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암 스님·오강남 교수 27일 학술연찬회… 한국 종교에 쓴소리
| ▲ 월암(왼쪽) 스님과 오강남 교수는 지금 한국 기독교와 불교는"소금이나 목탁은커녕 자본의 시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밝은사람들연구소 제공 |
"종교인이 세상을 걱정해야 할 텐데 세상 사람이 종교인 걱정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월암 스님)
"한국의 종교는 자본주의의 시녀고 돈벌이 수단이다."(오강남 교수)
선불교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데 애쓰는 한산사(문경) 용성선원장 월암
스님과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가 16일 한국
불교와 기독교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아 부었다.
두 사람은 밝은사람들연구소 등 주최로 27일 서울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
문화기념관에서 여는 학술연찬회 '믿음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를 앞두고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종교가 "기복"의 틀을 벗어 던지고 "심층적인
믿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소는 '신심과 깨달음' '표층믿음에서 심층믿음으로' 등 두 사람의 발표
글 등을 담은 연찬회 제목과 동명의 책도 냈다.
월암 스님과 오 교수의 발언을 정리했다.
월암=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한 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파될 때는 좋게
말해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나쁘게 말하면 샤머니즘적인 것이 앞선다.
병을 고친다든가, 신통을 보인다든가, 복을 구한다든가 이런 것으로 불교가
처음 전해진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정법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제를 통해
정착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인간이 욕망을 가진 존재고 복을 구하는 덜 완성된 존재여서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비불교적인 요소가 전파의 주류가 된다.
그런 영향으로 다른 나라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도 아직까지도 샤머니즘
이랄까, 옛날에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고, 당산 나무에 빌고, 산신에게 빌고,
칠석님에게 빌고 하는 행위가 부처라고 하는 대상만 바뀌어 남아 있다.
기복적인 불교로 흘러버린 것이다.
기도는 부처님의 정법에서는 중생을 바꿔서 부처가 되는 자기의 간절한 여망,
발원이다.
일체중생이 다 해탈하고 성불하는 발원이 기도다.
자기욕망을 채우고 자기가 복을 받고 나 혼자 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불교
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태반이다.
다른 종교인들도 그것을 불교라고 안다.
비불교적인 요소가 불교로 둔갑한 것이다.
불교를 오래 믿었다는 사람조차도 서양에서 신을 상정하는 종교하고 다를 바 없다.
부처님을 하나님으로 대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건 불교가 아니다.
연기중도라고 하는 정법을 믿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들이 불교 안에서 가장 잘못된 것이다.
기복적인 믿음에서 출발을 했더라도 불교에 귀의한 뒤에는 그게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불교를 자기식으로 합리화하고,
자기불교로 만드는 것이다.
전혀 부처와는 상관 없는 것이다.
오강남=(기독교의 경우는)월암 스님 말씀에서 부처님을 하나님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표층적인 믿음에서 심층적인 믿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종교적 발달장애이다.
불교 기독교 할 것 없이 거의 다 그렇다.
종교를 욕심으로 가득 찬 자기를 확대하고 꾸미는 데 주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무아 사상, 예수님의 나를 따르려면 나를 부인하라는 말이 믿음의 기본 조건이다.
자기가 잘 되려고 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타고 가고 바퀴 달아 끌고 가려고 한다.
본 회퍼가 '제자 됨의 값'이라는 말을 했다.
예수님의 전제조건을 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라고 했다.
한국 목사는 그런 말 못한다.
교인이 떨어져 나갈까 봐 위로하는 말, 잘 될 거라는 말만 한다.
정의를 위해서 힘쓰라는 말을 못한다.
월암=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법으로 하게 되면 시주를 잘 안 한다.
오강남=21세기의 종교는 기복적이거나 나 중심적인 것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보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미국 불자들의 92.5%가 참선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불자가 된 것이다.
서양 불자들은 자기들은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불교 하고 다르다며 '화이트 불교'라고 하고 다른 아시아 불교를 '에스닉(ethnic)
불교'라고 말한다.
