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깨달음의 집이고
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네
신수대사 폄하는 역사왜곡이자 날조에 불과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有塵埃(막사유진애)
(돈황본 육조법보단경)
이 몸은 보리수(깨달음의 나무)이고
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번뇌가 끼지 않게 하세.
<해설>
우리의 몸은 불성과 깨달음(진리)을 담고 있는 집이요 그릇이다.
색신(色身)은 흙(地) ‧ 물(水) ․ 불(火) ․ 바람(風) 등 4대(四大)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의 불신(佛身)은 32상 80종호의 거룩한 모습이다.
우리의 몸뚱이가 비록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귀중한 법체이다.
부처님께서 붓다가야의 보리수나무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불했는데 형상이 있는 보리수나무는 부처님의 불신을 상징한다.
마음은 인식작용을 하는 주체요, 나의 주인이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다.
청정한 마음을 비유하자면 텅 빈 허공과 같고 밝은 거울과 같다.
화엄경에 보면“보리심(깨달음의 마음)은 마치 밝은 거울과 같다(菩提心者猶如明鏡)”
는 말이 있다.
밝은 거울은 텅 비어 있다.
거울은 사물을 비추면 실상 그대로 더함도 모자람이 없이 그대로 비춰준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다.
그러나 맑은 거울에 먼지가 끼면 사물이 이글어지게 비춘다.
마음도 거울과 같이 탐욕‧분노‧어리석음의 3독심으로 오염되면 마음이 실제대로
정견하지 못하고 편견과 선입견 등으로 보게 된다.
따라서 마음이 오염되고 때 묻지 않도록 조심하고 시시때때로 털고 닦는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실천과 수행이 없는 종교나 사상은 공허하다.
사석화된 관념일 뿐이다.
공자의 《논어》에 보면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學而時習之)”는 수양론이 나온다.
4구 ‘막사유(莫使有)’가 돈황본 이외에서는 ‘물사야(勿使惹)로 되어 있다.
ㆍ한자풀이
身(신): 몸, 신체, 나 자신. 是(시): …이다,이것,옳다, 바로잡다.菩(보): 범어 ‘보리(菩提 깨달음)’의 뜻, 모사(茅沙)풀(풀이름). 提(리
‧ 제): 원래 음은 ‘제’이나 불교용어 ‘보리(菩提)’에서는 ‘리’로 독음한다. 끌다,
끌고 가다, 들다, 손에 들다, 제휴하다.
樹(수):나무,수목.菩提(보리):범어 bodhi의 음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불타 정각의 지혜. 佛果(불과). 菩提樹(보리수): 석가모니가 붇
다가야에서 성도하여 부처가 될 때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깨달음을 상징한다.
보리수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心(심): 마음, 심장. 사람의 의식 ‧ 감정 ‧ 생각 등 모든 정신 작용의 근원이 되는 것.
또는 그 정신 작용의 총체. 如(여):같다,같게 하다.明(명): 밝다,밝히다,환하게. 鏡(경):거울,거울삼다,비추다.明鏡(명경): 밝은 거울,
불교 경전에서 우리의 맑은 마음을 상징한다.
臺(대): 물건을 받치거나 올려 놓는 물건의 총칭(촛대, 명경대),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전망대),관청(청와대),자동차‧
기계 따위를 셀 때 쓰는 말,돈대(조금 높직한 평지).鏡臺(경대):거울을 달아 세운 화장대.明鏡臺(명경대):맑은 거울을 달아 놓은 경대.
저승길 어귀에 있다는 거울. 생전의 행실을 그대로 비춘다 함. 업경대(業鏡臺). 신수대사의 시법시(示法詩)에서는 ‘맑은 거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서 본래마음인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대(臺)’는 여기서는 뜻이 없는 허사(虛辭)이다.
時(시): 때, 시간. 勤(근): 부지런하다. 拂(불): 먼지 따위를 떨다(털다), 닦다. 불자(拂子)는 번뇌를 털어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불교의 도구로써 불진(拂塵)이라고도 한다.
拭(식): 닦다, 닦아서 깨끗하게 하다.
拂拭(불식): 말끔히 떨어 없애는 일.번뇌의 띠끌을 털어내고 닦아낸다는 뜻은 불교의 수행(참선․ 염불․ 간경)을 상징한다.
莫(막): 없다, 말다(부정사). 使(사): 하여금, 시키다. 莫使(막사): …을 하지 못하게 하다.
有(유): 있다, 존재하다. 塵(진): 티끌, 흙먼지, 俗世(속세). 埃(애): 티끌, 먼지, 세속. 塵埃(진애): 티끌, 먼지. 번뇌를 상징.
ㆍ花蛇足(화사족)
사족이란 뱀의 발이다.
화가가 뱀 그림을 그리는데 불필요한 발까지 그린 愚(우)를 범한 고사이다.
필자의 선시 해설이 말을 없애고,아껴야 하는 선시에서 분명 사족인데,예뿐 꽃뱀의
사족이라는 뜻에서 화사족이라고 명칭을 붙였다.
신수대사가 5조 홍인에게 자신이 깨달은 경계를 읊어 보인 示法詩(시법시)는 훌륭한
오도송이다.
오언절구의 근체시로써 시가 될 수 있는 조건인 문학성과 대구(對句), 平仄(평측)
그리고 押韻(압운)의 운율이 아주 잘 되어 있고,심오한 禪理(선리)와 哲理(철리)를
담은 중국 시가 중 賦(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시는 우리 몸과 마음을 각각 깨달음의 나무와 밝은 거울에 비유한 것이 적절하고,
1구와 2구에서 몸(身)과 마음(心),보리수와 명경대가 대구를 이룬 것이 훌륭하다.
