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 T = ♣ /♣ 歷史의窓

살인 코끼리에 벌을 내려주소서

浮萍草 2016. 3. 22. 09:51
    조선시대 일본이 선물한 동물들 골칫덩이
    중국서 보낸 판다 한 쌍 친선협력의 상징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마 전 중국으로부터 온 귀한 선물이 한국에 도착했다. 2014년 한·중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한국에 다시 들여오기로 한 판다 한 쌍이 온 것이다. 판다 한 쌍은 대한항공 특별기로 중국 청두 국제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두 살의 암컷 이름은 ‘아이바오’,세 살의 수컷 이름은 ‘러바오’로 사랑스러운 보물과 기쁨을 주는 보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994년에도 1992년의 한·중 수교를 기념하는 판다 한 쌍이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지만,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긴축에 동참하기 위해 4년 만에 돌려보낸 일이 있었는데 22년 만에 판다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우호의 상징으로 동물을 선물하는 것은 전통시대에도 자주 있었지만 오히려 외국에서 보낸 선물 때문에 고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태종 때인 1411년 2월 일본 국왕이 코끼리를 선물로 보냈고 태종은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조선시대 말 목축 등을 관장 하는 관청)에서 기르게 했다. 그런데 코끼리가 날마다 콩 4~5말(1말은 18㎏ 정도)씩을 소비하면서 조정의 큰 골칫거리가 됐다. 큰 사고도 쳤다. 코끼리를 구경하러 나왔던 관리를 밟아 죽인 것이다. 결국 태종은 “일본에서 바친 코끼리는 이미 왕이 좋아하는 물건도 아니요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라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 들여 전라도 섬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순천부 장도(獐島)라는 섬에 사실상 유배를 간 코끼리는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코끼리를 순천부 장도에 방목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전라도 관찰사의 보고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선물로 보내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는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관심 대상이었으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에서 보낸 동물 중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원숭이였다. 태종 때는 일본에서 너무 많은 원숭이를 보내서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다가 각 진(鎭)에 나눠 주었으며,세종 때에는 원숭이를 바치고 ‘대장경’과 백견(白犬),백학 (白鶴)을 요청한 기록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원숭이는 조선에서 선호하는 동물이 아니었지만 일본의 성의를 보아서 선물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갔다. 조선시대에 동물 선물을 두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던 주요 원인은 오늘날의 동물원처럼 이들을 키울 마땅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받은 것은 ‘이웃 나라의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교린(交隣)하는 도에 크게 어긋나고 먼데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에도 어긋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동물 선물을 외교문제로 인식한 것은 과거나 현재와 동일했던 것이다. 친선과 협력의 상징으로 한국에 온 판다의 모습을 통해 한·중 관계의 흐름을 진단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