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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쌍운 스님의 엽전 두 냥

浮萍草 2013. 3. 12. 07:00
    미소로 평생 도둑 낙인 찍힐 사미 구제 
    도둑질 장면 보고도 침묵 돈 잃은 아이엔 대신 내줘 스스로 자기죄 깨닫게 유도 진정 참회해야 재발도 방지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선조 영조 때 일이다. 금릉(金陵) 직지사(直指寺)에 쌍운(雙運)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15세에 속리산(俗離山) 추학(秋鶴)장로를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이후 환성 (喚惺)ㆍ송매(松梅)ㆍ회암(晦庵)ㆍ호암(虎巖)등 여러 대법사의 강석을 두루 참방하고 직지사에서 강석을 열어 당대의 화엄종주(華嚴宗主)로 명성을 드날렸던 분이다. 스님은 온화한 분이셨다. 오랫동안 휘하에서 수학한 이건 새로 들어온 이건 한결같이 대하며 늘 말수가 적었고 크게 소리 내어 웃거나 노기를 드러내는 법이 없으셨다. 그 온화함에 절로 감화된 것일까? 성질을 잘 내고 독한 사람도 스님을 마주하면 절로 너그러워지고 원한을 품고 싸우던 사람도 스님이 나타나면 바로 싸움을 멈추곤 하였다. 뿐만 아니었다. 제 잘난맛에 목청을 돋워 열변을 토하던 사람도 세상사 나 몰라라 뒹굴 거리던 사람도 스님의 그림자만 비치면 얼른 입을 닫고 옷깃을 가다듬었다. 그래서일까? 직지사 강당은 준걸들이 빽빽이 들어찬 학인들의 대밭이었고 스님의 거처인 방장(方丈)은 동자승들의 놀이터였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살포시 가신 정월 어느 날이었다. 점심 공양을 마친 동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는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응석에 귀한 과자까지 내놓고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얘기에 맞장구를 쳐줄 때였다. 코흘리개 동자 하나가 엽전 두 냥을 손에 꼭 쥐고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린나이에 절집 시집살이한다고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아마 어느 보살이 손에 꼭 쥐어주었을 게다.
    책상을 기대고서 고개로 절구질을 하던 동자는 밖에서 찾는 소리에 놀라 화들짝 눈을 떴다. 동자는 손아귀의 엽전을 얼른 책상에 올려놓더니“예” 하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얼마 후 제비처럼 재잘거리던 수다도 시들해지자 동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온화함에 모두가 절로 감화 “저희는 할 일이 있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냐, 또 놀러 오거라.” 동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던 틈이었다. 제법 코밑이 까뭇까뭇해지기 시작하던 사미 하나가 책상 위의 엽전을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그리고 힐끔 눈치를 살피더니 휙 문턱을 넘어버렸다. 스님은 가만히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아이들의 요란한 발걸음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코흘리개 동자가 후다닥 뛰어 들어와 책상을 더듬거렸다. 바닥까지 뒤져도 엽전이 보이지 않자 휘둥그런 눈동자에 금세 주먹만 한 눈물이 맺혔다. 스님은 전혀 모르는 일이란 표정으로 동자에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 “스님, 제 돈이 없어졌어요.” “돈을 어디다 두었는데?” “방금 전에 이 책상에다 올려놓았거든요.” 스님이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되물으셨다. “돈이 뭐 그리 소중하다고 사내가 눈물까지 흘리고 난리냐?” 간만에 사탕이라도 사먹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엔간히도 억울했었나보다. 동자가 발끈했다. “돈이 소중하지요, 아님 뭐가 더 소중합니까?” “그렇게 소중하면 스스로 잘 간수를 했어야지.” “급해서 그랬지요. 찾을 때 빨리 가지 않으면 원주스님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곳에다 덜렁 돈을 던져두는 사람이 어디 있냐?” “……” “가져간 사람보다 잃어버린 네가 잘못이 크다. 길거리에다 돈을 던져두고 가져가지 않기를 바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덤벙대다 돈을 흘린 사람이 잘못이냐, 그 돈을 주워간 사람이 잘못이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동자가 억지로 대답했다.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손짓으로 동자를 다가오게 한 스님은 허리춤 주머니에서 엽전 두 냥을 꺼내 동자에게 건넸다. “그 버릇 고쳐주려고 내가 일부러 그랬다, 요놈아,” “큰스님이 장난치신 거예요? 난 또.” “다음부터는 잘 간수하거라.” 언제 울었냐는 얼굴로 동자는 생글거리며 방장을 나갔다. 동자의 입을 통해 소문이 온 절에 퍼졌다. 다음날 아침 공양시간이었다. 발우를 거둘 무렵, 코밑이 까뭇한 사미가 앞으로 나와 방장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제나 조용한 미소로 가르쳐 “큰스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가만히 사미를 바라보던 쌍운 스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거라.” 뜻밖의 일에 대중이 깜짝 놀랐다. 죽비를 잡은 유나가 사미를 다그쳤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대중 앞에서 사실을 밝혀라.” 사미는 품에서 엽전 두 냥을 꺼내고 어제의 잘못을 숨김없이 토로하였다. 유나의 노한 음성이 큰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출가자가 도둑질했으니 바라이죄로 다스리겠다. 사미는 당장 옷을 벗고 이 절을 떠나라.” 쌍운 스님이 막으셨다. “다섯 냥은 훔쳐야 바라이죄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비구도 아닌 사미지 않은가? 행업을 충분히 숙달하지 못해 저지른 잘못을 크게 벌주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네. 스스로 자수했으니 유나도 너그럽게 처분하시길 바라네.” 유나는 방장스님의 뜻을 받들어 사미에게 보름간 참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중공사를 마치고 방장까지 따라간 유나가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하였습니다. 너무 관대하신 것 아닙니까?” 쌍운 스님이 웃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아직 철모를 나이지 않은가? 잃어버린 돈은 다시 얻으면 되고,잘못된 버릇은 앞으로 고치면 되는 걸세. 엽전 두 냥 때문에 평생 도둑놈이란 낙인을 지고 살게 할 수야 없지.” 찬바람에도 방장 뜰 앞 매화나무에는 꽃망울이 봉긋했다.
    Beopbo Vol 1179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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