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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혜능의 오도송(2)

浮萍草 2013. 4. 14. 07:00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일어나리오
    신수의 해석에 대한 혜능의 정면부정 心是菩堤樹(심시보리수) 身爲明鏡臺(신위명경대) 明鏡本淸淨(명경본청정) 何處染塵埃(하처염진애) (돈황본 육조법보단경) 내 마음은 보리수(깨침의 나무) 이 몸은 맑은 거울을 얹어 놓은 받침대(鏡臺)이네. 거울(마음)은 본래 깨끗한 것인데 어디에 티끌(번뇌)이 묻으리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종보본 육조대사법보단경) 깨달음은 형상이 없음으로 본래 보리수(깨침의 나무)가 아니고 밝은 마음 또한 형상이 있는 경대(鏡臺)와 같은 것이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번뇌)가 일어나리오. <해설> 황본 <육조법보단경>에 나오는 혜능대사의 두 번째 오도송 “마음은 보리수이요, 몸은 명경대이네(心是菩提樹 身爲明鏡臺)”는 신수대사의 오도송인 “몸은 보리수이요, 마음은 명경대이네(身是菩堤樹 心如明鏡臺)”을 전적으로 부정한 게송이다. 신수대사는 몸이 보리수라고 했는데 혜능대사는 마음이 보리수라고 읊었고,또 신수대사는 마음이 밝은 거울이라고 했는데 혜능 대사는 몸이 밝은 거울이라고 몸(身)과 마음(心)을 바꿨다. 돈황본 <육조법보단경>이 나타나서 천하의 선지식들이 혜능대사의 두 오도송 때문에 엄청나게 헛갈려서 말도 많고 주장(설)도 많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에서는 이 부문에 대해서 명료하게 해설이 안 되고 있다. 신수대사의 시에서는“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이네”라고 ‘명경대(明鏡臺)’를‘거울’이라 해석하여 마음을 상징한 것으로 번역을 하면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정확한데,혜능대사의 시에서는‘명경대(明鏡臺)’를‘거울을 얹어 놓은 받침대(鏡臺)’라고 해석을 해야 뜻이 통한다. 어찌하든 신수대사의 시와 혜능대사의 시가 두 글자가 바뀌어서 정면으로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나 있음으로 가부(可否)의 심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혜능 연구 학자들은 이 부문에 있어서만은 신수대사의 우세(優勢)를 주장하고 있다. 혜능대사가 신수대사의 게송을 그대로 차용(借用)했다는 차용설,신수대사의 게송을 중복한 것이므로 혜능대사의 사상이 아니라는 부정설, ‘심(心)’과 ‘신(身)’이 필사할 때 오류 되었다는 도치설 등이 있다. 필자의 견해는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모방보다는 창조가 시의 생명이므로 혜능대사의 선시는 신수대사의 시를 능가할 수 없으나 본문에 나타난 혜능대사 게송의 내용을 그대로 이해하고 싶다. 신수대사가 “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이네”라고 몸과 마음을 나누어 보리수와 명경대에 비유하여 읊었는데,혜능대사는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心身一如) 실체가 없는 공(空)의 세계로 본 것이다. 마음의 본래자리인 불성은 허공처럼 공적(空寂)하여 시비(是非)와 염정(染淨)이 없는 불이(不二)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중생심도 번뇌도 본래가 없는 세계이다. 가을 밤하늘의 둥근달처럼 청정하고 달빛만 고요할 뿐이다. 불성이 항상 청정하고 지혜 불광(佛光, 靈知心)만이 빛날 뿐이다. <육조법보단경>의 핵심사상은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의 반야 공(空) 사상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심신불이(心身不二)이다. 본래가 한 물건도 없는 무아(無我)요,공의 세계이다. 그래서 형상이 있는 모습을 보되 그것이 실체가 없는 형상(空)인 것을 보면 여래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였다. 형상을 떠나(離相) 공의 이치를 보면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견성하고 안심을 얻는다고 설하고 있다. <육조법보단경>에서는 이것을 무상(無相)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무상(無相)을 체(體)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것이 혜능대사의 핵심사상이다. 무상송 2수가 있다. 돈황본 <육조법보단경> 이후에 편찬된 혜흔본 ‧ 설숭본 ‧ 덕이본 ‧ 종보본에서는 혜능대사의 두 오도송이 하나로 개작 (改作)되어 나타나게 된다.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바뀌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혜능대사의 오도송은 선방의 강아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육조법보단경> 이후에 편찬된 혜흔본 ‧ 설숭본 ‧ 덕이본 ‧ 종보본에서는 혜능대사의 두 오도송이 하나로 개작(改作)되어 나타나게 된다.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바뀌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혜능대사의 오도송은 선방의 강아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한자풀이> 菩提樹(보리수): 깨달음의 나무,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성도하였음으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無樹(무수): ‘나무가 없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여기서는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다’고 해석해야 한다. 爲(위): …되다, …하다, …이다. 明鏡(명경): 밝은 거울, 밝은 마음을 상징한다. 明鏡臺(명경대): 명경과 경대가 합쳐진 말. 거울은 받침대(경대)가 없으면 작용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마음도 몸뚱이가 없으면 작용을 할 수가 없다. 명경은 마음을 상징한 말이고, 경대는 몸을 상징한 것이다. 鏡臺(경대): 거울의 받침대. 非(비): 아니다(부정조사), 비리. 染(염): 물들이다, 염색하다. 여기서는 번뇌에 마음이 오염되다의 뜻. 何處(하처): 어느 곳에. 塵埃(진애): 먼지, 티끌. 번뇌와 망상을 상징. 非臺(비대): 돈황본에서는 무대(無臺)인데, ‘없다’ 보다는 ‘아니다’가 더 적절하다. 경대가 아니다. 本來(본래): 본디(부사). 一(일): 하나, 한 번. 物(물): 만물, 물건, 일. 一物(일물): 한 물건, 마음을 지칭함. 無一物(무일물): 한 물건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텅 빈 공한 모습. 마음이란 본래 실체가 없어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이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 마음은 본래 공하여 아무리 찾아도 실체가 없어서 아무 것도 없다. 惹(야): 일어나다, 이끌다, 끌어당기다, 야기하다. <화사족(花蛇足)> 돈황본 <육조법보단경>에 나오는 혜능대사의 오도송 가운데 두 번째 시가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윤리) 19번 문제에 출제가 되었다.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 다음 글에 나타난 수양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마음은 깨침의 나무고 몸은 맑은 거울[明鏡〕의 받침대라.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늘 어디에 티끌과 먼지가 묻으리오.


