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승과 제자

3. 혜공스님의 물고기

浮萍草 2013. 3. 19. 07:00
    입으로 먹은 냇가 물고기 뒤로 살려내며 원효 경책 
    삼태기 스님이라고 불린 혜공 자신 따르며 흉내내는 원효에 네 행동이 타인에 행복 못주면 나·너 모두 손상시킴 일러줘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라시대, 혜공(惠空)이라는 신비한 스님이 있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표표히 거리를 떠돌던 그는 가끔씩 절에 들러 우물 속으로 들어갔고,우물에 들어가면 몇 달씩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다 우물에서 나올 때쯤이면 꼭 푸른 옷을 입은 하늘나라동자가 먼저 나타나 그의 출현을 예고하였고, 우물에서 나온 그의 옷은 늘 뽀송뽀송하였다. 그는 커다란 삼태기를 걸머지고 미치광이처럼 산발에다 옷고름까지 풀어헤치고 쏘다녔다. 하지만 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고질병이 저절로 나았기에 귀족의 집에서도 백정의 집에서도 늘 그를 반겼다. 게다가 경론에 대해 묻기만 하면 물 흐르듯 이치를 설명하였기에 절집에서도 그가 찾아오면 향을 피우고 높은 법상에 자리를 마련 하였다. 참 묘한 일이었다. 술과 고기를 마다않는 파계승에다 싱겁게 농이나 치고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데도 휘청거리는 걸음이 저잣거리로 접어들면 “삼태기 스님이 왔다”며 북새통을 이루고, 괄괄한 목청이 산문을 두드리면 승려들이 삼대처럼 주위를 에워쌌으니 말이다. 원효(元曉)는 그런 혜공이 부러웠다. 승속을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움과 고금의 전적을 회통하는 그의 식견과 온 신라에 자자한 그의 명성이 부러웠다. 자신도 혜공처럼 무애 자재하게 세상과 어우러져 사람들의 슬픔과 근심을 녹여내는 보살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혜공의 뒤를 그림자처럼 밟으며 그가 하는 말이면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그가 경론을 거론하면 문헌을 찾아 처음부터 끝 까지 몽땅 외워버리고,그를 따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것이 혜공을 닮아가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배우는 일에 남달리 민첩했던 원효는 어느새 어투까지 혜공을 쏙 빼닮게 되었다. 하지만 혜공은 그런 원효를 ‘흉내만 내는 얼치기’라며 통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원효는 속이 상했다. ‘혜공 스님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감히 존경심을 거둘 수도 없었다. 혜공과 헤어져 분황사에 머물 때 일이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화엄경’에 대해 해설을 쓰던 원효는 ‘일체무애인(一切無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란 구절에 앞이 콱 막혔다. “걸림이 없는 모든 사람은 오직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났다 하였는데,그 하나의 길이란 무엇일까?” 원효는 서라벌을 떠나 혜공이 머물고 있던 영일현의 항사사(恒沙寺)로 향했다. 또 ‘얼치기’ 소리를 들을 게 뻔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곡 깊숙이 드리운 고운 모래밭을 지나자 나무그늘에 드러누운 혜공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스스 눈을 뜬 혜공의 첫마디는 “얼치기 왔는가”였다. 원효의 성가신 표정에도 혜공의 조롱은 그칠 줄 몰랐다. “귀찮게 왜 자꾸 찾아와.” “스님, 화엄경에서 ‘걸림이 없는 모든 사람은 오직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났다’ 했는데 그 하나의 길이 뭡니까?” “온갖 번민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 “그러니까요, 번민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하나의 길이 뭐냐고요?” “편안한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이지.” “그러니까요, 편안한 웃음을 되찾아주는 길이 뭐냐고요?” “천 가지 만 가지 방법이 있지.” “천만 가지 방법이 있다면 왜 하나의 길이라고 했지요?” 혜공이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렸다. “저러니 얼치기 소리를 듣지.” 원효가 입을 닫자 혜공이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생각해 보게. 길이란 출발점과 목적지를 전제로 하는 말이야. 서라벌로 가는 길이 몇 가지나 있을까?” “어디서 출발하냐에 따라 다르지요.” “그렇지, 출발점을 기준으로 삼으면 ‘서라벌 가는 길’은 수천 가지 수만 가지가 될 거야. 하지만 목적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수천수만 가지가 똑같이 ‘서라벌 가는 길’이지.” “아, 그래서 다음 구절에 ‘모든 부처님의 몸은 오직 하나의 법신뿐이니, 마음도 같고 지혜도 같고 십력과 사무외 역시 마찬가지다’ 하였군요.” 원효의 총명함에 한 마디 칭찬 할 법도 한데 혜공은 표정이 영 못마땅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배나 채우세.” 혜공은 훌러덩 웃통을 벗고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여러 해 장단을 맞춘 원효 역시 곧장 발우를 들고 뒤를 따랐다. 그렇게 첨벙첨벙 계곡을 훑으며 몇 차례 자맥질을 치자 곧 물고기며 새우가 발우에 그득했다. 짭조름하게 간까지 맞춰 든든히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속을 비울 요량으로 개울가 너럭바위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아랫배에 끙끙 힘을 주다말고 원효가 한 마디 건넸다. “스님이 아니셨으면 그 한 길이 부처가 되는 길이란 걸 모를 뻔했습니다.” 혜공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아직 그 길을 몰라. 자네 꼴을 보고나 얘기해.” 고개를 돌린 원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엉덩이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똥이 뿌지직거리는데 혜공스님 엉덩이에서는 알록달록한 물고기가 담방담방 물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네는 똥을 누지만 나는 물고기를 누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원효에게 혜공이 나지막히 타일렀다. “천만가지 위의로 그 몸을 장엄하고 산더미 같은 경론을 섭렵한다 해도 그것으로 제 한 몸의 부귀와 영달을 탐한다면 귀한 음식을 똥으로 만드는 짓에 불과해. 보살행을 한답시고 저자와 절간을 가리지 않고 음주가무에 주색을 마다하지 않는다지만 정작 그런 행동이 타인의 행복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흉내나 내는 얼치기에 불과해. 그건 자신을 망치고 타인의 귀한 재산과 생명까지 손상시키는 짓이지 결코 보살행이 아니야.” 비로소 원효의 만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바지춤을 추스르고 일어선 원효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산 아랫길로 향했다. 그리고 거리거리를 누비며 노래를 불렀다. “걸림이 없는 모든 사람들, 오직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네.” 그 후 그 절을 오어사(吾魚寺)라 하였다.
    본 연재물 ‘스승과 제자’는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3화 ‘혜공스님의 물고기’편에 대해 전남대 박건주님께서“제8지의 대보살인 원효성사(元曉聖師)를 치졸한 인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작자의 본래 의도는“원효스님의 위대한 깨달음과 보살행은 끝없는 각성과 자기변혁의 결과물이고,그 밑바탕엔 수많은 선지식 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임을 밝힙니다. 아울러 힘든 충고를 아끼지 않으신 박건주님께 감사드립니다.
    Beopbo Vol 1180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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