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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복원한 이순신 장군의 대포 일부는 일제의 것

浮萍草 2015. 11. 25. 10:19
    사진1 육군박물관의 불랑기 5호와 자포. /채연석 박사 제공
    북선에서 사용한 총포의 종류는 크게 3가지이다. 물론 당시에는 모두 총통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동차(童車)라는 운반기구에 장치해서 사용한 것은 천자,지자,현자,황자 총통이 있고 특수한 장치에 고정시키고 사용한 불랑기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이 손으로 쥐고 사용한 총통의 종류는 승자총통과 조총이 있었다. 천자총통은 대장군전을 한번 발사하였는데 30냥의 화약을 사용하였다. 지자총통은 장군전을 발사하였는데 한번 발사하는데 20냥의 화약을 사용하였다. 현자총통은 직경 3.5㎝의 철환 100개를 넣고 발사하였는데 화약은 4냥을 사용 하였다. 황자총통은 직경 2.7㎝의 철환 40개를 넣고 발사하였는데 화약의 양은 3냥이다. 불랑기는 종류가 1호부터 5호까지 있었는데 전함이나 거북선에서는 주로 4호와 5호(사진 1)가 사용된 것 같으며 화약사용량은 각각 3냥과 2냥이다.
    그림1 화기도감의궤의 불랑기 모습(1615년) /채연석 박사 제공

    각 총통의 화약 사용량과 사용한 발사물의 종류를 보면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거북선이나 판옥선의 전면에 설치하여 적의 배에 길이 2.6m와 1.9m의 대형 나무 화살을 발사하여 큰 구명을 만들어 파괴시켜 격침시키는 용도였다. 거북선의 경우에는 현자 총통을 용머리 뒤에 설치하여 사용하였는데 탄환의 사정거리가 1500보였으니 적의 배에 접근하면서 가장 먼 거리에서 가장 먼저 사용하여 적군을 죽이고 다치게 하여 공포에 떨게 한 뒤 가까이 접근하여 천자,지자총통을 발사하여 격침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북선 3층에 실린 황자 총통은 모두 14개이니 한번에 560개의 철환을 사방으로 발사하여 적군을 사살하였다. 물론 개인용 총통인 승자 총통과 조총도 적군을 사살하는 용도로 사용 되었을 것이다. 불랑기는 납으로 만든 탄환을 1개씩 넣고 발사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 장군이 건조해서 사용한 거북선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선조 28년(1595년) 10월 27일의 실록에 “비변사에서 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불랑기,화전 등을 많이 싣고 바닷길을 막아 끊는 계책을 하는 것이 곧 위급함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라고 보고한 것을 보면 이때에 이미 거북선에서 불랑기를 설치해서 사용하거나 거북선에 설치하여 사용하면 유리한다는 것을 알 고 있는 듯하다. 불랑기 1대에 자포 5개씩 만들어서 자포에 화약과 탄환을 넣은 뒤 불랑기의 뒷부분에 장전하여 발사하면 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적인 총통보다 빨리 장전해서 발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615년에 편찬된 ‘화기도감의궤’에 불랑기와 자포의 그림(아래)이 처음 등장한다.
    사진2 군기시터에서 발굴된 불랑기자포(보물 861-2호) /채연석 박사 제공

    불랑기 유물로는 1563년 제작한 불랑기 자포가 남아있다. 이 유물은 2012년 8월 24일 보물 제 861-2호로 지정되었는데 서울시 지하에 있는 군기시유적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이 불랑기 자포에는 “가정계해 지통중칠십오근팔냥 장김석년(嘉靖癸亥 地筒重七十五斤八兩 匠金石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무게는 75근8냥(45㎏), 길이는 43.9㎝, 외경이 14.8㎝이다.
    사진3 군기시유적전시실에 전시된 복원한 불랑기포. /채연석 박사 제공

    우리의 불랑기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불랑기 1호이다. 불랑기 1호는 길이가 143㎝, 부리의 내경이 5.8㎝이다. 불랑기 1호는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고 1962년 일본인 아리마 세호(有馬成甫)가 쓴 책에만 남아있다. 불랑기 1호에 사용된 자포의 크기가 길이 38㎝, 외경 13.5㎝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면 보물 861-2호의 자포와 이 자포를 사용한 불랑기는 아주 큰 편이다. 서울 시청 지하에 있는 ’군기시유적전시실‘에는 불랑기 자포와 함께 이 자포를 사용했을 불랑기도 복원해 놓아 관람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림2 아리마 세호가 저서에서 소개한 일본의 불랑기 모습. /채연석 박사 제공

    하지만, 복원한 불랑기는 우리의 전통 불랑기 모습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 불랑기 모습은 그림 과 같이 자포를 장진하는 곳 뒤에 속이 빈 원통형의 손잡이가 붙어있다. 복원해 놓은 불랑기는 일본의 불랑기 모습에 더 가깝다(그림 2). 우리의 보물인 불랑기 자포가 일본의 불랑기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 교수 gogosp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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