    답: ⑤관심(觀心)을 통해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터득한다. <육조법보단경>에 나타난 혜능대사의 수행법은 돈오법(頓悟法)이다. 우리의 본래마음인 불성이 부처 성품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완벽하게 여래의 덕상과 지혜를 구족하고 있음을 알고 단번에 깨닫는 것을 돈오라고 한다. 본래 닦을 것이 없는 그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혜능대사의 수행법이다. 본래가 금덩어리이므로 제련하고 닦고 할 필요가 없다. 내 마음의 불성이 그런 줄을 알고 단번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다. 신수대사는 마음에 낀 먼지(번뇌)를 시시때때로 털고 닦아서 완전한 마음으로 나아간다고 하여 점오(漸悟) 또는 점수(漸修)라 하였다. 이것이 <육조법보단경>에서 혜능대사가 신수대사를 공격하는 핵심 주제이다. 상근기는 돈오법으로 수행하고, 하근기는 점수법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돈오와 점오가 마치 대승과 소승,남종선과 북종선처럼 나의 종파나 소의경전은 우수하다. 대승이고 돈오적인 가르침이다. 너는 소승이고 북종선이고 점수선이라고 상대적인 가치의 우열을 염두에 두고 사용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신수대사나 그의 제자들이 자신들을 점수선이라고 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남종선이고 돈오선이라 하였다. 또 신수대사의 저서인 ⟪관심론⟫에 보면 돈오법이 많이 나타나 있고, 혜능대사의 가르침에도 점수법이 나타나 있다. 원래 돈오니 점교니 하는 말은 교상판석(敎相判釋)에서 나온 용어이다. 화엄종에서는 <화엄경>이 최고의 경전으로 원교(圓敎)의 가르침이고 돈교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고,정토종에서 일념으로 염불하면 불보살님의 위신력으로 가장 빨리 극락정토에 왕생한다고 자신의 종파를 돈교(頓敎)라고 하였다. 우리의 본래마음인 불성이 부처의 모든 덕상을 구족하고 있음으로 본래 청정하므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음으로 마음의 본질이 그런 줄 알고 곧바로 깨달으라고 하는 돈오법은 원리(이치)는 맞지만 현실은 항상 번뇌망상이 있는 중생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으로 점차로 때때로 닦아 가면서 살아야 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돈오하여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고 혜능대사 자신도 8개월 동안 방앗간에서 도를 닦아서 깨달음을 얻었다. 돈오는 원리적 측면에서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적으로 모르는 진리를 듣고 단번에 무명(無明)을 타파할 수는 있지만,정적으로 내 아내가 죽고 아들딸이 죽었을 때 인생은 무상 하고 생사가 본래 없다는 진리를 듣고 단번에 슬픔과 고통이 사라지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고통이 치유되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 불교는 돈오법만 추종하니 이상만 추구하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조계선종에서 만법을 통섭(通攝)할 수 있는 선구가 ‘본래무일물’이다. “본래가 한 물건도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반야경⟫의 공 사상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의 소산물이므로 자신의 고유한 성질(自性)이 없다. 실체가 없다. 오직 허공처럼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다. 우리도 오온(五蘊)의 화합체이다. 그러나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공의 원리를 깨달아야 자타일여가 되고 생사일여가 가능해 진다. 3독의 애착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공왕불(空王佛)이 된다. ⟬ 선종 사상은 ⟪반야경⟫의 공 사상과 ⟪열반경⟫의 불성 사상으로 되어 있다. ‘불성상청정’이 ‘본래무일물’로 바뀐 것은 불성의 유(有)에 대한 오해와 집착을 타파하기 위하여 공의 절대 무(無) 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도교에서 강조한 무(無) 사상과 공이 흡합되어 절대 무 사상이 강조된 것이다. 일물(一物)이란 마음을 가르친 말이다. 유학에서 만물이 형상이 없는 무극(태극)에서 음양이 생기고 오행이 생겨난다고 한다. 인간은 형상이 없는 것은 믿지 않고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따라서 무극을 형상화하여 태극을 만들었다. 우리 선가에서도 형상이 없는 마음(無心)을 찾으라고 하니 없는 마음을 어떻게 찾겠는가 하고 스스로 포기하니 방편으로 내 마음 속에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그것을 찾으라고 하여 마음을 일물이라 하였다. 필자가 <육조법보단경>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공부하면서 일물찾는 작무(作務)을 하였다. 그때 지어서 마음의 거울로 삼았던 일물송(마음의 노래)을 소개한다.

