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27 공포의 '두발 단속' 도구 바리캉… 21세기 '셀컷男'들 필수품으로

浮萍草 2015. 11. 19. 09:32
     1970년대 우리나라 경찰관들 장비라면 권총,경찰봉,수갑 외에 한 가지를 더 꼽을 만하다.  수동식 바리캉, 즉 이발기였다.  국민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퇴폐적 장발(長髮) 사범'을 발견하면 경찰은 바로 붙잡아 바리캉을 들이댔다.  이 기계로 뒷머리 혹은 옆머리 일부를 싹둑 '벌초'하는 걸 감수한 사람은 훈방됐다.  거부하면 즉심에 회부됐다.  장발의 기준은 '옆머리가 귀를,귀밑머리가 옷깃을 덮는 머리'였다.  경찰의 바리캉이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건 1976년이었다.  이해 5월까지 55만9837명이 단속에 걸려 2만4998명이 즉심에 회부됐다(조선일보 1976년 5월 15일자).
    휴전 이듬해인 1954년 3월 서울 사직공원 안 ‘전쟁 부랑아 수용소’에서 한 고아가 바리캉으로 다른 어린이를 이발해 주고 있다. 오른쪽은 옛 바리캉.
    리캉은 1920년대에 이 땅에 활발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 이발계의 대혁명'이라고 광고된 첨단 발명품이었다. 영어로는'헤어 클리퍼(hair clipper)'인데 프랑스의'바리캉 에 마르(Bariquand et Marre)'사 제품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면서 특정 브랜드가 그대로 일반 명사가 돼 버렸다.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이 물건에는 두렵고 아픈 기억들이 묻었다. 학생들 두발이 약간만 길어도 정수리 한가운데에'고속도로'를 개통시킨 학생 주임의 바리캉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입대 전 빡빡머리 깎을 때 철제 바리캉의 감촉은 가슴 허전한 청년들 두피를 차갑게 짓눌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걸린 구식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어 본 7080세대들은 바리캉 날에 머리카락이 쥐어뜯기던 때의 끔찍한 고통을 잊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바리캉을 직접 장만해 집에서 이발했다. 소설가 장정일이나 연극연출가 오태석은 헤어 스타일에 신경 쓰기 싫다며 직접 바리캉으로 머리를 삭발했다. 이발비를 아끼려는 서민들에게 가정용 바리캉은 절약의 아이콘이 됐다. 극심한 가뭄으로 민족이 고통받던 1920년대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던 1960~70년대,그리고 IMF 쇼크가 덮친 1997년 말~1998년에 바리캉 판매가 급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가정용 바리캉이 최근 들어 또 잘 팔린다고 한다. 지난 6월 한 달간 어느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전동식 바리캉 판매량은 작년보다 54%나 늘었다. 이번엔 절약 차원이 아니다. 아랫머리를 밀고 윗머리는 길게 남겨두는'투 블록 컷'이라는 최신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아랫머리를 지속적으로 직접 짧게 다듬으려는'셀컷남(self-cut男)' 들 필수품이 바리캉이라고 한다. 돈이 궁한 셀컷남의 시대는 가고, 멋을 좇는 셀컷남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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