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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눈부신 용인술

浮萍草 2016. 3. 1. 22:00
    능력우선 등용… 천민출신 장영실 파격 발탁
    반대세력까지 포용하는 리더십 본받아야
    근 모방송사에서는 최초의 과학드라마를 표방한 ‘장영실’을 방영하고 있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감동 스토리가 중심을 이루지만,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발탁한 세종의 안목이다.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비해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계 귀화인 출신이었고,어머니는 관기로서 장영실의 신분은 천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의 과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파격적으로 관직까지 부여했다.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세종의 신념은 확고했다. 세종은 장영실로 하여금 국가의 과학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했다. 이것은 간의와 일월정시의,천평일구,자격루(自擊漏) 등의 발명품으로 이어졌다. 자격루가 발명 되자 세종은“이제 자격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했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면서 장영실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나타냈다. 세종과 장영실의 환상적인 호흡은 15세기 천문 과학 분야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국가가 되게 했다. 인재를 알아보는 세종의 능력은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우리 역사상 최고 재상 중의 한 명인 황희 정승은 원래 세종의 즉위를 반대한 인물이었다. 태종이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던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녕대군(후의 세종)을 후계자로 임명하자 황희는 이에 반대했고 결국 유배의 길에 올랐다. 유배지에 있던 황희에게 손길을 내민 인물이 바로 세종이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 황희를 다시 등용했고,이후 황희는 세종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최고의 재상이 됐다. 반대세력까지 포용하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황희와 함께 세종시대 명재상으로 활약한 유관,허조,맹사성,아악을 정리한 음악가 박연,북방의 4군과 6진을 개척한 국방 전문가 최윤덕과 김종서.이들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세종의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은 개별 인재의 활용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통한 인재 확보에도 힘을 기울였다. 경복궁에 학문 연구기관인 집현전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성삼문,신숙주,정인지 등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최고 인재를 집현전에 모아 정책 과제를 연구하게 했고 이곳에서 나온 연구 성과는 국가 정책에 적극 반영됐다. 자주, 민본, 실용을 시대정신으로 삼고 인재 등용에 탁월한 안목을 보인 세종의 리더십은 15세기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었다. ‘인사가 만사의 근원’이라는 말은 세종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언이다. 특히 올해는 4년 만에 한번씩 있는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해로,국민이 국가와 지역에 적합한 인재를 직접 뽑는 중요한 시기이다. 세종시대를 찬란하게 만들었던 인재 등용의 힘이 우리의 시대에도 적극적으로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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