    법해(法海)법사의 一物頌(일물송) 一物[마음]이란 무엇인가? 一物은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고 크기도 없고 형상도 없네. 본래부터 실체가 없으니 생겨난 것도 아니고 없어질 것도 아니네. 무엇이라고 이름도 붙일 수가 없고 모양도 그릴 수가 없네. 그러나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러워 一物이 작용하면 중생이 석가도 되고 공자도 되고 노자도 된다네. 실체가 없으니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신령스런 작용이 있으니 없다고도 할 수 없네. 一物은 참으로 묘유(妙有)한 것이고 신령스러운 것이네. 一物은 우둔한 중생을 위해서 억지로 붙인 이름이라, 마음을 一物이라고 하여도 맞지 않네. 一物에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사람들은 마음이요, 자성(自性)이요, 불성(佛性)이요,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진여법성(眞如法性)이요, 부처[佛]라고 하네. 一物은 우주 삼라만상 두루 꽉 차 있으니, 시간 ․ 공간을 초월하여 허공 속의 에너지[氣]처럼 무량(無量)하게 공존(共存)하고 있네. 실체가 없이 묘하게 있으니 공(空)의 세계이네. 하늘에도 있고,땅에도 있고,사람에게도 있고 산천초목 속에도 있네. 유정물(有情物) 속에 있는 것을 불성(佛性)이라 이름하고,무정물 속에 있는 것을 법성(法性)이라 이름하네. 중생에게 있으면 중생심이요,보살에게 있으면 자비심이네. 이름만 다를 뿐 본래는 모두 같다네. 一物[마음]이나 중생이나 부처가 차별이 없는 것이 물과 얼음,수증기와 같다네. 一物은 크기로 말하면 안과 밖이 없어 클 때는 우주보다도 크나, 작아지면 좁쌀보다도 더 작아지네. 사물(有)에 대한 집착이 많은 근기가 낮은 사람을 위해 형상이 없는 마음 을 손에 물건을 쥐어 주듯이 친절하고 자비스럽게 설명한 말이 바로 一物 이라네. 一物을 마니심주(摩尼心珠)라고도 하는데 그것이 한 번 광명을 발하면 태양보다도 빛이 강하여 밤에도 빛나고 낮에도 빛난다네. 이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빛을 발하면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괴로운 사람은 기쁨을 얻게 된다네.
    여의주(如意珠)를 얻으면 어둠이 밝음으로 바뀌고,세상의 주인공(主人公)이 되련만 사람들은 그것이 형상이 없어서 없는 줄 알고 찾으려고 하지 않아 그들을 위해“내 몸 속에 있는 한 물건(마음)을 찾아라”고 방편으로 一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네. 一物은 나의 주인이요, 생명이네. 一物은 우주 미생전(未生前)에 스스로 존재해 왔던 진공묘유(眞空妙有)한 빛과 에너지와 같은 것이네. 텅 비어 공적(空寂)한 허공과 같은 마음의 본래자리에 나타나는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심(靈知心)이라네. 一物이 내게서 작용을 일으키면 사물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우주의 본체까지도 생각을 미치게 한다네. 一物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빛을 주고 능력을 주었네.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주었고, 내 스스로도 깨달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었네. 一物을 찾아서 잘 쓰면 부처요. 못 찾고 헤매면 중생이라네. 一物의 신광(神光)으로 비추면, 부처의 보궁(寶宮)도 찾을 수 있고 중생의 업장(業障)도 녹일 수 있네. 一物을 멀리서 찾아서는 안 되네. 내 몸 밖에도 없고 안에도 없다네. 一物은 형상이 없는 보배구슬이라 찾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一物의 그림자일 뿐이네. 一物은 본래가 모양과 실체가 없어서 본래가 한 물건도 없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네. 一物을 찾는 자는 부처가 되고, 모든 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것이네. 一物을 찾는 자를 위해 나는 목욕하고 일물송을 부르네. * * 다음에는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시를 소개하려고 했는데 다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겠다. 신수대사와 혜능대사의 오도송이 선시사나 선의 역사 그리고 선 사상에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이 있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그래서 <육조법보단경> 말미에 나오는 혜능대사의 전법게 1수와 심지게(心地偈) 2수를 함께 소개 하겠다.
    김형중 법사(문학박사)
    Mediabuddha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