명경(明鏡)이 자성불성을 상징하고, 진애(塵埃)가 삼독번뇌를 상징하는 것도 뛰어난
발상이다. 대(臺)와 애(埃)로 압운한 것도 완벽하다.
뿐만 아니라 1․2구에서“우리의 본래마음이 청정한 것을 맑은 거울과 같음을 밝히고
(마음의 원리)”,3‧4구에서“본래마음은 청정하나 삼독번뇌의 먹구름이 가려서 불광을
발휘할 수 없음으로 시시때때 오염되지 않도록 털고 닦는 수행을 하여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자(마음의 수행)”고 균형 있게 읊고 있다. 체용동시(體用同時)이다.
신수대사의 오도송은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선리(禪理)로 보나 시로써 문학성 즉,
시격(詩格)으로 보나 나무랄 데가 없는 명품 선시이다.
그러나 《육조법보단경》에서는 신수대사의 이 게송을 무상게(無相偈)라고 칭하고 있는데“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번뇌가 끼지 않게 하세”라는 내용이 점수선(漸修禪)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우리의 본래마음(본래심, 자성, 불성)이 부처의 덕상과 지혜를 모두 구족하고, 청정한데 무엇을 따로 닦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근기가 낮은 신수 북종선에서 수행의 단계와 계단을 밟아서 점차적으로 닦아가는 점수선이라고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있다.
혜능의 남종선은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 수승한 돈오선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육조법보단경은 신회(神會)가 자신이 7대조사가 되기 위해 이미 황제(국가)로부터 6조로 인정을 받은 신수대사(7조는 그의 제자
보적선사)의 사상과 수행법을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고 비판하여 혜능대사를 6대조사로 현창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라는 주장이 있다.
돈황본 《육조법보단경》에는 신회가 7조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후에 편찬된 《육조단경》에는 신회가 덜 떨어진 지해(知解)종도가 되어 6조의 서자가 되고, 남악 회양이 7조가 되어 있다.
이것은 날조이다. 단두대를 만든 사람이 단두대에 목이 잘린 격이 되었다.
신수대사의 저서인 돈황출토 문헌《관심론》,《대승무생방편문》에는 돈오선 사상이 나타나 있다.
또한 남종선에서도 점오선(漸悟禪), 점수선이 나타나 있다.
1900년 중국 감숙성 돈황석굴에서 방대한 양의 고문서가 출토되었는데 거기에 중국초기 선종사와 선어록이 포함되었다.
이 고문헌에 의해 중국 초기선종사와 선사상이 다시 쓰여지게 되었고 중국의 석학 호적(胡適)의 연구에 의해 신수와 신회가 중국
초기선종사의 선구자로서 초기 선 사상의 기초를 만든 위대한 인물로 새롭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는 아직도《육조단경》에 나타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신수가) 완전히 깨닫지 못한 덜 떨어진 선사로 인식되어 있다.
원균(元均)이 임진왜란 때 수많은 해전에서 왜적을 물리치다가 전사하였고, 전쟁이
끝나서 나라에서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공신 1등으로 책정되는 공훈을 세우고도
이순신을 시기하고 모함한 역적으로 오인 받고 있다.
이은상이 《이순신전》을 써서 한국의 영웅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순신을 극적
으로 더욱 훌륭하게 만들려다가 멀쩡한 사람 원균을 천하에 못된 역적으로 만든 것
이다.
신수대사가 30년도 더 아래인 손자뻘 되는 혜능대사와의 법통싸움으로 개가 된 것이
원균과 같다 하겠다.
이것은 역사 왜곡이요 날조이다.
신수대사는 코페르니쿠스적 심판의 피해자이다.
마땅히 복권시켜야 한다.
신수의 시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감상해야 한다.
신수대사(606-706)는 50세에 5조 홍인대사를 만났고 90세가 되어 측천무후 초청을
받아 입궁하여 황제가 먼저 예를 올리는 여불(如佛) 대접을 받았다.
삼제(三帝)국사요 양경(兩京)법주로 전무후무한 예경을 받아서 제도(帝都)불교를
교화하였다. 초기 선종이 형성되고 선사상이 정립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 최초로 선과 시가 만나서 융합된 것은 《육조법보단경》에 나오는 신수
대사와 혜능대사의 오도송에서 전형적인 선시의 모델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달마대사가 최초로 마음을 깨달아 견성(見性) 성불(成佛)하는 선법을 전하여 불교의
종파로써 선종(禪宗)이 형성된 것이 당나라 초기에 신수와 혜능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두 사람이 자신이 깨달은 마음의 경계를 시격(詩格)을 갖춘 게송으로 읊은 것이
선과 시의 만남으로 선시의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에 선이 남북조시대 달마대사(?-528) 이전에도 전해져서 수많은 선사들이 참선 수행을 했다는 기록이 양(梁)나라 혜교
(慧皎,495-554)가 찬술한 《고승전》과 당(唐)나라 도선(道宣,596-667)이 찬술한 《속고승전》습선편(習禪篇)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달마대사 이전에는 선 수행자들이 집단을 이루어서 일관된 선 이론이나 소의경전을 가지고 수행하지 않았음으로 선종이란
종파가 형성되지 않았다.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晉)의 사령운(謝靈運, 385-433)과 도연명(陶淵明, 365-427)도 불교신자로서 선적인 시를 읊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를 선시의 시초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뒤에서 감상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신수대사와 혜능대사의 오도송을 선시의 시초로 규정한 것은 선시의 범위가 경전에 나타나 있는 선적인 게송이나 인도의 시까지
확대되는 것이 저어하여 필자가 규정해 본 것이다.
■ 김형중 문학박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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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浮 印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