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승과 제자

1. 도안 스님의 가시회초리

浮萍草 2013. 3. 5. 07:00
    스승이 보낸 가시회초리 홀로 맞으며 참회 
    제자 법우 회상 학인들 파계에 스승 도안 말없이 회초리 보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란의 연기와 봉화가 끊이지 않던 남북조시대,살육과 증오의 피비린내를 피해 긴 세월 하북성과 산서성 일대를 떠돌던 도안(道安 312~385)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신승(神僧)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불도징(佛圖澄)의 수제자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까지 못생겼던 탓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언행(言行)은 옥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맑고 청아해 만인의 척도가 되었다. 학덕(學德)의 향기는 곧 바람을 거슬러 사방으로 퍼졌고 그가 항산(恒山)에 사탑을 건립하고 머물자 수많은 학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도안은 그곳에 14년을 머물면서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며 서로를 탁마하였다. 함께 생활하며 늘 한걸음 앞에서 모범을 보인 도안은 훌륭한 길잡이였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둔탁한 돌을 깎고 다듬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처럼 평생의 공력과 심혈을 기울여 제자를 양성한 도안은 훌륭한 작가 (作家)였다. 그런 스승의 끌질과 망치질에 온 몸과 마음을 맡기며 제자들은 온전한 인격 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울한 전란의 안개는 외진 항산까지 밀려들었다. 365년,도안은 미처 다듬지 못한 400여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양양(襄陽)으로 떠나면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바로 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너희들은 이제 내 곁을 떠나라. 새가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허공을 떠돌듯 인연 따라 세상을 편련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홍포하라.” 이에 법태는 양주로 떠나고 법화는 촉으로 떠났으며 법우(法遇)는 강릉으로 향했다. 법우가 강릉에 도착해 장사사(長沙寺)에 지팡이를 세우고 발우를 펴자 곧 소문이 퍼졌다. “도안 스님의 제자가 장사사에 머무신데.” 소문은 헛되지 않았다. 스승을 닮아 법우의 일거수일투족은 진중하고 아름다웠으며,물음마다 막힘 없이 쏟아내는 변재에 지역의 명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에 경전을 강설하는 자리를 마련하자 400여명 학인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법우에게는 오직 한 가지 사명이 있었으니,증오와 파괴의 삶을 벗어나 평화롭고 온화하게 살아가는 승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법우는 강물이 바다에 드는 순간 만 가지 이름을 버리고 ‘바다’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듯 불법의 바다로 들어오면 모두 부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한 스승 도안의 가르침에 따라 승려들의 성씨를 ‘석(釋)’씨로 통일하였다. 또한 몸가짐을 통일해 서로 화합하고 말을 통일해 서로 화합하고 생각을 통일해 서로 화합하고 같은 계율을 수지해 서로 화합하고 같은 견해로 서로 화합하고 이익을 공유해 서로 화합하라고 한 스승 도안의 가르침에 따라 ‘육화경(六和敬)’을 승단운영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예불, 좌선, 강의, 공양, 포살, 자자 등 승가에서 행해지는 일상의 예법을 스승 도안의 가르침에 따라 실행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회상의 제자 가운데는 깎고 다듬기보단 쌓고 뽐내기에 익숙하고, 스승의 덕행을 흠모하기보단 스승의 지식과 명성을 탐내는 자들이 있었다.
    대중 모아놓고 스승향해 통곡 허물 자기 부덕으로 받아들여
    그런 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풍습으로 정당화시키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예의를 차림에서 있어 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면서 공공연히 술자리를 가지곤 하였다. 그러다 결국 한 승려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법우 스님은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문제를 일으킨 승려를 호되게 꾸짖었다. “한 잔 두 잔엔 서로 형 아우라 칭하면서 화기애애하다가 석 잔 넉 잔엔 원수가 되는 것이 술이다. 공자 같은 성인이 아니고야 누가 감히 낙이불음(樂而不淫)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자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겠다고 출가한 승려가 아닌가. 욕망을 벗어나 열반의 안온한 삶을 살겠다는 사람이 못된 근성을 부추기는 술과 고기를 즐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법우는 행여 불연(佛緣)이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스러워 그 학인을 내치지는 않았다. 풍습이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다. 스승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학인이 새로 들어오거나 오랜 시간 함께한 학인이 떠날 때마다 우의를 다진다는 핑계로 몰래 몰래 술자리를 가지곤 하였다. 발 없는 소문은 멀리 양양까지 전해졌다. 어느 날, 스승 도안으로부터 대나무 통이 하나 도착했다. 법우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든 대나무 통엔 한 줄의 서신도 없고 가시가 촘촘히 박힌 굵은 나뭇가지 하나만 들어있었다. 물끄러미 한참을 가시회초리만 바라보던 법우가 긴 한숨을 토하며 시자에게 말하였다. “종을 울리고 북을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라. 한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
    성재헌
    대중이 위의를 갖추고 엄숙히 늘어서자 법우는 대나무 통을 앞에 놓고 향을 살랐다. 그리고 스승 도안이 계신 양양을 향해 절을 올리며 통곡하였다. “제가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여 멀리 계신 스승님께 걱정을 끼쳤습니다.” 법우의 통곡에 대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법우가 눈물을 거두고 통 속의 가시회초리를 꺼내 사원의 기강을 잡는 유나(維那)에게 건네며 명하였다. “회초리로 나를 때려라. 호되게 치지 않으면 너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법우는 대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감히 스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유나는 눈물을 머금고 가시회초리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가시가 살점에 박히고, 가사와 장삼을 뚫고 핏물이 튀었다. 대중들 틈에서 흘러나온 작은 흐느낌이 출렁이는 강물이 되고서야 유나의 매질은 멈췄다. 땅바닥에 엎드려 잘못을 비는 400명의 대중 앞에서 법우는 참담한 얼굴로 참회하였다.
    “모든 허물이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그날 이후, 장사사의 대중은 술을 입에 대는 일이 없었고, 강릉 사람치고 장사사 스님들을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Beopbo Vol 1178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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