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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세계종교회의 다녀오다

浮萍草 2013. 3. 31. 07:00
    100년전 일본불교의 미국 진출
    여전히 이름조차 없는 한국불교
    난 시월 말,미국종교학회 참석차 시카고에 다녀왔다. 참가한 학자들만 천여 명이 넘어 행사장으로 호텔 두 곳을 이용할 정도로 학회 규모가 대단했다. 물론 과반수가 기독교 전공학자들이었지만 불교 전공학자들도 200여명 이상 참가했다. 지난 여름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세계불교학자 대회와 이번 시카고 미국종교학회에 참가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만한 미국 불교 학계의 인프라라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불교학계를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종주국이라 자부하면서 안주하고 있을 때 그들은 동아시아불교뿐 아니라 인도와 남방불교,티벳불교에 이르기까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학회 기간 동안 열렸던 도서전시회에서 <법화경>이나 <금강경> 같은 경전뿐 아니라 <벽암록>과 <육조단경>을 비롯한 선어록 번역본이 여러 권 출간된 것을 보았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벽암록>이 작년에야 출판된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불교 연구와 경전 국역 사업이 얼마나 뒤져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카고 여행은 나에게는 학회 참석 외에 시카고와 관련된 두 가지 역사적 사건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미국 대통령 선거인데, 시카고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입신한 지역이다. 미국에 도착한 후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경선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어느 드라마보다 흥미 진진했다. 각 후보들이 쏟아내는 정책,토론,언론 매체들의 검증과 비판,인터넷 댓글들,그리고 내 주변의 미국인들과 나누었던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의견들은 미국사회를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그 과정에서 나는 오바마의 선거 모토인‘변화’ 가 부시 정책에 대한 단순한 반대거나 무조건 자유와 진보를 주장하는 구호가 아니라 분열과 적대감,일방적인 패권 대신 상호 이해 와 통합,연대의식을 고취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노력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침 학회 기간이 미국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탓에 학회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선거 이야기는 연일 화제가 되었다. 선거 열기 때문이었는지 오대호의 칼바람마저 잦아들어 날씨는 예년에 없이 맑고 포근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연설이 예정된 그랜트 공원은 학회가 열린 호텔 건너편에 있었으며 학회가 끝난 다음날 학회가 열린 호텔 중 한 곳에 오바마의 선거본부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루 차이로 빗겨갔지만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설레었는데 노스햄턴으로 돌아온 다음날,내가 사는 이 조용한 마을에도 한밤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다. 또 한 가지 시카고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1893년에 개최된 세계종교회의이다. 19세기말 서양 제국들은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앞 다투어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막 세계무대에 발돋움 하고 있었던 미국은 국가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400주년을 기념 하여 만국박람회를 시카고에서 개최했고 이어서 세계종교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박람회와 세계종교회의를 위해 새로운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지금도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안타깝게도‘화이트 시티’라고 불렸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이듬해 7월에 있었던 화재 로 불타 없어졌다. 함께 갔던 피터 그레고리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중 건물 한 동이 남아있다고 했지만,시간이 없어 그마저 찾아보지 못하고 미국불교 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우리나라가 ‘대조선’이라는 국명을 내걸고 이 박람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인데,우리 조상들이 격변의 시대에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계 변화에 대응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에는 기독교를 비롯하여 전 세계 45개 교파에서 200명 이상의 대표가 참가했다. 이 회의의 분위기에 대해 서양의 한 학자는“종교 간의 대화를 개시하려는 강한 이상주의적 충동”과“서구 기독교를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이고 종파적 외양이 덜한 세계의 신앙들을 접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회의에 참가했던 일본불교 대표들이 미국인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은 이 사건을“극동의 일본불교가 극서의 미국에서 불타의 법륜을 굴렸다”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종교회의가 종교 간의 화해와 관용을 고취했다는 평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세계박람회가 서구의 정치적·상업적 패권을 의도적으로 기념하는 행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종교회의 역시 미국의 문화적· 종교적 우월성을 선전하려는 의도에서 계획된 행사였다. 물론 거기에는 보편적 우애와 국제적인 선의가 있었지만 세계종교회의는 무엇보다 유럽의 패권에 대한 신대륙의 도전이며 새로운 국제적 지도세력으로서의 미국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을 빌어 세계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내세운 증거는 박람회 건축물인 ‘화이트 시티’와 개신교였다. 이제 새로운 문명의 담당자로 자부하는 미국은 미개한 지역에 개신교를 선교할 소명을 스스로 떠맡았으며 태평양 건너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은 그런 의도에서 초대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 역시 미국과 똑같은 야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메이지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서양과 동등한,아니 그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한 문명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겠다 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이 회의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실 일본불교는 메이지 시대에 심각하게 도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일본을 대표하는 종교로 채택된 까닭은 그것이 일본이 서양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을 과시할 수 있는 지식체계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불교가 세계종교회의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예수교 선교사들과 식민 정책자들에 의해 연구된 일본불교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서양학자들에게 일본불교는 근본불교에서 이탈한 변방 아류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불교가 테라바다불교보다 발달된 형식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은 서양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테라바다불교 국가와 차별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화이트 시티에 세워진 세 채의 일본 건축물은 일본의 문화적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최고의 장인들에 의해 섬세하게 고안 되었으며 그 결과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종교회의에서 테라바다불교와 일본불교를 차별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학문적 의례를 따르는 주체 측에 의해 무시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서구의 관점에 동요를 일으킨” 전환기적 사건이라는 세계종교 회의에 대한 평가는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이며 일본불교가 세계종교회의에서 미국인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더욱 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말하는 성공은 순전히 날조된 이야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세계종교회의에서 일본불교는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했지만 청중 들 중 한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가 바로 <붓다의 복음>을 저술한 폴 카루스이다. 이 책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 저작이지만 상당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성공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출판 후 곧 일본에 소개되었으며 그 내용이나 수준에 문제가 있었지만 일본 불교학자들은 서양인이 마하야나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독자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이 책을 일역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의 일본어판 출판은 다시 미국인들에게 일본학자들이 이 책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사건은 일본이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위해 어떻게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했는지 잘 보여준다. 세계종교회의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은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특히 카루스 책의 번역은 그 후 일본불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이 번역을 통해 동아시아 불교가 현대 서양의 보편종교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계기로 이책 일본어 번역자이며 시카고 종교회의 일본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샤쿠 소엔의 제자 D. T.스즈키가 카루스 문하에서 12년간 개인적인 지도 를 받게 된 일이다. 카루스의 지도 아래 그는 불교를 서양에 선전하는 다양한 기술을 익혔으며 세계대전 후 스즈키가 다시 미국을 찾았을 때 그의 탁월 한 영어 저작과 강연은 불교학자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선과 일본문화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서양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었으며 일본은 극동의 신비하고 세련된 문화의 나라로 알려졌다. 선은 때로는 새로운 종교적 대안으로서 때로는 세련된 문화취미로서 서구에서 소비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뛰어난 장군을 얻는 것이 천 명의 병사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고,한 사람의 뛰어난 문사를 얻는 것이 백 명의 뛰어난 장군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우리 종단에서도 인재양성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그러나 어떻게 인재를 길러야하는지 어떻게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려야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질적인 지원은 아직도 없다. 다종교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세계에 한국불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도 뛰어난 승려와 불교학자 를 양성하는 일은 절실하다. 현재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위상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일본불교 세계화에 숨겨져 있는 제국주의적 야심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19세기에 그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기획했던 일을 우리는 21세기인 오늘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인재양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긴 호흡으로 미래를 설계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명법 스님(미국 스미스칼리지 박사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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