참선을 중요시한다.
월암=믿음이 기복적이고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하면 소위 눈 먼 돈이 들어온다.
그것이 사찰 경제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불교가 되려면 신도들의 기복적인 행위를 통해 기도금을 받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정법을 통해 수행을 가지고
감동을 줘서 그 감동으로 불교의 목적 사업을 위해 시주할 수 있는 감동의 불교로 가야 한다.
현재 사찰 구조는 대부분 기도금, 천도제 같은 것이 기본이다.
한 단계 껍질을 벗고 나아가야 한다.
나는 신도들에게 여러분이 부처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머물고 있는 집이 도량이라고 말한다.
절에 오지 말라고 한다.
살아 있는 부처를 존경하고 따뜻하게 못하면서 대웅전에 와서 나무부처, 돌부처, 쇠부처 앞에서 삼배를 하고 백팔배를 하고 난리
피우지 말라고 한다.
길거리 다니는 사람이 다 부처다.
그들에게 잘 하는 게 진짜 불공이다.
나무부처, 돌부처에 돈 놓고 복 받겠다는 그 심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건 불교가 아니다.
진짜 불공은 살아 있는 부처에게 잘 하는 것이라고 성철 스님도 말했다.
오강남=종교가 대형화 세력화 하는 게 문제다.
대형화하지 않으려면 시주 욕심 낼 필요도 없다.
교회도 십일조를 내면 반드시 복이 온다며 '선불 십일조'라는 것까지 있다.
성장이 한국 교회를 망친 것이다.
월암=교회나 사찰이나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큰 조직을 계속 이끌어가려니까 경제적인 밑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도들의 비위를 맞추려다 보니까 거기에 맞는 말만 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행위만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종교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다.
소금도 목탁도 못 되는 거다.
종교인이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을 걱정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불교 수행자라면 몸과 마음에 각고의 사무친 게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없이 시주 돈 받아 편안하게 산다고 하면 불교가 결국 망하는 것이다.
오강남=어떤 스님이 한국의 종교를 구원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
종교는 일단 정직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종교가 기업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기업은 돈을 번다고 하고 버는데 종교는 거룩함을 앞세워 돈은 기업보다 더 벌려고 한다는 것이다.
월암=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백 년이 걸리든 천 년이 걸리던 자정노력밖에 없다.
오강남=비관적인 생각도 들면서 앞으로 자정능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 배움이란 스승에게서 배우는 게 97% 이상이고 거의 문맹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약이 많은)주어진 여건에서 살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 등으로 어디서든 누구의 이야기든 다 들을 수 있다.
자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지 않겠나.
종교의 심층에 들어간 사람들이 옛날에는 가물에 콩 나듯 했지만 앞으로는 가마솥에 콩 튀기듯 하지 않을까 한다.
20세기 가톨릭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바티칸 제2공회를 주관한 칼 라너 신부는 21세기는 심층 기독교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고 이야기 했다.
사업 잘 되게 하고 병 낫게 하는 종교는 할 일이 없어졌다.
아프다고 교회 가는 사람 몇 있나.
다 병원 간다.
대학 합격 시키려면 과외 선생 찾지 기도만 하는 사람 있나.
월암=물극반본(物極反本)이라고 한 번 바닥을 쳐야 한다.
끝까지 가 봐야 반성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는데 가만 있으면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최선을 다하면서 그런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계종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오강남=서양 학생들에게 지금 동양에 가보면 동양이 더 서양적이고 서양이 더 동양적이라는 말을 한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지금은 서양이 더 강하다.
서양도 물질적으로 풍요해 보니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정신적인 것을 찾는 것이다.
한국도 물질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정신적인 것을 찾게 될 것이다.
토머스 머튼 신부가 동양의 물질적인 추구는 구해봐야 그게 다 가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자체가 도마 위에 올라 있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것과 맞물려 종교도 정신을 차릴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의 종교는 자본주의의 시녀다
돈 벌기 위한 수단이다.
■ 김범수 한국일보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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