한 유교 경서를 다 읽었고,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까지 읽고 쓸 정도로 높은 학식을 자랑했다. 게다가 인수대비는 매우 비상한 지략의 소유자였다. 시동생인 예종이 재위 1년만에 요절한 뒤 왕위계승 1순위는 당연히 예종의 큰아들 월산대군이었다. 인수대비는 자신의 둘째아들 자을산군을 한명회의 딸과 혼인시켰고,당대 최고의 권력 한명회와 손을 잡음으로써 둘째아들을 왕위에 올릴 수 있었다. 그 아들이 바로 성종이다. 이는 인수대비가 시부모인 세조와 정희왕후에게 지극정성을 다한 결과이기도 했다. 어찌나 효성스러운 며느리였는지,세조가 며느리를 칭송하기 위해‘효부도서(孝婦圖書)’라고 새겨진 도장까지 만들어줄 정도였다. 당대의 다른 여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했던 인수대비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너무 똑똑한 것이 탈이었다. 인수대비는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음에도 유교적 여성관을 담은 <내훈(內訓)>이라는 글을 지었다. 이 글은 요즘말로 하면‘며느리 시집살이 지침서’ 쯤 되는데,이 글을 한글로 지어서 궁궐안팎에 살고 있는 왕실여자들로 하여금 모두 외우도록 하였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자신의 정치적 수완으로 아들을 왕위에 올린, 게다가 한글, 한문에 산스크리트어까지 능통했던 비상한 시어머니라니 웬만한 며느리는 죽어나갈 법한 이 객관적인 조건 하에서 그 집구석의 며느리는 정말로 내쫓겼다. 며느리를 쫓아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며느리에게 사약까지 내렸다. 원자가 왕이 된 후에 혹시라도 폐비윤씨를 대비로 복위시킬까 우려해서였다. 이 같은 처사는 결과적으로 조선 역사상 최악의 군주인 연산군을 탄생시켰다.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죽는 순간 금삼에 묻은 피가 인수대비의 삶은 물론 조선 역사에 씻지 못할 오욕으로 남은 것이다. 인수대비가 남편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 정인사(현재의 수국사)이다. 정인사의 이름을 풀어보면 바를 정(正)에 인할 인(因),모든 일의 원인을 올바로 알아차리는 절이라는 의미다. 인수대비는 원인은 알았어도, 결과는 몰랐던 것일까. 며느리를 죽이고 손자가 성군이 되길 바랐다면 인수대비는 불교공부를 잘못 해도 한참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 조손발복(祖孫發福)이라는 말처럼, 조부모가 뿌린 업(業)은 한 세대를 뛰어넘어 손자에게로 이어진다. 세상의 시어머니들이여 연산군 같은 손자 보기 싫으면 며느리 뒤꿈치부터 사랑하시라.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불교신문 Vol 2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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