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서양문화 속 불교코드 읽기

근대 서양미술의 대안 자퐁니즘

浮萍草 2013. 3. 17. 07:00
    큐레이터가 불현듯 던진 미소
    고호 자화상, 동양승려 닮아서?
    스턴은 뉴욕과 더불어 꼭 가보아야 할 도시 중 하나이다. 내가 공부하는 스미스 칼리지에서 보스턴까지 자동차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갈아타느라 거의 반 나절이 걸린다. 그마저 자주 없어 자동차가 없는 나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누군가 보스턴까지 차편을 제공해주기를 기다리며 봄 학기를 보냈다. 여름방학이 왔다. 뉴욕 불광선원 주지스님께서 너그럽게도 비구니스님 거처에 머물게 해주셔서 여름방학 동안 뉴욕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제 보스턴에 갈 수 있겠구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뉴욕에서 보스턴까지는 차편도 많을뿐더러 시간과 경비도 아낄 수 있다. 더구나 하버드대학 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위해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 전날 나는 어떻게 하면 사흘 동안 가장 값싸고 효율적으로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밤을 새워 인터넷을 뒤졌다. 그렇게 준비한 시간표대로 도착하자마자 싸구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해안가에 세워진 현대미술관은 바다를 면한 한 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그림을 보는 것보다 바다를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마침 야외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여가수가 부르는 샹송을 들으면서 나무계단에 앉아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호사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 계획대로 하버드대학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 앞에서 개관시간을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첫 번째로 들어갔다. 작은 규모였지만 중요한 작품들이 꽤 많았다.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피카소의 초기 걸작들이 눈길을 끌었다. 고호의 자화상도 있었다. 마침 미술관 안내를 하던 큐레이터가 고호의 그림을 설명하다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내가 스님이라고 그러나?’ 고호의 그림 가까이 다가갔을 때 큐레이터가 웃었던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니라 이 그림에서 고호는 머리는 삭발을 하고 눈은 성형을 한 듯 쭉 찢어져 있으며 승복을 연상시키는 V자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일본스님의 이미지를 차용했는데, 그래서 큐레이터가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표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좀 달랐다. 생각하기 나름으로 고호가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자신을 다른 얼굴로 그렸다는 것은 뭔가 심각한 징후이다. 더구나 그림에 나타난 표정이 스님들처럼 중심이 잡히고 편안한 표정이 아니라 어떤 신경증적인 불안이 엿보였다. 계획대로라면 다음날 보스턴 미술관에 가야 했지만 한 번 더 보고 싶어 다시 하버드대학 미술관으로 갔다. 문이 열리자 어제 만났던 큐레이터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왔다. 조금 머쓱했지만 곧장 고호의 자화상 앞으로 달려갔다. 녹색 배경에 예민하고 불안정한 서양 남자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호가 분명히 일본승려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말했으니 기뻐해야 할까?’ 이 그림은 나에게 서양이 차용한 동양의 이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마네의 <올랭피아>로부터 시작되는 현대회화가 우끼요에 일본판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전형적으로 일본적인 감성을 표현한 이 그림들은,동양미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비대칭적 구도와 원근법의 배제,과감한 세부의 생략과 같은 서양인이 열광했던 특징들이 이미 중국회화에서 발전된 기법들이라 새롭지 않지만, 고전주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던 서양화가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찾고 있던 ‘미적 모더니티’에 대한 중요한 참조를 제공해주었고 특히 그 세속적이고 향락적이며 찰나적인 감수성이 근대 사회의 소모적이고 일회적인 감수성과 일치했기 때문에 다른 동양예술보다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고호의 일본판화에 대한 차용은 그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색채와 비대칭적 구도 그리고 깊이와 원근법을 배제한 스타일에 한정되는 것 같다. <화가의 방>이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았던 밝고 따뜻하고 순수한 빛은 그 특유의 열정과 순수함에서 흘러나온 것 같다. 그런데 고호의 자화상에 나타난 일본풍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용 이상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 그림은 고갱에게 줄 선물로 그려졌는데, 화답으로 고갱도 자화상을 그려 고호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관계는 파탄이 났고 고갱은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땅을 찾아 타이티로 떠난다. (실제로 고갱이 도착했을 때 타이티는 이미 서양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고호 역시 동양에 대한 고갱의 동경을 공유했기에 고갱에게 보낸 이 그림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동양의 승려로 그렸지만, 불안하고 날카로운 표정에는 다가올 발작과 고갱과의 관계의 파탄,그리고 이후 일어난 비극적 자살의 예후가 보인다.

    고호의 그림에 차용된 일본스님의 이미지는 외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분열된 자아의 모습이 더 뚜렷이 드러 난다. 그것은 투사된 이미지일 뿐 고호가 진지하게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거나 불교를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불교 도상이나 이미지가 나타난다고 모두 불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오스카 와일드가 지적했듯이 “일본은 순전히 날조된 것”이고 “일본인들은 단순히 양식의 한 부분이자 예술에 대한 절묘한 공상의 하나일 뿐”이다. 일본은 단지 서양인들이 갖지 못한 근원적이고 감성적이며 정신적인 것으로 상상되었고 불교 역시 일본문화의 덧칠 아래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해되었을 뿐이다. 여기서 고호의 자화상은 한 개인의 초상을 뛰어넘는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고호의 내적 분열이 서양 근대의 내적 분열의 결과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일본승려의 이미지는 고호 개인의 동경과 분열, 상실의 투사일 뿐 아니라 서양 근대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이자 서양문화의 병적 징후이다. 근본적으로 자퐁니즘은 계몽과 진보를 주장했던 근대 서구문명이 안고 있던 내적 모순이 ‘타자에 대한 동경’으로 투사된 것이다. 서구에서 오리엔탈리즘 특히 자퐁니즘이 근대 서양미술에 하나의 대안이 되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여전히 의심스럽다. 더구나 스스로 자신을 타자화하고 상품화해서 일본 세일즈에 열을 올렸던 일본이 얼마 후 제국주의의 앞장이 되어 ‘조선’을 타자화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동양,나아가 불교의 신비화와 타자화가 동양 자신을 위해 바람직했는지 또한 의심스럽다.
    명법 스님(미국 스미스칼리지 박사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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